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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an 11. 2019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

2018년 12월 16일 <Day 2>


 아르마스 광장에서. 10:18 AM

 햄버거 가게 아주머니와 인사를 한 후 식당을 나섰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자 복작거렸던 성당 앞이 조금은 한산해져 있었다. 나는 공원 안으로 들어가 중앙에 놓여있는 분수를 바라보면서 밴치에 앉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원 안으로 조금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회색빛이었던 하늘에 구름도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고 쿠스코에서 유명한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Free walking tour 멤버들도 그 주위에서 투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야외 밴치에 앉아서 가만히 앉아있는 게 너무 오랜만이었다. 볼리비아에 있을 땐 공원에 앉아 있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길 위에서 걷고 있기만 해도 지나가면서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부담스러운데 공원에 앉아서 그들의 구경거리가 될 것을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그렇다고 이 곳, 쿠스코에서 동양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다르다고 할 순 없다. 내가 공원에 앉아있는 동안 지나가던 어떤 현지인은 'Hola, chinita!(안녕, 중국인 여자!)'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고 지나가면서 혼자 앉아있던 날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아르마스 광장엔 동양인이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공원을 거닐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Plaza de Armas의 분수 앞에서.

공원에 한참을 앉아있던 나는 여행을 오기 전에 미리 마추픽추 1일 투어 예약을 했던 여행사를 들러 예약 확인을 하기로 했다. 2층에 있는 여행사로 가기 위해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데 마침 위에서 내려오던 직원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분명히 페루 사람인데 한국어로 인사를 하는 그의 발음은 완전히 한국인이었다.

 "한국어 너무 잘하시네요!"

그래서 그는 당연히 수 백번은 들었을 이 질문을 나 또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고마워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마추픽추 예약을 확인하려고 왔다는 말을 하자 검은색 파일을 꺼내어 차례로 넘겨보면서 내 예약증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 파일을 넘길 때 언뜻 보기에도 98%는 동양인이었는데 약 90%가 한국인이겠거니 싶었다. 이렇게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여행사이기에 한국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었다. 잠시 후, 내 여권 복사본과 예약증을 찾았고 그는 내 앞에 마주 앉아 마추픽추 1일 투어와 관련해서 그 날 하루 스케줄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서 내일 오후에 다시 와서 최종 확인을 하면 버스 티켓과 기차표를 건네주겠다고 했다. 예약 확인 후 그 여행사에서 마추픽추를 예약하는 사람들에게 준다는 "Yo, estuve en Machupicchu(나는 마추픽추에 있었다.)"라는 문장 마추픽추 이미지와 함께 박혀있는 기념티셔츠와 스케줄 설명이 적힌 지도(?)를 받고 여행사를 나왔다.

이후 Avenida el Sol에 위치해있는 Municipalidad Provincial del Cusco에 가서 Sacsaywoman패키지 티켓(70 솔, 약 21,000원)을 구매했다. 보통 다수의 여행객들이 쿠스코 풀 패키지 티켓을 180 솔(약 55,000원)에 구매하는데 나는 AirBnB 투어로 대성당과 도심 및 삭사이와만 투어를 신청을 했기 때문에 이 티켓만 구매해도 되었다. 내가 그 티켓을 구매하려고 하자, 매표원이 '확실히 이 티켓을 구하는 게 맞냐'는 물음으로 거듭 확인했다.

 "1일권이고 절대 환불 안돼. 그래도 괜찮아?"

나는 괜찮다고 했고 성공적으로 구입했다.



Municipalidad Provincial del Cusco 주소 : Av El Sol 185, Cusco 08000, Perú

* 아르마스 광장에서 매우 가까우니 괜히 택시 탈 생각하지 말 것!

이 곳에서 쿠스코에서 투어를 할 때 필요한 패키지 투어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쿠스코 시내 박물관, 삭사이와만, 친체로 등등 주로 여행객들이 가는 여행지를 통합한 티켓을 판매한다


그 후엔 Claro통신사에 휴대폰 USIM을 구입하러 갔는데 일요일이라 다 문이 닫혀있었고 열린 지점에서는 USIM이 없다고 했다.

 "그럼 일요일엔 어디서 구입할 수 있어요?"

직원에게 문의해보니 일요일에 유일하게 문을 여는 지점은 내 숙소가 위치해 있는 Avenida Cultura에 있는 Claro 통신사 중앙점이란다.

 "아, 너무 멀리 있는데..."

