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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Sep 06. 2016

6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그래서 누나가 8년 전, 그러니까 그 남자랑 약속한 날의 이틀 뒤에 바로 날아왔었죠, 여기로. 그런데 오면 뭐해? 하루 죙일 기다려도 없는데. 그 날 저한테 전화를 해서 웁디다. 얼마나 대성통곡을 하던지. 그러곤 서울로 돌아와서는 아무렇지않게 잘 지내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다 잊었겠거니 했는데 그 다음 달에 사직서를 내더라구요. 제주도로 가겠다면서.”

그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곤 이해 할 수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해가 안 가죠? 저는 어땠겠어요? 제가 누나를 한 달 동안 매일 말렸는데 어휴, 고집은 어렸을 때부터 황소고집이라 꺾지도 못했어요. 그렇게 와서는 언젠가는 그 남자가 찾아오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여기에 이렇게 집까지 지은지 8년이네요, 8년. 젠장할.”

 “용기가 없었던게 아닐까요?”

지금껏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박해진씨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오른손엔 물컵을 들고 있다가 말이 끝나자마자 입을 축였다.

 “다시 볼 수있겠죠,라는 물음에 ‘그렇다.’가 아닌 ‘아니오.’라는 말이 정답이라는 건, 그 사람과 다시 만나서 마주할 진짜 자신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제주도로 가지 못했던게 아니라 가지 않았던게 아니었을까, 싶은데....”

 휴가 같았다잖아요.

나의 목소리에 두 남자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신 없이 일에 쫓겨 살았고 하루하루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삶 속에서 단비 같은 휴가 같았다고 하셨잖아요. 얼마나 많이 바쁘고 얼마나 많이 힘들었으면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진지도 모른채 살아갈 수있나요? 정말 많이 외롭고 힘드셨겠어요.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하셨다는건 어느 영화 속 내용처럼 여행지에서 첫사랑의 기억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내용과 같은 이유 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때 그 사람, 그 때의 그 음식, 그 때의 그 거리, 그 커피, 그 술, 그 사람과 함께한 그 모든 순간, 순간이 그냥 다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현실에서 진짜 상대를 만나면 그와 함께한 그 순간이 깨질까 두려웠던건 아닐까 싶네요.

사장님의 등이 고요한 바다의 파도 능선처럼 올라오고 내려가기를 반복했고 두 남자는 여전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사장님은 후회를 하게 되어버린거죠. 그 이후에 연락도, 만남도 할 수없었던 그 때를, 자기 자신을, 그리고 그 때의 그 삶을.

내 말이 끝나도 두 사람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고 신주혁씨 너머로 보이는 자작거리며 나무를 태우는 난로를 바라보았다.    

  “윤겸씨 추측인거죠?"

이윽고 박해진씨가 입을 열었고 나는 다시 그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리곤 그에게 짧게 대답했다.

 네.

그는 턱을 괴고는 붉어진 얼굴을 내쪽으로 돌려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입고리에 미소가 띄어진 것을 발견하기엔 아주 짧은 시간이 걸렸다. 그의 입술이 웃자 그의 얼굴 전체가 환해졌다. 그의 두 눈이 초승달로 반짝였고 붉은 귀가 더 진한 분홍빛을 띄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의 소주잔에 소주를 따랐다.

  “그러고보면 여행이란건 참 무서운거같아요."

그의 알 수없는 말에 나와 신주혁씨는 그를 빤히 바라만 보았다.

  “무슨 소리에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일회성 인연이잖아요. 대부분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이잖아요."

그가 조금은 혀가 꼬인 발음으로 말을 내뱉었고 다시 술을 급하게 마시다 사레가 걸렸다. 나는 그의 물잔에 물을 따라주었다.

 괜찮아요?

콜록, 콜록 기침소리가 잦아들고 남자는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휴, 살겠다. 고마워요."

그의 반달눈에 눈물이 찔끔 고인게 보였다. 그는 손등으로 눈을 부비고 다시 활짝 웃어 보였다.

 “그래, 그 여행이 무섭다는게 일회성 인연 때문이라는 거요?"

왠지 신주혁씨는 약간 비꼬는 듯한 말투로 그에게 쏘아붙였으나 그는 천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어쩌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는 나를 거짓으로 한껏 꾸며서 내가 멋지고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고, 그와 반대로는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다 할 수도 있죠. 내 바닥까지 다 보여줄 수 있다는거에요, 어차피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이니까.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던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런 면에 있어서는 여행을 하는 이유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참 이기적이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랬구요."

신주혁씨는 그의 말에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그의 말에 나 또한 뒷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어쨋든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해도 정답은 사장님이 가지고 있잖아요.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됐네요. 이제 정리할까요?"

그의 말에 시계를 보니 12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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