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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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무렵에 그랬다.
나는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자꾸만 회의감이 들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 곳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떠한 것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아는, 그걸 깨닫게 된 순간부터 매일매일이 힘들었다.
그들 속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음에도 혼자였다. 그들에게는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데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처음엔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작 3개월 남짓 배운 스페인어로 더듬더듬, 이런저런 말을 해도 상대방은 여전히 꽁꽁 닫고 있는 마음의 문을, 내가 억지로 열어달라고 두드리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나와 그들의 언어의 장벽은 그렇게도 높았지만 어찌어찌해서 그들이 원하는 바를 도와주곤 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들의 비서처럼 지내고 있는 듯했다. 도움을 달라며 나를 부르면 말 잘 듣는 강아지나 개냥이처럼 쫄래쫄래 그들에게 가서 이렇게 저렇게 도와주곤 했는데 나중엔 본인의 사소한 일까지도 나에게 떠넘기 듯해서 기분이 나쁘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훨씬 많을 거라는 생각에 괜히 주눅까지 들더랬다. 그리고 간혹 가다가는 그들이 그들의 원주민 언어로 대화를 나눌 때가 있다, 내가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때면 나를 두고 말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기도 여러 번이다. 그러한 그들의 태도는 그들이 나를 나쁘게 보고 있을 것 같은 생각과 느낌을 들게 만들었고 또 한 번 나 자신이 나를 작게 만들고 괜히 자책하게 만들었다. 매일매일 고된 시간의 연속이었다. '사람'이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이유였다. 나는 그렇게 한 달 반을 보냈다.
방학식을 했고 나는 한 동안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방학 동안 마냥 쉬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 기관에 출근을 하지 않는 대신 다른 기관에서 일을 하면서 앞으로 내가 내 기관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방학 동안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곳은 작은 마을의 한 도서관인데 그 안에서 나는 방과 후 수업처럼 아이들과 1시간의 수업을 함께하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어떤 것들을 가르치면 좋을지 고민하고,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에 대해서 직접 물어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수업에 반영한다. 수업자료를 만들고 연구를 하고, 그렇게 준비를 해서 아이들을 만나러 가면 항상 수업 초반엔 많이들 어려워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고 해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그리고 최근에야 다시 나는 내가 이 곳에 왜 왔는지를, 지난 시간 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가진 작은 지식이 이 곳의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큰 지식과 도움이 된다면?'
나는 한국의 어른들이 볼 땐 뭣도 없는 뜬 구름 잡는 꿈쟁이일 뿐이었지만 그런 내가 이 곳에서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모른다. 그것을 잊고 있었기에 그동안 나 자신의 자존감과 자신감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나는 지난 세월 동안 그래도 내가 원하는 일들을 하나하나씩 이뤄내고 있었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모든 것들을 하나씩, 조금씩, 천천히 이뤄내고 있는데 그 사실을 잊고 어떻게든 버텨내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시 깨닫게 된 그 순간에야 다시 내가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고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는 거야.'
특히 나는 앞으로 이 곳의 어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곳에서 잘 살아내야겠다. 그리고 나는 이 곳에 내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절대로 잊지 않아야겠다. 나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과 의지가 바로 선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