사실 숙소가 아르마스 광장에서 아주 멀리 위치해있긴 하다. 이 숙소를 예약하기 전에 좀 더 꼼꼼히 알아봤어야 했는데. 물론 숙소를 광장 근처 호스텔로 잡았더라면 광장 내에만 머물고 다른 곳을 나갈 일이 없긴 했겠지만 그래도 택시비는 절약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까 여행사에서도 픽업 서비스 이야기를 하다가 사장님에게 내 숙소 위치를 말했더니 “Uy, está el fin del mundo, Señorita! (어휴, 세상의 끝에 있네요, 세뇨리따!)”라는 대답이 돌아왔었다. 그래, 숙소가 인간적으로 너무 멀긴 해... 그 말인 즉, 쿠스코에선 택시비를 밥 값보다 더 지불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오늘은 유심을 사지 못했다. 굳이 유심칩을 사러 숙소 근처까지 갔다가 아르마스 광장으로 다시 돌아올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니 내일 구입할 수밖에.

광장으로 다시 돌아와서 아주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공원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커피를 마시고 싶어 광장이 한눈에 보이는 스타벅스에 올라 와 앉았다. 가족과 통화도 했고 아이스 라떼를 마시며 광장을 내려다보며 글을 썼다.

Starbucks 아르마스광장점.



Starbucks 주소 : Loreto 115, Cusco 07777, Perú

스타벅스 입구는 큰 길가에 있지 않다. 지도에 표시된 붉은 선을 따라 호스텔 입구로 쭉 들어가면 스타벅스 마크가 보이고 그 왼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입구를 만날 수 있다.



 광장 근처에서. 11:30 AM

  12각 돌을 보다.


 11시 30분 즈음 스타벅스에서 나와서 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Piedra de los 12 ángulos (12 각돌) 쪽으로 걸어갔다. 오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12각 돌을 보기 위한 길에 있었다.

12각돌을 보러 가는 길.

돌을 만나러 가는 길을 따라 쌓여있는 돌담이 너무 인상 깊었다. 과거 잉카인들은 훌륭한 건축가들이었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이 곳에 이렇게 와서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니 그 말이 확실히 와 닿았다. 어떻게 이렇게 빈틈없이 돌을 쌓았을까, 감탄을 하면서 돌과 돌 사이를 그렇게도 관찰했더랬다.

Piedra de los 12 ángulos (12각 돌). 그리고 그 주위에 빈틈없이 쌓여있는 돌들이 인상적이다. 어찌 보면 마치 줄이 그어진 하나의 덩어리 같기도 하다.

올라가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의 뒤 쪽을 보면 다른 돌보다도 크기가 큰 12개의 모서리를 가진 돌을 발견할 수 있다. 참, 듣기로는 저 돌들 앞에 볼록하게 나온 것들이 손잡이였다고 한다. 잉카인들이 돌을 옮길 때 그 부분을 잡고 쉽게 밀어 옮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하나의 장치라고 한다. 쿠스코 골목골목을 걸어다니다보면 마주칠 수있는 이 돌담들을 잉카인들이 저렇게 볼록한 손잡이를 잡고 직접 옮기고 '어떻게하면 완벽하게 쌓아 올릴 수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아름답게 쌓아올렸을 것을 생각하니 뭔가 울컥하기도 했다. 내가 이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엄청난 자부심을 가졌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iedra de los 12 ángulos 주소 : Calle Hatunrumiyoc 480, Cusco 08000, Perú

붉은 화살표까지 천천히 걸어올라가면서 잉카인들이 빈틈없이 완벽하게 쌓은 돌담을 구경하다보면 길의 오른쪽에서 12각 돌을 발견할 수있다.


 광장에서. 12:00PM

 광장을 걷다가 그림을 판매하는 여자를 만났다.  


