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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Oct 20. 2016

8

 바다는 파도로 숨을 쉰다.



 "10분 뒤에 입구에서 봐요!"

그는 손을 흔들며 복도로 걸어 들어갔고, 나는 3층으로 뛰어올라갔다.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침대에 풀썩 누워버렸다.

처음 만난 사람과의 대화는 항상 어렵다. 대학을 다른 지역에서 다니면서 나는 내 성격 자체를 고칠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다. 낯가림이 심했고 먼저 말을 걸지 못하는 그런 내 성격을 바꾸려 노력했고,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내 진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먼저 다가갔고 항상 밝으려했고 잘 어울리려했다.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를 위해서 사는게 아니라 함께 지내는 '그들'을 위해서 살고 있는 느낌이 들었고, 실로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안과 밖의 내가 너무 달라서 그 자체로 내가 견디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약 3년을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 그들이 그런 날 좋아했기 때문에. 그렇게 잃어버린 내 모습을 찾고 싶어서 난 제주도에 왔는데 그런데 난 지금 또 다시 갈등을 시작했다. 잠시 후 입구에서 볼 저 사람에게 나는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까.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가방 안에 세면도구를 넣은 후 바지를 갈아입었다. 침대 옆에 놓여있던 겉 옷을 들고 나는 밖으로 빠져 나왔다.


 예상보다 빨리 나와서 식당 창가에서 좀 앉아서 해진씨를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보이는 맞은편 입구엔 이미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고 그는 자신의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돌아보았다.

 “왔어요?"

나는 그가 보일 듯 말듯 고개를 끄덕이곤 카메라로 시선을 옮겼는데 그것을 눈치챘는지 그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카메라를 들어 갑작스레 나를 찍는 것이다.

 엇,

그는 카메라 화면을 들여다보며 미소지었다.

 “잘 나왔어요. 볼래요?"

나는 순간 당황하여 눈을 크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그는 개구쟁이처럼 다시 한 번 나를 촬영했다. 허공에 셔터 소리가 여러 번 들렸다.

 저기, 이제 그만...

나는 박해진씨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내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그는 되려 당황해했다.

 “어, 어, 미안해요."

나는 아무 대꾸 없이 그를 지나쳐 바다로 걸어나갔다. 그는 내 뒤로 조용히 따라오다가 조심스럽게 내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

 “윤겸씨는 사진이 잘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윤겸씨 사진 찍어주고 싶어서 그랬어요. 갑작스러웠다면 미안해요. 제가 무례했어요."

 바다 예쁘네요.

나는 무뚝뚝한 말투로 그를 대했다. 나와 보폭을 맞추며 걸어가던 그는 갑자기 나를 앞질러 빠르게 걸어가다 뒤로 확 돌아 나를 멈춰세웠다.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는 그였지만 그 표정 속엔 어리고 얄미운 어느 남자아이가 보였다.

 “윤겸씨, 정말 미안해요. 용서해줄거죠?"

그의 약간의 애교 섞인 말투와 목소리에 당황했지만 나는 금새 그의 다음 행동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는 두 검지 손가락을 양 볼에다 대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넘겨 눈을 깜짝거렸다. 나의 웃음소리는 파도소리와 뒤섞여 그와 나 사이를 맴돌다 허공에서 사라지길 반복했다.

 하하, 그게 뭐에요.

한참을 웃자 그가 어색해 하며 헤헤 웃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다 내 앞에서 뒷걸음질로 걸어갔고 나는 그의 보폭을 맞춰 그를 따라갔다. 나는 왼쪽으로 펼쳐진 바다를 아무말도 없이 치어다보고 있었는데 앞에서 뒷걸음질 하는 그의 시선은 바다가 아닌 나에게 여전히 놓여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신경이 쓰였던 나는 바다를 바라보다 곁눈질로 그를 보았고 그는 그것을 알아챈 듯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와 나는 한참을 마주한채 걸었다. 그 동안 주위에 맴도는 것은 쌀쌀한 바닷바람과 솨아솨아 거리며 잔잔한 듯 하지만 거칠게 몰려오는 파도소리 뿐, 다른 어떤 소리도 바다의 연주를 깨지 않았다. 잠시 후 박해진씨는 다시 몸을 돌려 걸음을 늦추더니 내 오른쪽으로 와서 걷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두 사람 사이의 정적은 사라졌다.

 “혹시 윤겸씨 순천 가봤어요?"

그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 보았다.

 아니요.

그는 나를 내려다보지 않고 있었고 오로지 앞만 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옆 모습을 올려다보다 그가 바라보는 어딘가쯤을 찾으러 눈을 돌렸다.

 “순천에 가면 '꿈의 다리'라는게 있어요. 그 다리는 네모난 모양으로 되어있어서 안쪽 벽엔 여러 나라의 어린이들의 소망을 그림으로 그린 타일이 붙어있고 바깥쪽 벽엔 작은 색깔 타일을 이용해서 여러가지 문구를 적어놓은 긴 다리에요."

