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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Oct 02. 2017

20

자전거 여행


 두 분 참 잘 어울리시네요.

그리고 은하씨가 라면을 가지고 탁자로 돌아온 이후에, 그러니까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을 때, 입을 연 것이다.

 “그렇죠?”

 “네?”

내 말에 돌아오는 두 사람의 반응은 달랐다. 재준씨의 입고리는 위로 올라간 상태였고, 은하씨는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나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아, 어머, 제가 실수했나요?

조심스럽게 그녀의 표정을 살피자, 재준씨는 면을 꼭꼭 씹으며 나와 그녀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아이, 은하야, 너 또 표정관리 안 하냐.”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녀의 옆구리를 찌르는 그였다. 그러자 은하씨는 그를 향해 곁눈질을 하며

 “야, 너는... 우리가 무슨 사인데...”

 “완전 좋아하는 사이지.”

 “뭐, 뭐?”

그녀는 당황해하며 얼굴을 붉혔고 고개를 숙여 라면을 말없이 먹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곤 그 또한 조금 쑥스러웠는지 아무 말 없이 장난기 어린 입고리 한 쪽을 쓱 올리는 그였다. 그의 고백 아닌 고백에 순식간에 정적으로 휩싸인 세 사람 주변엔 오로지 도자기 그릇에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라면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입안이 여전히 알싸했지만 기분 좋은 여운처럼 남아있었다. 은하씨의 붉어졌던 얼굴은 돌아온지 오래였지만 여전히 그녀는 재준씨를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재준씨는 약간의 정적 이후 아무렇지 않게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제주도에 온지 이제 3일차 되는 여행자로서 그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그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며 라면을 먹는 그 시간 동안 은하씨는 단 한 번도 먼저 입을 연적은 없었다. 단지 재준씨와 나의 물음에 단답형으로 대답만 할 뿐이었다. 라면이 있던 냄비가 은색 바닥을 보이자 대화 또한 잠시 멈췄다. 재준씨가 마지막 젓가락을 들었다가 그릇에 다시 놓자마자 은하씨는 냄비에 각자의 앞에 놓여있던 그릇을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설거지 내가 할게. 너 앉아 있어.”

 “어? 어어,.. 그래.”

그런 그녀를 다시 앉힌건 재준씨였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냄비를 들고 그녀와 내 옆을 지나쳐 싱크대로 걸어갔다. 재준씨가 일어나자 그제야 은하씨는 고개를 똑바로 들어 그의 뒤를 보기 시작했다. 물 소리에 묻혀 그는 듣지 못할 정도의 긴 한숨 또한 내쉬는 그녀였다.

 은하씨는 여기 온지 얼마나 됐어요?

그녀의 큰 눈은 내 목소리를 따라왔다. 그리고 그녀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5개월 정도 되었네요, 이제.”

 5개월이요?

나는 그녀의 대답을 한 번 더 반복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망설이는 듯 했지만 바로 덧붙였다.

 “제주에 오기 전엔 병원에서 일을 했었어요. 아픈 분들 간호를 해드려야하는 직업인데, 어느 순간 제 몸이 안 따라주더라구요. 뭐, 솔직히 말하면 여기 오기 직전까진 병실에 누워있었다는 말이 더 맞겠네요.”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에 되려 내가 당황스런 표정을 지을 뻔했다.

 아, 지금은 어떠세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뭐, 여전히 약은 달고 살지만.”

 “약 먹었어, 오늘?”

설거지를 마친 재준씨가 그녀의 옆에 다시 앉았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가 돌아오자 다시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려했다. 그러기 전에 나는 재준씨에게 질문을 얼른 던졌다.

 재준씨는 언제 제주에 오게 되셨어요?

 “어... 나 언제왔지?”

그러나 오히려 은하씨에게 자신이 언제 왔는지를 물어보는 그였다.

 “너? 11월. 내가 여기 9월에 왔으니까.”

 “얼마 안됐네.”

그녀의 대답에 재준씨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는 제3자 같았다.

 “생각할수록 너 처음 왔을 때, 되게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

 “지금은 아냐?”

 “지금? 너 이상하다는 말 듣고 싶어?”

 “치, 아냐.”

티격태격하며 다시 처음 봤던 둘의 모습대로 돌아간 분위기가 들자, 나 또한 가볍게 그들에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 은하씨가 재준씨를 만난 그 날을 그녀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며칠을 씻지 않은 얼굴과 머리, 마른 그녀만큼이나 말라 뵈던 그의 모습을. 검정색 라이딩 자전거 뒷자리엔 커다란 짐가방이 묶여있었고, 겨울비를 맞은 그는 물에 빠진 생쥐가 따로 없었다고 했다.

 “하하하, 그래도 그 때 여기에 머무르게 되어서 지금껏 지내고 있잖아. 은하, 너도 만나고.”

잊을만하면 다시 나오는 그의 능글맞은 말에 은하씨는 다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이 보기 좋아 나도 모르게 입가에 연신 미소를 띄고 있었더랬다. 심지어 부럽기까지 했다.

 “그러는 윤겸씨는 언제 들어오셨어요?”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이 다시 내게 시선을 돌린 것을 깨달았다.

 아, 저는 이제 3일째에요.

 “여기 오기전엔 어디서 묵었어요?”

 협재에서요. 어제부턴 서귀포 내에서 계속 여행하고 있어요.

 “협재? 아, 혹시 비양도 보이는 그 게스트하우스?”

 어떻게 아셨어요?

 “역시. 예쁘잖아요, 거기.”

 네, 좋더라구요. 비가 내려서 좀 아쉬웠지만.

그 순간 또 다시 그 사람이 떠올랐다. 이번엔 세 사람 모두가 아니라 해진씨만 머릿속에 떠올랐고 순식간에 머리를 흔들어 머릿속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고 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일회성인 인연이기에 한 번 듣고 흘려버릴 사람들이며 다신 만나지 않을 사람들이기 때문에 솔직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른 그였기에 더욱 더 자주 생각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 사람의 이야기는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재준씨는 그 당시 물에 빠진 생쥐 같은 모습을 하고는 길을 계속 헤매고 있었더랬다. 지금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으려고 헤매던 도중에 저녁해가 다 지고 도착한 이 곳에서 은하씨를 만나게 된거라고.

 “그냥 딱 여행자였죠. 야, 은하야, 여기서 라이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 꼴이야. 비슷해. 윤겸씨도 그럴걸?”

 저는 매일 씻기는 해요.

그의 확신에 찬 말투에 단호함을 끼얹어버린 나였다. 그러자 은하씨는 웃음이 터져나왔고 나 또한 그녀의 웃음에 물든 듯 서로를 보며 한참을 웃었다. 재준씨는 무슨 말을 하며 자기 방어를 하고 있었지만 두 여자의 웃음소리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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