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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Dec 19. 2023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가 왔고, 너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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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8 초, 마지막 글이 너에 대한 글이었더라구.

2022년에 글이 하나도 없었던 이유도 너는 알겠지, 우린 가끔 서로에게 연락을 했었으니까. 

 준! 나, 남미로 다시 가게 되었어.

 축하해! 너가 하고 싶어 하던 일이었잖아!


우리는 국경을 넘어 누구보다도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가 되었. 너와 꾸준히 연락하는 그 6개월 동안 거의 2주에 한 번씩은 6시간 혹은 7시간 정말 많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었지. 그렇게 너와 이야기하는 게 나는 좋았어,


젠가 봄, 가 내게 보내준 벚꽃 사진을 보면서 나는 점심시간이면 벚나무가 즐비한 공원으로 가서는 흩날리는 벚꽃을 보면서 설레어하고 행복해했더랬지. 너와 시간을 보내는 그 순간순간을 사랑했고, 너를 생각나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을 볼 때마다 행복했어.


그와 동시에 나는 사실, 그 긴 시간 동안 많이 지치고 힘들었어.


너와의 우연이, 인연이 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네가 한국에 아니면 내가 일본에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그런 상상을 하며 너와 연락을 했었지. 그리고 네가 나를 만나러 왔으면 좋겠다는, 태블릿 PC가 아닌 현실에서, 로의 눈앞에서, 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거리에 네가 앉아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그런 욕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정작 내 곁에 네가 없음에도 마음이 힘들었던 것 같아.


그랬던 나를, 너는 알까. 

네가 나에게 너의 출퇴근용 붉은색 자전거를 보여준 이후부터 중랑천에 밤산책을 나갈 때마다 돌다리를 건너는 그곳에 세워져 있던 자전거, 네가 가진 것과 비슷한 그것을 볼 때마다 내가 너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말이야. 그리고 언젠가 그 산책로를 걷다 다리 밑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너 때문에 하염없이 울었던, 그날의 나를, 너는 알까.


마지막 글이 2021년 8월 초에 쓰였더라고,

너에 대한 글이야.

그 시기에 나는 그렇게.. 여러모로 많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어. 꾸만 살이 빠지고 초췌해지는 나를 곁에서 지켜보던 내 친구 '너와 동향인 사람이 있으니, 친하게 지내보라' 누군가를 내게 소개해줬었지.


좋은 사람이었어,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더라. 그 사람은 무엇보다 나를 많이 좋아해 주었어. 그렇게 그 사람과 연락을 하기 시작했고 21년 8월 말, 가 내게 왔어.


 준! 나, 남미로 다시 가게 되었어.

 축하해! 너가 원하던 일이었잖아!

 그리고 준, 나 남자친구가 생겼어.

 아, 그래? 어떤 사람이니?


그 찰나에, 놀라 하던 너의 습과 어색하게 웃으며 축하한다 말하던 너의 입. 아니, 뭐... 너는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 준 거겠지,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너는 그렇게 진심 어린 축하를 해줬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어. 나는 다시 남미로, 너는 너의 일상을 살아가게 되었지.

가끔 내게 먼저 연락을 해주곤 했던 너 남미를 그리워하며 내 이야기를 종종 듣고 싶어 했더랬지.


준, 생각해 보면 난 정말 불안정한 삶을 살아왔었던 것 같아.

볼리비아로 떠나왔을 때도 나는 불안정했고, 너를 처음 홈스테이집 욕실 앞에서 마주쳤을 때도 불안정한 상태였고,

너와 함께 공부를 할 때에도, 너와 함께 공원을 걸을 때도, 너와 함께 살던 그 홈스테이 집 부엌 식탁에서 밥을 먹던 그 순간순간에도,

그리고 네가 내 손을 잡았던 그 밤에도 나는 불안정한 상태였지. 

그런데 그런 순간, 순간을 채워 안정을 느끼게 만들어줬던 건 너였어.