12각 돌을 본 다음 골목골목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내려왔더니 오후 12시가 되었다. AirBnB를 통해 예매한 도심투어 호스트와는 1시에 성당 앞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남은 1시간은 무엇을 할까, 하다가 그냥 광장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로 했다. 스타벅스가 있는 건물 아래, 닫혀있는 가게들를 기웃거리다가 건물에 몸을 기대고 아르마스 광장 쪽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이 사진을 찍은 후 멍하니 서있던 내 앞으로 한 여자가 그림을 담은 나무 상자를 들고 다가왔다. 그녀는 분명 본인이 가지고 있던 그림을 팔기 위해서 나에게 다가와서 이런 그림, 저런 그림을 보여주었다. 큰것부터 작은것까지 다양한 그림을 보여줬는데 그림들이 꽤나 멋져보였다. 그래서 그녀에게 직접 그린것이냐고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했다. 본인 남편과 본인이 예술가라면서. 비슷한 그림을 파는 사람들이 많던데 진짜 본인과 남편이 그렸거나 말거나 내겐 별 상관은 없었다. 작은 체구에 길고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늘어뜨린채 어눌한 발음으로 본인이 가진 작품을 설명하는 그녀에게 나는 '예쁘네요. 그런데 당신은 여기 살고 있어요?'라고 질문했다. 그렇게 그녀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29살의 그 친구는 결혼을 했고 딸 아이가 있다고 했다. 물론 처음부터 본인의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이곳에 사냐는 내 질문에 조금 당황스러움이 얼굴에 비쳤지만 본인이 살고있는 지역의 이름을 말했다.

 "쿠스코 시내엔 살진 않아. 저기 보이니? 저 위쪽에 살아."

그녀는 열려있던 나무상자를 닫고 왼손으로 상자의 손잡이를 꼭 붙잡았다. 그리곤 오른손으로 광장 너머 보이는 산을 가리켰다. 빽빽히 밀집되어 있는 붉은 벽돌 집들 중 하나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과 그녀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다가 '그렇군요, 꽤 멀리 살고 계시네요.'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

중국인, 일본인이 아니라 내게 어느나라 사람이냐는 물음을 한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나도 조금 놀랐었다. 그렇지,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국적을 '맞추려고 하는게 아니라' 그 또는 그녀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는게 상식이지. 한국에서 왔다는 대답을 했더니 스페인어 참 잘하네, 라는 말이 돌아왔다.

 "사실 볼리비아에서 일하고 있어요."

내 대답에 흥미로워하며 그녀는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서 볼리비아와 페루의 차이점에 대해서 물어보기 시작했다. 비슷한 문화이지만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저것 말을 하다보니 30분이 훌쩍 지났다. 사실 그녀는 내 국적을 물어본 후에 "여기 사람들 많이 믿지마."라며 조심을 시켰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 하마터면 '그럼 너도 믿으면 안 되는거야?'라고 말하할 뻔 했다. 그러나 대화가 진행되면서 신뢰가 형성되었기에 그 말을 하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가, 다음에 또 만나! 좋은하루 보내!"

그렇게 그녀와 헤어지고 나는 다시 광장으로 들어갔다.

Basílica catedral del Cusco


이른 아침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있었다. 광장의 가장자리에 놓여있던 밴치에 앉아있었는데 그곳에서는 목도리를 파는 친구를 만났다. 나와 동갑인 이 친구는 내게 다가와서 여느 판매자처럼 다가와서 목도리를 들이밀었다. 그녀에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미 가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여기 살아요?”라는 말로 그녀와의 대화의 문을 열었다. 아까 만났던 친구와의 대화 패턴이 비슷했다. 국적, 언어 능력에 대한 이야기며, 가족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이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친구와의 대화에서는 통성명까지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알고보니 이 친구가 나와 동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오! 우리 동갑이야! 친구하자!'라고 말하면서 그녀를 벤치에 앉히고 또 30분을 떠들었다. 사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했었던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한 가지, 그 친구가 말하길 한국인들은 Cusco라고 적혀있는 기념품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던게 생각났다. 그녀의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맞아, 한국인들은 그렇지. 그 곳에 갔던 것을 기념하고 싶어서 그런 이름이 있는 물건을 사고싶어하거든.”

한참을 떠들다가 대성당의 시계를 봤더니 벌써 1시 15분이 다 되어갔다. 그녀에게 내가 투어를 신청해뒀다고하니 '그럼 이제 널 놓아줄게.'하면서 정말 좋은 대화였다고 다음에 또 만나자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나서 마지막엔 다음에 다시 만날 땐 본인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 하나정도는 사달라는 말을 남기고 날 떠났다.

 “다음에 또 봐! 그 땐 이거 구매해줘야 돼, 알았지?”

결국 그들은 모두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들과의 짧은 대화의 순간만큼은 내겐 진정으로 좋은 친구가 되어줬다. 어느 곳에서건 우리를 스치는 사람은 다 인연이다. 그런데 스치기만해도 인연인 사람들을 붙잡고 30분 이상 대화를 했다는 것이 나에겐 참으로 좋은 시간이었다. 언제 이곳에 터를 잡은 이들로부터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는가, 이 때가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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