나는 천천히 걸으면서 그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 다리를 천천히 걸어가다 고개를 돌렸는데 갑자기 바람이 왼쪽에서 휙 불어오더라구요. 그런데 마침 그 바람을 따라서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하나 있었어요."

나는 다시 그의 옆 모습을 보려 눈을 들었는데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그의 갈색 눈동자 속에 궁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는 내게 자상한 미소를 지어보였는데 그 순간 마치 내가 정답을 알고싶어 하는 학생처럼 느껴졌다.

 “바다는 파도로 숨을 쉰다."

그는 나에게서 시선을 떼고 먼 바다를 보기 시작했다.

 “뭐라 할까, 다른 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 때 그 문구가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바다가 파도로 숨을 쉰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렇네요, 바다는 파도로 숨을 쉬잖아요.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바닷물이 거품을 내며 백사장 안으로 들어오는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그의 행동에 뒤따르지 않고 그의 뒷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바닷물이 들어오기 전까지 깊이 들어갔다가 새하얗게 몰려오는 파도에 장난치듯 쫓아 나오기를 반복했다. 바다는 자신에게 장난을 치는 그의 발목을 잡으려고 더 빨리 백사장을 타고 올라왔지만 발빠르게 도망치는 그를 잡지는 못했다. 그를 멍하니 쳐다보던 나를 마침내 발견한 그는 어린아이처럼 내 앞으로 뛰어왔다.

 “윤겸씨!"

그는 내 손목을 잡고 바다로 끌어당겼다. 나는 그의 손에 터무니 없이 이끌려 바닷물이 나간 자리에 서 있었고 눈 깜짝할새에 파도에 발목이 잡혔다.

 “어!"

거품을 내며 백사장 안으로 들어오던 물은 또 다시 거품을 내며 부드럽게 빠져나가길 반복했다. 바닷물은 내 운동화를 탐이라도 내듯 물 속에 담구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운동화가 다 젖어버리기 전에 얼른 백사장 위로 빠져나왔다. 다행이 운동화의 밑부분만 젖어 물이 신발 안으로 들어오진 않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짜증섞인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바닷물이 올라오지 못하는 백사장 위에 주저앉아 운동화를 벗어놓았다. 마치 잡지 못해 못내 아쉬워하는 것처럼 바다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내게 보내 나의 두 발을 감싸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박해진씨는 내 옆으로 다가와 허리를 숙여 나를 살폈다.

 "많이 젖었어요?"

나는 그런 그에게 들릴 듯 말 듯 투덜거리며 중얼거렸다.

 어린아이같다는 소리 많이 들었죠?

그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내 옆에 자리했고 앉자마자 나의 물음에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어른들께서 제가 나이 값 못한다는 소리는 조금 하시더라구요."

그가 너무 쉽게 인정해버리는 것 같아 황당했던 나는 다만 두 입술 사이로 허탈한 웃음만 비저나올뿐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는 손을 뻗어 운동화를 가져가 신발의 밑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그는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의 손에서 운동화를 가져오면서 손사레를 치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운동화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에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질 느낌이 들어 얼른 입을 열어 화제를 다시 돌렸다.

 촬영 때문에 제주도에 오신 적 많으시겠어요.

 “프로로 데뷔한건 2년도 채 안돼서 정식 촬영 때문에 온적은 없었어요. 다만 가족들이랑 여행을 두 차례 왔었는데 이번에 혼자 여행 온 걸로 제주도는 세 번째네요."

 그렇구나.

 “오늘 윤겸씨 일정은 어떻게 돼요?"

나는 그의 물음에 잠시 시간을 두고 대답했다.

 한림공원부터 둘러 보려구요.

 “아, 한림공원! 좋죠."

 가보셨어요?

그는 입가에 미소를 번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나와 그 사이에 또 다시 정적이 흘렀다. 오로지 바다만이 숨을 쉬고 있었고 차가운 바닷 바람은 백사장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휘감고 지나갔다.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이가 부딫힐 정도로 춥진 않았지만 확실히 아까보다 체온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하얗게 거품을 내며 백사장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던 그가 입을 열며 정적이 다시 깨졌다.

 “같이, 가요."

나는 고개를 돌려 그가 앉아있는 왼쪽을 보았다. 그는 천진한 아이의 얼굴로 빙긋 웃어보였다.

 “저랑 같이 가요."

그의 목소리는 파도소리와 함께 내 귓가를 맴돌다 사라져버렸다. 그는 여전히 내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었기에 멍한 표정을 하곤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돌아오는 말이 없자 그는 자신의 말에 덧붙였다.

 “저두 가보고 싶어서요. 같이 가요."

나는 잠시 뜸들이다 그의 말에 대답했다.

 그래요, 같이 가요.

나도 모르게 잠시 움찔했던 내가 웃겨 피식거렸다. 그런 나를 발견하지 못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춥죠? 얼른 들어가서 몸 좀 녹이고 출발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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