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출국 날

2017.08.17 새벽

by 한서




방금 버스가 출발했고 나는 이 글을 버스 안에서 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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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해지시켰고 이모와 외할머니를 만나뵈었고 납골당에 가서 할머니와 아빠를 만났고 남동생 운전 연습을 시켜주면서 그러는 김에 자주 들르던 절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고 내려왔다. 벌써 일주일 전부터 공항리무진 버스를 예매하려 했건만 그 때부터 매진이라는 말만 돌아왔었다. 바로 오늘 아침까지도 혹시나 취소표가 있나 싶어 전화했건만 돌아오는건 매진, 매진, 매진이었다. 때문에 나는 청주까지 자차로 새벽에 이동을 하였다. 새벽 운전이고 엄마도 피곤하실테니 내가 하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어느 스님의 말씀을 듣고는 불안해서 본인이 하시겠다 하셨다. 새벽 출발이기 때문에 엄마와 나는 2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초저녁부터 잠을 잤다. 뒤척이다가 잠이 든 나는 1시 30분 알람이 울리자마자 눈을 떴고 이제는 와이파이존 노예가 되어버린 휴대폰을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주로 오는 내내 엄마는 졸린 토끼눈을 하고 운전을 하셨다. 나는 그 옆에서 여느때와 다름없이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대화의 화제는 어제 이모와 외할머니와 나눴던 대화에서 재밌었던 일화 등등 여러가지였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나에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묵묵하고 담담하게 잘 지내고 돌아오라는 말만 남겼다. 나는 되려

엄마! 울지마!

라고 말했고 엄마는 멋쩍은 듯 웃으며 '엄마 안 울어~'라고 말했다.

엄마는 감정 표현에 서툴다. 그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득문득 서운하기도하다. 하지만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언니들은 우리 어린 시절의 엄마를 꼬집어보면서 언니들과 나에게 초점을 맞춘 대화를 이뤄나갔었는데, 언젠가부터 나는 엄마의 인생 전반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가 참 무뚝뚝하신 분이셨고 외할머니 또한 한없이 힘든 삶을 살아오셨기 때문에 또 한없이 착하고 한없이 무덤덤하시기 때문에 되물림 되었을 수밖에 없었다는걸 안다. 그리고 그들이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느끼고싶지 않았기에 모든 감정의 고리를 끊고 살아왔었다는 것을 안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처럼, 아마 그렇게 살아오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의 삶도 여느 드라마 못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떠나기 전 날인 어제, 엄마에게 짧은 편지를 쓰면서 이제는 힘들지 않은척 하지 말고 슬프지 않은 척, 강한 척 하지 말라는 글도 썼다. 행복하고 웃는 모습으로 살아가자고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곳에서 건강하게 잘 지낼거라고도 했다.

모두가 분명히 섭섭하고 서운하다고도 했다. 통화를 한 친구들은 모두 서운하고 섭섭하다, 내가 한국에 없으면 참 보고싶을거다. 그런 말을 했지만 나는 괜히 x라 치지 마라며 타박을 줬더랬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그제야 실감이 났다. 그래, 2년이라는 시간이 참 긴 시간인데 그 기간 동안 나에겐 얼마나 멋지고 고된 일들이 생겨날까,하는 기대감과 동시에 한국에 남아있는 내 가족들과 친구들은 잘 지낼까.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될텐데. 그런 걱정까지도 들더랬다.

이모 댁에 들렀을 때 오랜만에 뵌 이모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나를 반겨주셨다. 그녀 또한 물론 섭섭하다고 했지만 나에게 엄마 걱정은 하지말라고 당부했다. 이모들도 있고 언니들 동생도 여기 있으니까 걱정하지말라고. 그래, 걱정 하지 않으리. 내가 그들을 떠나버리고 싶었던 악한 마음도 있었지만 동시에 그들을 두고 가려니 참으로 걱정이 많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모의 말을 듣고나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터미널에 혼자 두고 버스에 올랐다. 멀어지는 엄마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를 돌려 보면서 다짐했다. 나는 더 크게 더 넓은 마음으로 더 넓은 세상에서 성장해 오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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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인천공항에 도착해있었다. 정신없이 잠에서 깨자마자 얼른 내려야겠다고 생각하곤 부랴부랴 짐을 챙겨 내렸다. 그런데 아뿔싸... 버스에 내 단복을 두고 내린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깨달았다. 아.. 이래서 일진이 안좋다고 했던거구나 싶었다. 이상하게도 점괘가 맞는 일이 일어나면 소름이 돋으면서 기가차기도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버스에 뭘 두고 내린 적이 없었는데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걸 인지하게된 후 부터 나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서 담당 선생님께 일단 연락을 드렸더니 방금 공항에 도착했다면 아직 출발하지 않았을 거라며 장기주차장에 가보시라는 말을 하셨다. 나는 허둥지둥 초등학생 몸무게만한 이민가방 두 개와 배낭 하나를 메고 택시를 탔다. 처음에 택시기사님은 태우고싶지 않으셨는지 공항 셔틀버스를 타고 가라고 하는거다. 아니 무슨 공항내에서도 승차거부를 당하다니? 어이가없어서 눈물이 났다. 이런 상황을 설상가상이라고 하는건가? 혼자 별 생각을 다하면서 눈물을 찔끔, 땀을 뻘뻘 흘렸다. 그래도 승강장 안내원이 내 짐을 보고 택시기사님에게 여차저차 말을 했나보다. 처음엔 짜증나고 힘들고 당황스러워서 기사님에게도 짜증섞인 말투로 또박또박 대꾸를 했지만 그래도 그 기사님이 짐을 찾을 때까지 많은 도움을 주셨고 결과적으로 단복은 내 손 안에 들어왔다. 아이고 지금 이렇게 짧은 글로 써놨지만 정말 그 짧은 시간동안 지옥을 오갔더랬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새옹지마! 단복을 갈아입고 모두를 만났고 체크인을 할 때는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났다. 비즈니스 석으로 자리가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그 순간 아침에 그 난리 부르스를 치고 난 짜증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첫 장기 비행에 첫 비즈니스석이라니! 시작이 좋다.

그리고 지금은 비행기에서 이 글을 마무리 하고 있는 중이다. 지붕위의 바이올린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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