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미국, 페루, 그리고 볼리비아.

2017.08.18

by 한서




비즈니스석은 참 좋구나, 이래서 비즈니스 비즈니스 하는구나 싶다. 처음에 좌석에 앉았을 때는 이어폰은 어디에 꽂아야 하는지, 테이블은 어디에 있는지, 좌석은 어떻게 눕히고 앉히고 해야 하는지, 불은 어떻게 켜야 하는지 짐은 어디다 놔야 하는지 등등 모르는 것 투성이어서 바로 옆에 앉은 남자분께 여러 가지 여쭤보았다. 괜히 아는척하는 것보다 모르면 다 물어보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나다. 여하튼 그분의 친절한 설명과 항공사 직원들의 (과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한 서비스로 인천에서 LA까지의 11시간 비행은 아주 편안하게 올 수 있었다. 창가 쪽에 앉아서 왔었더라면 더 아늑하게 쉴 수 있었을 텐데, 밤하늘의 별도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아쉬움이 남았었지만 그래도 편하게 온 게 어디야, 언제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보겠나 싶어 모든 게 감사했다.

LA 공항에 도착하고 4시간의 대기 시간이 있었다. 밤낮이 바뀌는 바람에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졸리고 힘들어서 '아, 여기가 미국이구나, 그 말로만 듣던 LA구나.' 그런 생각만 하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을 뿐 절대로 돌아다닐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러다가 탑승 2시간 전, 티켓팅을 하러 갔던 동기들이 다시 돌아와서는 LA에서 리마로 가는 라탐 항공에서 티켓을 발권해주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한국에서 볼리비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거나 혹은 거주증, 호텔 예약증 등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11시간 비행으로 도착한 곳에서 다음 목적지로 가는 티켓을 발권해주지 않는다니? 그럼 우린 어찌해야 하는 거지? 너무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은 볼리비아 사무소에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소리는 한국대사관으로 간다고 말 안 했어요? 란다. 우리가 그런 걸 알리가 없지 않은가? 애초에 말을 해줬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닌가? 피곤하기도 했고 짜증도 나는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사무소의 도움으로 어찌어찌하여 티켓팅을 하고 서둘러 출국 심사대를 거쳐 라탐 항공 비행기를 타고 8시간 비행을 다시 시작했다.

비즈니스를 타고 11시간을 비행한 것은 가장 긴 비행이었음에도 가장 짧게 느껴졌다. 반면 라탐항공을 타고 리마로 가는 8시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좁은 의자에 심지어 나는 3명 좌석의 가장 가운데였다. 그래서 화장실도 딱 한 번만 갈 수밖에 없었다. 양 옆에 앉은 외국 여성분들은 라탐 항공에서 지원하는 영화만 줄기차게 보길래 나도 영화를 보다가 졸다가를 반복했었다. 그렇게 힘들게 페루 리마에 도착했을 때의 시간은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당황했던 첫 번째는 많이 춥지 않은데 현지인들이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만 동양인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무더운 여름이니 당연히 반팔 차림으로 비행기에 탑승했고 LA에서도 더웠으니 굳이 패딩 따위는 입고 있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짐가방에서 꺼내지 않았는데. 그들 눈에는 한 겨울에 '반팔'을 입은 '동양인'들이 얼마나 신기해 보였겠는가. 많은 시선을 한꺼번에 받으면서 공항 내에 있는 식당에서 버거킹 햄버거로 주린 배를 채웠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랐던 것은 다섯 명의 공항 직원에게 질문을 했을 때 대답이 다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 우리는 LA에서는 대한항공에 싣고 온 우리 짐을 리마까지 가는 라탐 항공으로 직접 옮겼었기 때문에 리마에서도 똑같이 해야 하는지 알았고 정확하지 않아서 공항 직원에게 물어봤던 것인데 어떤 직원은 나가서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어떤 직원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대답이 모두 달랐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한 채로 대기 시간을 기다렸고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도 불안해했다. 그렇게 비몽사몽, 불안감에 사로잡힌 채로 마지막 비행기에 올랐지만 어쨌든 마지막 비행기에서 내가 앉은 좌석은 양 옆에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좌석 세 개를 독차지하면서 나름 편하게 올 수 있었다. 꾸벅꾸벅 졸다가도 어느새 나는 창가 쪽으로 자리를 몰래 옮겨 붉은빛으로 물드는 하늘과 말도 안 되게 눈이 시릴정도로 아름다운 일출부터 안데스 산맥에 걸린 구름과 높은 산 위에 있는 호수를 내려다보며 LA에서 페루로 오는 동안 보고 느끼지 못했던, 그제야 내가 남미에 그리고 볼리비아에 가까이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착하기 1시간 전부터는 정신이 멀쩡하더랬다. 이제 정말 볼리비아 상공에 있다는 것이 믿어졌고 다시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다짐했다.

'이제 진짜 시작이야.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2년 동안은 행복할 것, 많이 울지 말 것. 그리고 항상 나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자.'

비행기는 볼리비아 상공을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공항에 착륙할 것이라는 기내 방송이 들려왔고 그리고 비행기는 아주 단숨에 땅을 밟았다.


그리고 나는 해발고도 4,061m에 위치한 볼리비아 'EL ALTO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