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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Feb 26. 2018

Good will Hunting

영화 'Good will Hunting'을 보고.



 전 날 알람을 꺼 놓고 잤기 때문에 다행이도 주말 아침에 새벽 일찍 일어나는 불상사는 없었다.

눈이 떠진 시각은 주중엔 이미 버스를 타고 길 위에 있었을 7시 30분즈음이었는데 은근한 만족감을 가지고 토요일 아침의 게으름을 시작했더랬다. 먼저, 옆에 놓여있던 휴대폰을 집어들어 아침 헤드라인 뉴스를 살짝 훑었다. 단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올림픽과 관련된 기사들이었다. 내가 자고 있던 사이에 한국에선 국가대표 선수가 금메달을 따놓은 것이다. 해외에 있는 탓에 TV로는 물론 휴대폰으로도 중계되는 경기를 당연히 보지 못했지만 동영상 어플에 올라오는 짧은 영상으로 선수들의 활약상을 부분적으로 보아온 나로서는 그 기사를 보자마자 얼른 영상을 찾으려고 어김없이 동영상 어플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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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굿 윌 헌팅'


그리고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을 보았다.

명작이라는 칭찬을 지난 몇 년간 지인들로부터 수도없이 들어왔지만 볼 기회가 없었는데 드디어 오늘 보게 된 것이다. 영화를 보려고 마음 먹은 이유는 이랬다.

올림픽 명장면을 찾아보려고 어플을 누르자마자 추천 영상에 이런 제목의 영상이 올라와 있던 것이다.

 'MIT 명문대생들을 바보로 만든 고졸 청소부'.

평소에도 영화리뷰 영상을 좋아하는 나는 국가대표팀의 활약상을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고 그 영상을 눌렀다. 그런데 영상의 소재가 바로 '굿 윌 헌팅'이었던 것이다. 10분도 채 되지 않는 영상을 보고나서 나는 왠지 이 영화를 오늘 꼭 봐야만 할 것같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다. 여전히 나는 침대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던 순간이었지만 내 손가락과 눈은 작은 휴대폰으로 영화를 찾기 바빴다. 그렇게 영화를 찾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왠지 불편하고 슬픈 이 영화를 보았다.


아무도 풀지 못하는, 심지어는 교수도 풀지 못해 2년이 걸린 수학 문제를 하루도 안되서 풀어버리는 천재 소년의 미래를 두 교수가 걱정할 때. 주인공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가시돋힌 말로 먼저 밀쳐버릴 때. 자신의 과거를 포장하며 살아갈 때. 상담 교수가 그 어느 곳에서던 할 수있는 청소부일을 굳이 MIT에서 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그가 마음을 열 수있는 친구에게로부터 '네가 어느 순간 집에 없다면 행복할 것 같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 어렸을 때 학대 당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때. 그리고 상담 교수가 주인공에게 'It'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 할 때...


 "It's not your fault."

그 말을 들은 주인공이,

 '알아요. 알아요.'

'I know.(안다)'라는 그 말을 처음엔 담담하게, 그러다 짜증 섞인 소리로 그리곤 결국 눈물을 터트리며 펑펑 울면서 말하는 그 모든 장면을 보면서, 나는 왠지 모르게 그 아이가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그랬나, ...모르겠다, 나는 왜 그렇게 눈물이 났던지. 왜 그렇게 오열을 하게 되었던지...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이 대사를 나 혼자서 읊조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렇게 눈물이 난다. 어쩌면 진실된 위로를 받는 저 아이가, 나는 부러웠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를 공감하던 내가 주인공이 위로를 받자 그 순간 현실의 나 또한 위로받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엄마가 날 버리려했고 아빠는 말렸다.'던, 그 사실인지 아닌지 모를, 아니 믿고 싶지 않은 그 말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 10대 때 겪은 모든 죽음들. 평범해지고 싶었던 사춘기 시절. 친구들에게서 받은 상처와 외로움 속에서 살던 그 어린 시절...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풀어버리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 후부터는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을 대답하지 않는 공책에 쓰면서 내 진실된 마음을 고백했다. 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것, 그 공책만이 내 진짜 친구였다. 그러나 글만이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던 그 시절의 나는 일방적인 내 고백을 듣는 공책이 아니라 내 말을 듣고 나를 공감해줄 사람이, 나에게 진실된 위로를 해줄 사람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10대 때 나는 어렸고 외로웠고 두려웠다, 이 주인공처럼.

 날 보이면 안돼.
 내 과거를 보이면 안돼.  
 내 진짜 모습을 보여선 안돼.  
 그들은 날 떠나버릴거야.  
 그러니 차라리 다가오지마.  
 더 이상 날 알려고 하지마.  
 날 사랑하지 마.

그렇게 날 감췄다.

그러다 대학교 때 조금,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보이는 연습을 할 수있었다. 두려웠지만 그 때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내 과거를, 내 전부를 보였다.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날 떠날거냐고 물었지만 한 편으로는 그들이 나를 떠나지 않길 바랬다. 두려웠다.

내가 예상했던 결과와는 달리 그들은 날 떠나지 않았다. 다만 그제야 나는 누군가로부터 처음으로 진정한 위로를 받고 마음을 열 수 있었다. 마치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그러나 오늘 이 영화 속 대사였던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그 말은 어쩌면 내가 정말로 듣고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진심으로 듣고 싶었던 말들 중 하나였던 것일지도... 내가 겪은 그 모든 죽음들과 불행은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이제 마음의 문을 조금 더 열어보라고. 마치 그가 내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 같아서 그렇게 눈물이 났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주인공이 '꼭 만나야 할 여자'를 만나러 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마음의 문을 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주인공이 운전하는 붉은 차를 보면서 나는 그가 부러웠지만, 나 또한 머지않아 반쯤 열린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있을 날이 곧 올 것이라는 기대에 찬 미소가 지어졌더랬다. 영화 속 주인공은 한층 더 성장했고 더 성장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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