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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an 16. 2017

11

돌아오는 길


 매화 정원에서 그는 역시나 사진을 찍는 대 여념이 없었다. 나 또한 엄마에게 여러 장의 매화 사진을 보내려 작은 휴대폰으로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댔다. 또 다른 피사체를 찾아 화면을 옮기던 나의 휴대폰 액정으로 큰 카메라를 들고 어느 곳을 고요하게 찍고 있는 그가 들어왔다. 연분홍색의 매화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나뭇가지는 마치 커튼처럼 바람에 흔들렸고 그 사이로 그가 가려졌다 보였다가 했다. 나는 액정에 담긴 그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휴대폰으로 보는 하나의 영상처럼 보였고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찰칵거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정신이 들었다.

 앗.

깜짝 놀라 혼잣말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화면 속에 보이는 남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와 동시에 나는 다른 쪽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그를 곁눈질로 힐끔 확인하자 다행이도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고 다만 카메라 렌즈를 다른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나는 휴대폰에 찍힌 그의 사진을 확인 하지 않고 바로 화면을 꺼버렸다. 마치 내가 죄라도 저지른 듯한 느낌이 들어 심장이 조마조마 했다.

 “이제 갈까요?

언제 내 옆으로 다가 왔는지 그는 다시 앞장 서서 걸어갔다. 깜짝 놀라 그 자리에 굳어 있는 나를 향해 그는 손짓했고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한림공원을 빠져 나오자 날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 가는 그 길 위에서 해진씨는 더 이상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다만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을 뿐이었다. 날이 좋지않아서일까. 이젠 더 이상 두 사이에 셔터소리 조차도 나지 않았다. 바람이 더 강해지고 있었다.

 사진 많이 찍으셨어요?

바람 소리로 가득 차 있던 순간에 나는 입을 열었다. 나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카메라를 들어 보였다.

 “있다가 노트북파일 옮겨서 보여드릴게요. ”

그리고 그는 특유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그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 동안 풍경에 대한 이야기가 둘 사이에 오갔다. 바다가 예쁘다는, 비양도는 멀지만 꽤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는, 제주도의 날씨는 변덕스럽기 그지없다는, 그런 풍경 이야기 말이다. 그러는 동안 맑았던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하면서 잠시 따뜻했던 공기가 차게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추운지 몰랐는데 젖은 신발을 신고 있어서인지 발부터 차가워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온몸이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떨어요? 많이 추워요? ”

갑작스런 추위에 온 몸이 떨리는 내 모습을 본 그의 눈이 커졌다.

 조금요.

그리고 그는 길 위에 나를 멈춰 세웠다. 그는 걱정스런 표정을 하며 나를 내려다 보다가

 “안되겠다. 너무 많이 떠는데. ”

자신의 겉옷을 벗어 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해진씨도 춥잖아요.

내가 옷을 다시 벗어 주려고 하자 그는 옷이 떨어지지 않도록 오히려 더 단단하게 내 어깨를 잡았다.

 괜찮아요.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더 참을 수 있죠? ”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여전히 몸을 떨고 있는 나를 그는 난로가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는 식당으로 들어가 따뜻한 물이 담긴 컵을 가지고 나왔다. 그가 손에 쥐어준 컵의 온기와 자작거리며 타는 나무 향이 섞인 따뜻한 온기가 내 몸을 덮었다.

 “금방 따뜻해질거에요. ”

그는 내 옆에 서서 손을 녹이고 있었다.

 앉아서 몸 좀 녹이세요.

내가 말하자 그는 알겠다고 말하곤 난로를 사이에 둔 맞은편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나와 그 사이엔 정적이 흘렀다. 그 동안 나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 난로 근처에 놓고 있었다.

 “어, 신발 젖었어요? ”

그리고 잠시 후 맨발로 앉아 있던 나를 발견한 그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빼꼼히 빼서 내 발과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아아, 조금요. 발이 좀 시려요.

 “아…”

그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나는 연신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런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어, 다녀 왔어요? ”

그 때 마침 주혁씨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신발 젖었어요? ”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내가 벗어둔 신발로 눈이 갔다.

 “아, 저 때문에요. 바닷가에서 …”

 금방 마르겠죠. 저 정말 괜찮아요.

나는 얼른 해진씨의 말을 잘랐다. 주혁씨는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갑자기 내가 벗어둔 신발을 들어올렸다.

 “이렇게 두면 안 말라요. ”

그리고 난로 위에 비스듬하게 세워두었다. 그는 또 옆에 놓여있던 양말을 난로 위에 걸쳐 었다.그리곤 테이블에 걸터앉는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한림공원엔 매화, 많이 폈나요? ”

 “네. 풍경사진 찍을 맛 나던데요? ”

 정말요. 너무 예뻤어요.

주혁씨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래요?아, 조금 있다가 다희연에 다녀올건데 같이 가실래요? ”

 다희연이요?

 “네. 누나가 지금 거기에 가 있어요. 근처에서 저녁도 먹고 들어오죠, 뭐.”

 “무슨 일로 가셨어요? ”

 “놀러 갔어요. ”

주혁씨의 너무나도 퉁명스런 대답에 나는 마시던 물을 다시 뱉어낼 뻔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겠구나. 제주도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보면 어디든 여행지겠거니. 순간 부러워졌다.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건 아무런 걱정도 고민도 없을 것 같았다. 그 때 갑자기 온 몸에 열이 올라 후끈거렸다. 볼이 붉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깨에 걸쳐있던 해진씨의 옷을 벗었다.

 해진씨, 고마워요.

그에게 옷을 건네주자 그는 옷을 받아 들면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열나는거 아니에요? ”

그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얼굴에 열감이 더 오르는게 느껴졌다. 그 순간 어쩐지 나는 내 얼굴을 보고 어떠한 표정을 지을 그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눈을 떨궜다.

 아니, 아니에요. 조금 더운 정도.

나는 붉어진 얼굴을 얼른 식히려 손바닥으로 부채질 했다. 그리고 얼른 대화 주제를 돌렸다.

 아, 다희연 언제쯤 가나요?

여전히 시선은 바닥을 향해있었다. 나는 그의 표정이 지금 어떤지 모르는 상태지만 차라리 이렇게 있는 편이 나았다.

 “어, 30분 뒤에 출발 할건데. 윤겸씨, 신을 거 있어요?"

 네, 있어요.

 “그러면,”

주혁씨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마루 밑에 놓여있던 슬리퍼를 집어들고 와서 내 발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이거 신고 올라가시고. 이 신발은 난로위에 두세요. 바짝 말라야지 냄새 안나요. "

주혁씨는 장난끼 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웃었다. 나는 함께 웃으며 옆에 놓인 슬리퍼를 신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30분 뒤에 내려올게요.

 "그래요, 그럼."

주혁씨의 말이 끝나자 해진씨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로 몸을 돌릴 때  잠시 스치듯 본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내게 머물러 있었다.

 "저도 올라갈게요."

그는 내 옆으로 왔고 나와 함께 식당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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