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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ul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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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제주도에 도착했다.



하늘은 맑지 않았고 제주도의 바람이 조금씩 내리는 진눈깨비를 공항 입구까지 들여보내고 있었다.

처음 오는 제주도에선 차갑고 축축하고 시린 냄새가 났다. 공항 밖으로 나가자마자 야자수가 보였고 찬 바람이 내 두 볼과 두 손을 스치며 아리게 했다. 앞으로 나의 여행은 자전거로 이뤄질 것이다. 아무리 겨울의 끝자락이라 하지만 이 시기에 자전거로 제주도 여행을 한다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내가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 한 이유는, 간단하다. 나에겐 면허증이 없다는게 가장 큰 이유였고, 나는 자전거를 잘 탄다. 학창시절 나는 자전거로 매일 등교했고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한 손으로 자전거를 운전할 수있을 정도로 자전거를 타는 능력은 내가 생각해도 대단했다. 그리고 중요한건 나는 내가 언제 돌아갈지 몰랐기 때문이다.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공항에 도착하지 않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30분 정도 더 늦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30분이라….

여느 드라마처럼 공항에 도착하면 누군가가 바로 데리러 오거나 여느 영화처럼 택시가 바로 잡히는, 그런 상황은 정말 현실에선 드물거나 없다.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실제 세상에 살고있으니까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라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나는 제주 공항 게이트 앞에 나온 순간부터 그런걸 바라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공항으로 다시 들어가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노트북을 열자 여전히 깜빡이고 있는 커서가 보였다.

 ‘그리고 나는 제주도로 떠났다. ’

 사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다. 글을 쓰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내 인생에 있어서는 처음 하는 여행이고 창작이기에 나는 지금 누구보다도 설레고 두렵다. 나는 한참을 깜빡거리는 커서만 바라보다 키보드 위에서 마침내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많이 지난 것 같아 시계를 보니 30분이 조금 넘었고 부재중 통화가 한 통 와있었다. 노트북을 닫고 다시 가방에 넣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재중 통화에 이어 온 문자메세지는 2번 게이트, 은색 스타렉스’라는 정보를 흘려주었고 나는 그 정보를 담고 공항에서 빠져나왔다. 문자 그대로 2번 게이트 앞에선 은색 스타렉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보조석 창 너머로 한 여성이 보였고 그녀는 30대 중반의 밝은 이미지의 여성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전에 내가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할 때 전화상에서 들은 목소리와 동일했다.

 "자전거가 있네요, 트렁크 열어드릴게요!"

내가 가지고 온 자전거를 트렁크에 싣고 차에 올라타자 그녀는 히터로 차 안 공기를 덥히며 두 손을 비볐다.

 “많이 춥죠?"

흰색 코트를 입고 컬이 들어간 짧은 단발은 아주 단 시간 그녀를 스치는 사람들이 그녀가 20대라고 생각하게 만들것이다.

  “제주도는 자주 와보셨어요? ”

그녀의 친근한 목소리에 왜인지 긴장하고 있던 나를 서서히 편안하게 만들었다.

 아뇨, 처음이에요.

 “아, 그래요?”

룸 미러로 눈을 마주치며 사장님은 친근한 어투로 내게 말했다. 게스트하우스까지 가는 길은 약 1시간이 걸렸는데 그 시간 동안 사장님은 제주도에서 꼭 가봐야 하는 명소를 몇 곳 알려주셨다. 천지연 폭포, 오설록, 서귀포 중문, 성산일출봉. 여러 가지 많이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귀에 박힌 장소는 이 네 가지였다. 다른 곳은 휴대폰이나 관광객들에게 물어보며 다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사장님이 다시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왜 제주에 오게 된거에요?”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냥, 오고 싶었어요.

사장님의 질문은 마치 엄마가 내게 물어온 것에 답한 것과 똑 같은 답변을 하게 만들었다. 많은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나에겐. 그저 내 혼자 있을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오고 싶었고, 여행을 하고 싶었고, 글을 쓰고 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오로지 혼자서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하, 내가 너무 당연한 질문을 했네."

사장님은 내 대답을 듣고 룸 미러를 통해 굉장히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다 다시 제주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내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묵을 게스트하우스는 협재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동안 진눈깨비는 흩뿌리는 비가 되어 내렸다. 제주도 시가지를 벗어난 후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은 옹기종기 모여있는 밭에 뿌연 물안개가 덮여 그 자체만으로도 신비롭게 느껴지는 비오는 제주도의 풍경이었다. 시가지를 벗어날 때까지 제주도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하던 사장님은 이젠 자신의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에 협재해수욕장이 있는데, 여름에 가족단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에요. 바다가 얼마나 푸르른지 바닷 속이 다 보일 정도로 맑고 수심도 얕아요. 가끔 손님들이랑 바다낚시도 나가곤 하거든요? 어유, 겨울바다가 얼마나 낭만적인지 몰라! ”

그리고 사장님은 자동차의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내리막길이지만 급하진 않았다.

 “자, 이제 거의 다 왔어요. ”

긴 내리막이 끝나고 방향이 다시 오른쪽으로 틀자 왼쪽으로 게스트하우스가 보였다. 자동차는 게스트하우스 주차장으로 빨려들어가 듯 매끄럽게 들어갔다. 그리고 눈앞엔 장관이 펼쳐졌다. 비가 흩날리는 협재해수욕장은 뿌연 하늘 밑에서도 맑게 빛나고 있었다. 자동차는 멈춰섰고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무언가에 홀린 듯이, 비를 맞으며 바다 쪽으로 걸어가려 했다.

  "예쁘죠?"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네요.

나의 뒤쪽에서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바다에 시선을 떼지 못한채로 대답했다.

 “늦었네! ”

게스트하우스 입구에서 내려오며 한 남자가 외쳤다. 남자는 자동차 뒷문을 열며 내 자전거를 꺼내 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어으으, 춥다. 얼른 들어가요! ”

나는 그들을 따라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여러 번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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