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까지.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생 때까지 아주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에도 키가 컸는데, 나처럼 키가 큰 그 친구는 나와 같은 반이었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우리는 공통점이 많았다. 두 사람 다 노래와 음악을 좋아해 작은 도시에 하나뿐인 시립합창단도 함께 했고, 체육 시간에 달리기도 곧 잘해 육상 대회에도 함께 나갔었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친구는 피아노를 잘쳤던걸로 기억한다. 그 친구의 집에 가면 항상 '은파'라는 곡을 쳐달라고 내가 조르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럴 때 마다 그 친구는 그 곡을 쳐줬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잘 치는 그 친구가 어린 마음에 내심 부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그런 아이가 내 친구여서.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친구가 떠나기 며칠 전 점심 시간이었다. 그 친구와 나는 놀이터에 있는 그네에 앉아 10년 뒤 10월 26일에 학교 소각장에서 보기로 약속했었다.
"다른 공통된 날은 없잖아. 너랑 나랑 같이 노래 했던 날에 만나는거야, 어때? "
"좋아! 그 때 우린 어른이 되어있겠지?"
"꼭 보는거야! 너 약속했어, 나랑! 꼭!"
어렸다.
한참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던, 그런 어린 아이들이었다. 하이틴 드라마같은 학창시절을 꿈꾸던 아이들이었다. 어렸다, 우린.
나는 그 친구가 떠나고나서도 친구가 알려준 주소로 편지도 자주 보냈고, 전화도 종종 했었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계속 연락하면서 서로에게서 잊혀지지 않으려했다. 하지만 눈 앞에서 보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곁에 존재가 없다는걸 몸은 금새 알아차리고 그리고 머리도 곧, 그 존재를 망각한다. 그렇게 여느 사람들처럼 똑같이, 나도 그 친구를 언젠가부터 잊기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문득, 졸업한 초등학교 앞을 지날 땐 그 날의 약속이 생각나곤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10년 후,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그 10월 26일.
그 날, 나는 찾아갔었다.
어렸다.
한참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던, 그런 어린 아이들이었다. 하이틴 드라마같은 학창시절을 꿈꾸던 아이들이었다.
어렸다, 그때에 우린.
그 어린 시절에 약속했던 그 막연한 10년 뒤라는 시간.
그 동안 학교는 참 많이 변했다. 소각장은 벌써 사라졌고 체육관이며 학교 건물이 새롭게 생겨났고 그렇게 넓었던 운동장은 많이 작아져 있었다. 긴 시간동안 나도, 학교도, 고향 친구들도 모두들 참 많이도 변해있었고 나는 그 곳에서 꽤 오래 살았음에도 그 변화를 감지하지못했다.
그리고 너도 그랬겠지.
나만 기억하고있었구나 하는, 그런 서운함이 들었어. 그리고 다시 너에 대한 기억은 잊혀지고있었어. 그러다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페이스북에 네 이름을 쳐봤어. 이름이 독특하니깐, 너를 바로 찾을 수있을거라는 확신이 드는거야. 아니나다를까 네가 맨 처음으로 뜨더라. 초등학교 친구들하곤 벌써 친구가 되어있어서 많이 놀랐어. 그러면서도 서운하더라구. 나는 왜 안찾았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 애인도 생겼고, 그곳 친구들하고 행복해보이는 너 사진 보면서 잘 지냈구나, 하다가도 괜히 섭섭하기도 했어. 친구신청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친구 신청을 눌렀는데 너가 수락해줘서 너무 좋은거야. 그리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넌, 답장도 안 보내더라.
12년 만이었는데.
언니에게 말했다. 이 모든일을.
난 너무 섭섭했다고, 나는 너무 보고싶었는데, 어떻게 지내고있는지도 알고싶었는데 이제야 찾았는데, 그 아이는 대답도 없더라고. 그러자 언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모두가 다 네 맘과 같을수는 없다고. 그리고 그게 아니라면 너와 연락하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있다고.
그 친구도 나처럼 나를 반갑게 생각할거라고, 내가 그 친구를 계속 찾고있었던 것 처럼 그 친구도 나를 계속해서 찾았을거라는 생각을 하고있었는데, 그렇게 믿고 어떻게든 10년을 살아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