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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Aug 10. 2016

3

저녁시간.



식당이 아니라 카페 같았다. 나무로 꾸며진 게스트하우스 식당의 오른쪽엔 부엌이, 왼쪽에는 온돌마루가 놓여있었다. 마루 위에는 전기장판과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그 주위를 작은 책장이 ㄷ자로 둘러 싸고있었다. 책장에는 수십 권의 책이 꽂혀있었다. 입구의 맞은 편 창가엔 난로가 피워져 있었고, 그 위엔 호일로 둘둘 싸인 무언가가 올려져 있었다. 그 아래로 조그맣게 불이 일렁이는 모양이 보였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따뜻해지는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조용히 창가로 다가가 난로 근처의 테이블에 앉았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유리창 너머를 보았다. 게스트하우스 옆의 야자수 나무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고 눈과 비는 여전히 바다 위로 떨어지고 있었고 파도는 그런 눈비를 빠르게 삼키고 있었다. 해변을 거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파도는 자신에게 다가오지말라고 경고하 듯 들숨과 날숨을 거세게 쉬는 듯했다. 그리고 뿌연 안개 너머로 멀리 보이는 섬은 먹이 번진 수묵화처럼 보였다. 그렇게 비바람과 진눈깨비, 파도는 더 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어머, 내려와있었네요!"

부엌에서 나온 사장님은 나를 보더니 빙긋 웃어 보였다. 한 손에는 접시를, 또 다른 한 손에는 수저를 들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도와 드릴까요?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기보단 그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럼 너무 고맙죠!"

사장님과 함께 부엌으로 들어서자마자 게스트하우스 직원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제주도 처음이라구요?"

그는 문어를 손질하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멈춰 그 광경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남자의 물음에 조금 늦게 대답했다

 네.

남자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능숙한 솜씨로 문어다리를 얇게 썰었냈다.

 “문어 숙회 드셔보셨어요?"

 먹어 보긴 했는데, 분명 훨씬 맛있을 것 같아요.

그는 문어를 가득 담은 접시를 사장님에게 전달했고 이내 그녀는 내게 그 접시를 건네주었다. 나는 부엌에서 나와 테이블에 접시와 수저를 셋팅 했다. 뒤따라 나온 사장님은 상추와 초장을 테이블에 놓았고 맥주와 제주도 특산주를 꺼내놓으셨다.

 “안녕하세요."

목소리가 들린 입구를 바라보자 좀 전에 마주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검정색 트레이닝바지에 하얀색 후드티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걸어오는 모습이 편안해 보이면서도 왠지 우스꽝스러웠다. 트레이닝 복 바짓단이 그에겐 너무 짧아 보였다.

 “제가 할게요."

남자는 국과 밥을 가득 채운 쟁반을 내 손에서 가져갔다.

 아, 고맙습니다.

그는 마찬가지로 테이블 위에 음식을 올려놓은 후, 들고 있던 쟁반을 가지고 부엌으로 걸어들어갔다. 부엌에선 사장님의 목소리로 다 되었으니 테이블에 앉아있으라는 말이 들렸다. 그 말에 남자는 뒷목을 긁으면서 천천히 부엌에서 걸어 나왔다.

 “어, 이제 앉아 계시면 된다고 하세요."

나는 고개를 짧게 끄덕인 후 의자에 앉았고 남자는 내 맞은 편에 앉았다.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나는 어둠이 떨어지는 바다만 바라보았고 남자는 그런 나와 밖을 번갈아 치어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두 사람 모두 먼저 입을 열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곧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앉은 자리에선 다들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아주 잠시 동안, 모두가 아무 말이 없었다. 테이블 위에선 수저가 부딫히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러다 먼저 정적을 깬건 사장님이었다. 그녀는 산뜻한 목소리로 자기소개 시간을 가지자고 말했고 자신의 이름은 ‘신주연’이라는 것과 그녀를 도와 일하는 남자는 자신의 친동생이라는 것을 언급했다. 나는 내 이름과 23살 대학생이라는 것을 밝혔다. 제주도에 온 구체적인 이유는 그저 ‘여행’목적이라고만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는 28살, 사진작가이며 지금은 자전거여행객이고 오늘까지 여행 3일 차라고 말했다. 그리고 박해진. 박해진이라고 했다.

 프로면 연예인들도 꽤 많이 보셨겠어요.

 “인물 위주 사진은 찍은지 얼마 안되서요. 그렇게 많이 본 적은 없어요.”

 “사진 작업 한 연예인들 중에 가장 유명한 연예인은 누구에요?”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 대답했다.

 “이은재요.”

 “어머!”

 우와!

사장님과 나는 눈이 커졌고 둘은 동시에 소리질렀다. 나는 입을 떠억 벌리고 멍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나 이은재 엄청 좋아하잖아!”

사장님의 반응에 남동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박해진씨는 웃으며 딱히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사장님은 몇 분 전과는 조금 다른 관심의 눈빛을 그에게 보내며 이것저것 물어보기 바빴다. 물론, 이은재에 대해서. 그렇게 저녁식사 시간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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