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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Sep 18. 2016

7

조식



 나는 2층 침대 위로 올라가 앉았다. 방으로 돌아와서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다시 노트북을 켰다.

이기적이라고 했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이기적임과 그들의 만남은 당연히 일회성의 만남이라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장님의 이야기와 그 사람에 대한 느낌들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사장님께선 그리움과 동시에 이기적인 마음도 있었던 것일까. 누군가에 대해 제 3자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과 추측의 난무는 어떻게 보면 잘못된 행위이지만 23년이라는 내 삶 속에서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음은 틀림없다.

노트북의 하얀색 화면에서 깜박이는 커서를 바라보았다. 어디까지 썼더라. 아, 욕심. 욕심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술을 마시고 잠에 들면 이른 새벽 중에 나도 모르게 눈이 떠진다. 몸서리치게 춥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땀이 나도록 덥지 않은 방 안의 온도에 만족해하며 포근한 이불 속에서 아침이 오기까지 잠을 자고 싶었다. 그런데 술이 깨면 몸도 깨고 눈도 떠지는 건 다른 지역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

나는 이불 속에서 뜬 눈으로 천장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머리맡에 놓여있는 휴대폰을 꺼내들어 화면을 켰다. 어둠에 익숙해져 있는 눈이 밝은 빛에 놀라 잠시 감긴다. 나는 실눈을 뜨고 얼른 화면 밝기를 최소로 맞춘 후 다시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시간은 새벽 4시 23분에서 24분으로 넘어가있었다. 글을 쓰고 잠에든지 2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술만 마시면 도지는 병처럼 이미 잠은 달아났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엔 무언가를 해야 한다.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느니 휴대폰에 연결 되어있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켰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나는 몸을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마치 창문에 검은색 도화지가 붙여진 듯 유리창 너머는 어둠에 잠겨 있다. 나는 두 눈을 움직여 그 어둠 속에서도 무언가를 찾으려 했다. 어둠은 게스트하우스 옆의 야자수들도 낮에 보이던 섬들도 내리는 눈송이도 삼켰다. 아무리 창 밖을 바라봐도 보이는건 어둠뿐이었다. 문득, 엄마에게 도착했다는 연락을 하지 않은게 머릿속에서 솟았다. 정신 없는 하루도 아니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연락을 할 수도 있었는데. 나는 긴 숨을 내쉬었다. 몸을 다시 똑바로 뉜 채로 노래를 들으면서 휴대폰 화면을 켰다. 동기화가 되어있는 나의 글을 클릭하고 노트북으로 쓴 부분까지 차분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언제 다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눈을 떠 보니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히 몇 시간 전 까지 휴대폰에 동기화 되어있는 글을 읽고 또 쓰고 있었다. 그러다 잠이 들었는데. 어디까지 썼는지는 조금 있다가 다시 확인해야겠다. 2층 침대에서 바닥을 내려다 보자 어제 밤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침대와 바닥의 높이가 가늠되었다. 꽤, 높았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조심 조심 사다리를 이용해 침대에서 내려갔다. 발바닥이 무사히 바닥에 닿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세면 도구를 가지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윤겸씨!"

그러다 계단에서 박해진씨를 만났다.

 “굿모닝!"

 잘 주무셨어요?

그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와 나는 같이 걸어 내려갔다.

토스트를 굽는 냄새가 식당 입구부터 코 끝을 자극했다. 나는 그 고소한 냄새를 크게 들이 쉬고 다시 내뱉었다.  나도 모르게 나온 아, 좋다. 라는 말과 함께. 박해진씨는 개구지게 웃곤 내 말을 똑같이 따라하며 문을 열었다. 그는 내게 먼저 들어가라는 듯 손으로 안내 했고 나는 그가 열어 준 문을 통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고소한 빵냄새로 가득 찬 식당의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어제와는 다른 바다가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하늘엔 하얀 솜사탕처럼 뭉쳐진 구름이 마치 파란색 도화지 위에 놓여진 것 처럼 둥둥 떠있었고 어젯밤 창문을 흔들던 차갑고 거센 바람은 잔잔한 파도처럼 창 밖에 보이는 야자수를 휘감고 있었다. 언제 찬 비가 내렸었냐는 듯 너무나도 맑은 하늘과 바다에 나는 그저 멍하니 서서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내 옆에 와 앉았고 그가 박해진씨라고 알기 까진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윤겸씨것도 가져왔어요. 아침 먹으면서 같이 봐요.”

 아, 고마워요.

그는 자신의 맞은편 자리에 접시를 놓고 내게 앉으라 손짓했다. 나는 그의 등 뒤에 서있다가 그의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잘 먹을게요.

 맛있게 드세요."

나는 접시에 놓여진 두 장의 토스트 중 하나를 들어 딸기잼과 버터를 약간씩 발라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딸기잼과 버터의 풍미가 입 안에 퍼질 때 즈음, 나는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다시 바라보았다. 눈 앞엔 맑은 옥색 바다가 펼쳐졌고 멀리 수평선 위로 뭉게구름이 지나가는게 보였다. 수평선에 걸린 듯하지만 천천히 왼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구름과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옥색 바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나는 작은소리로 탄성을 질렀고 순간 아차, 싶어 눈동자를 돌려 마주 앉아있는 그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버터를 바르고 있던 박해진씨는 두 눈을 동그랗게 하며 그런 나를 보고 있었고 이내 미소지었다.

 “오늘 날이 되게 좋죠? 얼른 먹고 여기 앞에 나가볼래요?"

 좋아요!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고 그는 나의 대답에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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