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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Aug 01. 2016

아프면 아프다고, 아니면 척이라도.



그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오랜만의 점심 식사 모임이었고 메뉴는 내가 좋아하는 샤브샤브. 그리고 그 날 나는 아침을 먹지 못해 몹시 굶주린 상태였다. 나는 반대편에 놓여있던 물그릇을 집으려다 뜨겁게 달궈진 냄비에 그만 오른팔 안쪽을 데이고 만것이다. 갑자기 따끔해 팔을 얼른 들어서 확인해보니 팔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옆에 놓여있던 찬 물병으로 붉어진 팔에 바짝 붙여 냉찜질을 했다. 식사를 한 후엔 강의실에 올라갔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곳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던 것이었다. 어쩐지 계속 따끔거리더니 결국엔 물집까지 잡힐판이었다. 그것을 본 친구는 되레 본인이 놀라 어쩔줄을 몰라했다. 나는 구비하고 있던 의료상자에서 정말 아무렇지 않게 소독약을 꺼내어 바르고 아무렇지 않게 밴드까지 붙였다. 그 모습을 본 친구는 아프지 않느냐, 따갑지 않느냐, 정말 태연하다, 어쩜 그렇느냐, 나 같았으면 난리가 났을거라는 둥 호들갑을 떨었다. 참고로 그 친구는 요리를 하다가 칼에 손가락이 살짝 벤적이 있는데 어찌나 호들갑스럽던지 이러다가 쓰러지는거 아니냐, 감염되면 어쩌냐, 너무 아프다, 아파서 죽겠다는 둥 뭐 그런 말을, 내가 약국에 직접 데리고가서 약과 밴드를 붙여주는 그 순간 순간에도 계속해서 그 말들을 반복했던 전적이 있는 남자사람친구이다.

 오빠, 이게 뭐라구. 아무렇지도 않아, 정말. 그냥 따끔따끔거릴뿐이야.

 "야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해! 아니면 척이라도 하던지!"

나는 언제나처럼 대답했는데 그 순간 그의 말이 귀에 꽂힐줄은 누가 알았을까.


 어쩌면 나는 그런 척을 어떻게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내 모습을 오로지 이전에 쓴 글들의 주인공인 '너'에게만 보였었다. 나는 그 만큼 약하게 보이면 안되는 사람이라고 혼자 판단하면서 살아왔고 이쯤이야 나도 혼자서 할 수있다고, 나는 약하지 않다고, 강하다고 그렇게 표면적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 나는 평소에 아주 강하게 보이려한다. 보호받기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사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 나는 너무 여리고 마음이 약하고 눈물도 많다. 어찌나 눈물이 많은지 어린아이가 우는 모습만 봐도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사람들에겐 보여주고싶지 않다. 약한 모습은 절대 보이고싶지 않아 더 당당하게 보이려 애쓰고, 더 강해보이려 애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엄마의 영향이 큰건 아닐까, 싶다.

엄마는 약하다. 나는 그걸 잘 알고있다. 아빠의 부재로 엄마는 아빠이자 엄마여야했다. 그 오랜 세월을 억척스럽게도 살아내면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것을 나는, 나는 너무, 너무나도 정말, 너무 잘, 알고 있다.

어느 날 나에게 엄마는 이제 더 이상 눈물도 나지 않는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걸 나는 잘 알고있다. 엄마는 그저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절대로 보고싶어하지 않으며, 보려는 시도조차하지 않는다. 엄마는 자신이 약해지는것을 자식들에게 보이고싶지 않은것일 뿐이라는 걸 나는 아주, 아주 잘 알고있다. 강하고 당당하게 살아내야한다고 언제나 그녀는 나에게 말해왔다. 어쩌면 남자처럼 살아내야한다고까지 말할 정도였으니, 그녀가 얼마나 강하게 살아왔는지 알 수도 있을것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꽃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노을에 감탄한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제야 아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약해지면 안된다는 것을 잘, 너무 잘 알고 있다.

아, 그리고 어느 드라마에서 우연히 듣게 된 이 대사는 딱, 어느 날의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좋아하지마요. 누가 나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약해져요. 여기서 약해지면, 진짜 끝장이에요. 그러니까, 나 좋아하지마요.


그래, 그럼 진짜 끝장이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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