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어느 날이었다. USB를 '또' 잃어버린건지 어디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집안을 뒤지고 또 뒤지다가 짜증이나서 쌓아뒀던 감정을 폭발시켰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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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모르게 하는 것도 없어보이는 내가 너무 초라하고 바보같아 보이기 시작해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눈 뜨고 눈 감을 때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직시하곤 내가 뭐하는건가 싶어 이렇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고 언젠가부터 입에 달고다니게 된 '여기는 맛있는게 없어.'라는 말 때문인진 몰라도 어떤 음식을 먹어도 입맛이 없고 그렇다고 음식을 해먹어도 대충 끼니 떼우기식이니 당연히 균형잡힌 식단은 아니었다. 하는 것도 많이 없으면서 정신은 왜 그렇게 없는지. 중요한 약속을 잊어버리기도 했고 심지어는 목요일 오후에 고정으로 해야하는 일까지도 깜빡하고 집에 있던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도 길 위에서도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기가 언젠가부터 무서워졌고 두려워져 한 동안 언어 공부를 해도 입 밖으로 꺼내 적용하기는 커녕 '아, 그렇구나,'하며 머릿 속 창고에 그냥 쌓아두기만 했더랬다. 그러다 2주 전 그 날 터져버린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USB를 찾던 그 날 말고 그 다음 날, 학원에서 였다.
나의 언어 선생님인 소니아는 굉장히 에너제틱한 사람이다. 벌써 그녀를 알게된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섬세하고 배려가 깊은 사람이면서도 수업 중에는 스파르타식에 엄격하다. 어쩌면 그녀 덕분에 지금 어느 정도 내 의견을 누군가에게 표현하는 등 의사소통을 할 수있는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그 날도 그녀와의 수업 중이었는데 '말하기'부분에서 자꾸만 말이 꼬이고 실수를 해서 벌써 여러 번 지적을 받았더랬다. 우물쭈물 마무리를 짓긴했는데 내가 원하는대로 말이 나오지도 않을 뿐더러 자꾸만 지적을 받다보니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
아, 나 진짜 바본가, 진짜 짜증나아아...
이렇게 말하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엉엉 울어버렸다.
그런 모습은 처음 보여줬던 것이었기 때문에 그녀도 엄청 당혹스러워했다. 정말,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단 한번도 이런 모습을 보인적이 없었던 나였다. 몇 달 간 사람들에게 치이고 한국에서 들려오는, 내가 굳이 걱정해도 되지 않을 부분까지도 나 스스로 걱정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것과 내 불확실한 미래와 현재 생활, 언어 등등 그간 나를 억누르고 있었던 복합적인 감정들과 문제들이 한 순간에 펑!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나름 강하게, 꿋꿋하게 서 있었던 것 같은데 한 순간에 주저앉아버린 것같아 내가 더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소니아는 나에게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오로지 '언어'와 관련된 부분만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다 본인이 너무 힘들게 한다면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복합적이라며 모든게 다 너무 힘들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고싶다고 말했다. 그냥 다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여기 사람들, 좋은 사람들도 분명 있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다고. 언젠가부터 학교에서는 동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도 안 가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더라면서. 길 위에선 나를 보면서 중국인이라며 속닥거리는 사람들도 보기 싫고, 사람들에게 제대로 말도 못하는 내가 너무 싫다고... 그냥 다 너무 힘들다고. 한 동안 더듬더듬거리며 말하는 나를 바라보며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한서, 그래도 너가 나에게 그런 말들을 해줘서 나는 기뻐. 그만큼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는걸 의미하는거라고 생각해서 고맙네. 그리고 내 생각엔 너가 지금 향수병인 것 같다. 그래도 너는 지금 아주 잘 해내고 있어. 더 자신감을 가져. 학교에서는 선생님들 말을 이해를 못하겠으면 계속 질문을 해. 다들 너가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는 걸 아니까 다시 말해줄거야. 너는 당연히 외국인이니까 잘 못 알아듣는걸 아니까. 지금 수업도 너가 만약에 너무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면 꼭 나한테 말해 줘. 천천히 다시 하면되니까, 알았지?"
그리곤 "아피 먹으러 갈래? 내가 사줄게."로 마무리를 했다. 처음엔 괜찮다고 말을 하며 거절을 했지만 지금 내 기분엔 꼭 단 음료가 필요하다며 한사코 거절하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누군가 앞에서 울고 난 후로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지만 그렇다고 기분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왜인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어서 며칠 더 우울한 상태로 지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진 기억이 나진 않지만 천천히 그래도 나름 천천히,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자, 나보다 더 힘들고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주어진 일과 삶에 만족하자, 그런 마음과 생각을 가지면서 새로운 취미를 가지고 거의 매일 실천하고 있는데 이 다음에 다시 언급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