준, 이제야 네게 말하지만 나는 사실, 많이 힘든 시기를 보냈었어.

몇 번 만나지 못한 그와는 1년을 떨어져 있어야 했잖아. 그와 12시간의 시차로 연락을 한다는 것은 많이 힘들었고 다른 나라 사람이랑 일을 한다는 것도 쉽지 않더라.

하하, 가끔 네게 이야기하며 넌 어떻게 버틸 수 있었냐고 물어볼 땐 그냥, 버틴 거지 뭐. 나도 많이 힘들었어, 하며 웃기도 했지...

힘든 그 시기를 많은 사람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지만 사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공통적으로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너와 대화하면서 가장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


그래서 네가 그 겨울에 한국으로 놀러 온다고 했었을 때, 나는 너무너무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사실 많이 떨리기도 했어.


네가 연말에 휴가를 내어 한국을, 그리고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들른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너를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그 순간이 온다는 사실이 설레기보단 마냥 반갑게 느껴지더라. 정말 다행이게도 너에 대한 나의 감정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으니까 반가움이 이젠 더 컸겠지.

나는 그 당시에 서울에 살고 있지 않았지만 네가 온다면 흔쾌히 너를 데리러 인천공항에 가려고 했었더랬지. 네 비행기 시간만 내가 잘 알고 있었더라도 너를 공항에서 마중했을 텐데, 너무 아쉬웠어.

너의 숙소가 영등포 쪽이길래 그 근처에서 삼겹살도 먹고, 다음 날엔 남이섬도 함께 가고 그리고 마지막 날엔 너와 함께 커다란 토끼와 크리스마스 마켓이 꾸며져 있던 광화문거리를 걸으며 사진도 찍었더랬지.

그때도 우린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 남이섬으로 가는 그 열차 안에서도, 삼겹살을 먹으면서 너와 소맥을 처음 마셔보는 그 순간에도, 커다란 토끼와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는 그  모든 순간순간,  우리 둘 사이엔 소리의 빈 틈이 없었어. 어쩜 이런 사람이 있을까. 우리의 언어가 아닌, 제3 국의 언어로 소통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쩜 이렇게 빈틈없이 대화가 가능할까. 예전에도, 그때도, 그리고 그 지난 연말 그 순간에도 너는 여전히 사람을 참 편안하게 하더라.

  이제 다음 여행지는 어디라고 그랬지?
  일본으로 돌아가야지.
  어?
  연말에 본국에서 지내고 싶진 않았어.
  베트남은? 캄보디아는?

그리고 너는 그저 웃었지.


준. 만약 그때, 볼리비아에서 내가 너의 손을 더 꼭 잡았다면, 우린 조금 달라졌을까. 지금 내 옆엔 다른 사람이 있지만, 가끔 너를 떠올리면 그 시절 내 모습이, 우리의 모습들이 떠올라서 참 좋아.

이제 딱, 거기까지겠지.

너는 잘 지내고 있겠지?
소맥을 왜 먹냐며 이해할 수없다고 해놓고 몇 잔을 내리 마시던 너, 눈 나리던 그 겨울의 남이섬, 꽁꽁 얼어붙은 강을 인생 처음으로 본다던 너, 그 강물의 얼음을 한참 깨며 장난을 치던 너,...

영등포 그 삼겹살 집 앞을 지날 때도, 남이섬에도 이젠 곳곳에 너가 있겠지. 가깝지만 먼 나라에 살고 있는 너의 소식이 앞으로도 참 많이 궁금할 거 같아.

영등포 지하철역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며


준,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의 행복을 빌어주는 네가

정말로 행복했으면 좋겠어.

언젠가, 꼭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렇게 그렇게 속으로 생각을 하며

마음속에 남은 잔잔했던 너를 떠나보냈어.

인정이 많고 선한 사람...


2023년도 연말에 2022년, 그 연말의 너와 나를 떠올리며

이만 글을 줄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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