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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ul 3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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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묵을 방은 4인실이었다.


내가 묵을 방은 4인실이었다. 방은 2층 침대 4개로 가득 차 있었지만 꽤 넓은 편이었다. 아직까진 주인이 없는 방이니 어느 침대를 사용하든 상관없다고 하셨기에 나는 바다가 보이는 창가 쪽 침대의 2층을 선택했다. 협재가 한눈에 보이는 자리이다. 나는 짐을 구석진 자리에 밀어놓고 테라스로 나갔다. 진눈깨비와 시리디 시린 바람이 두 뺨을 때렸지만 이내 적응했다. 난간에 기대 아래를 내려다보자 어느새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사장님과 내 자전거를 내려준 남자가 바쁘게 움직이는게 보였다. 남자는 두 손 가득 무언가를 나르기 바빴고 사장님은 자동차에서 내리는 또 다른 남자를 게스트하우스 안으로 안내했다.

 여행객이구나.

나는 고개를 쏙 빼서 새로 온 게스트가 게스트하우스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자세히 보려고 난간에 더 깊이 기댔다. 그 순간 차갑고 드센 바람이 내가 쓰고 있던 후드 모자를 벗겼고 그런 탓에 나는 뒷걸음질 쳐 난간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더 차갑게 몰아치는 진눈깨비 때문이라도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5시가 다 되어간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점심까지 굶었으니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저녁 시간 전에 나는 1층에 있는 공용 샤워실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후 검은색 티셔츠와 수면바지로 갈아입고 그 위에 후드 집업을 걸쳤다. 따뜻한 물로 씻고 나니 피로가 조금 풀린 느낌이었다.

 엄마야!

 “아이고, "

여자 샤워실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이었다. 오른쪽으로 나있는 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어떤 남자 때문에 손에 쥐고 있던 세면 가방이 떨어졌다. 남자는 내 목소리에 더 놀란 것 같았다.

 “미안해요. "

나는 바닥에 떨어진 세면도구를 줍고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저도 죄송해요.

남자는 빙긋 웃으며 오른손으로 길을 안내했다. 나는 목례를 하곤 앞장서갔고 숙소로 올라갔다. 뒤 따라오는 남자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샴푸 냄새가 코끝에 맺혔다. 그러다 그의 발소리는 2층 숙소에서 멈췄다.

 “저기, 있다가 저녁시간에 요. 6시 반부터래요. "

 아, 네.

나는 고개를 돌려 인사를 하곤 다시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시계를 보니 5시 30분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감싸고 있던 수건을 풀어 물기를 털어냈다. 그리고 가방에서 노트북과 함께 초코바 하나를 꺼내어 베어 물었다.

 어디까지 썼더라.

노트북을 열자마자 흰색 바탕 위에 깜빡이는 커서가 보였다. 나는 두 손을 키보드에 올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나는 내 이야기를 쓰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인물의 글이 아니라, 온전히 나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홀로 글을 쓰는 건 처음인 나에게, 특히나 내 이야기로 나의 처녀작을 만든다는 건 특별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 그리고 제주도에 도착했다.


여전히 이 문장의 꼬리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마침내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무래도 이렇게 쓴다면 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앞으로의 일정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고  제주도에서의 내 삶과 모습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딱 하루하루의 일기가 모인 글이 아니고 뭐겠는가. 그렇다고 내 인생에 드라마틱한 남자 주인공도 없을뿐더러 정말 평범한 일상 에세이가 되겠거니.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글'이라는 것을 쓰는 건 처음이 아니다. 장편의 글을 쓰는 것은 처음일지 몰라도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글을 쓰는 동아리에 속해 있으면서 문예 대회에 나가 A4용지 두 세장 짜리의 짧은 수필이라던지 독후감 따위를 쓴 경험은 있다. 내가 속해있었던 동아리는 다른 학교 학생들과 모여 독서토론을 하기도 했고 그 지역에선 어느 정도 규모도 크고 꽤 오래된 동아리였다. 그러나 그 동아리엔 불행하게도 짧은 수필과 독후감 따위로 유일하게 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학생이 있었다. 그게 바로 나였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 후부터는 글을 쓴다는 것을 멈췄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회를 나가면서 내게 주어지는 장학금이나 상금을 받을 생각으로 글을 썼다. 그것이 아니라면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나는 욕심이 있었다. 어린 나는, 욕심이 있으면 글에도 그 욕심이 묻어난다는 것을 몰랐다. 더 잘 쓰고 싶어서 꾸밈말을 쓰고 말도 안 되는 글을 써 내려가곤 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글 쫓아 쓰다가 문득 지쳐버린 것이다.

타이핑하던 손가락이 멈춘 건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을 때였다.
 누구세요?

 “들어가도 돼요?"

사장님의 목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렸다. 나는 글을 저장하고 노트북을 닫았다.

 네, 들어오세요.

사장님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얼굴을 비죽 내밀었다.

 “춥지는 않죠?"

 네, 따뜻해요.

 “아까 또 다른 분이 오셨는데, 인사도 하고 여행정보도 서로 나누고 할 겸 저녁 시간에 봐요. 6시 30분이요!"

사장님은 내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덧붙였다.

 “그럼 쉬어요!"

 네.

나는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손목시계를 보았다. 6시. 지금 식당에 내려가서 바다를 감상하고 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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