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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Feb 07. 2017

12

귤차



난로가를 벗어나자 발가락은 금새 차가워졌다.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두꺼운 양말을 찾아 신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머릿 속이 가득 찼다. 계단을 올라가는 내내 그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보다 몇 계단 밑에서 한 발짝씩 보폭을 맞출 뿐이었다. 2층에 도달하자 그제야 그는 입을 열었다. 내가 계단을 한참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아, 윤겸씨."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계단 밑으로 그를 내려다보자 그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머뭇거렸다.

 “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려요.”

리고는 복도 안 쪽으로 뛰어 들어 갔다. 그가 자신의 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가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내가 있는 곳까지 뛰어 올라왔다.

 “몸 따뜻하게 하고 있어요. 있다 봐요.”

 아,

그는 내 손에 자신이 가지고 온 무언가를 건네곤 다시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그가 순식간에 사라진 그 곳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뭔가 쥐어져 있는 손을 펴보았다. 작은 티백 두 개였다.

 귤차?

정확히 말하자면 귤 껍질차였다. 나는 코 근처에 티백을 대고 향을 맡아보았다. 금새 귤향이 콧망울에 번져 코를 간질였다. 그가 준 차를 우려 마시려고 했지만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따뜻한 물을 가지러 다시 식당으로 내려가기가 힘들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복도는 너무 추웠고 이미 따뜻한 방에서 나가기가 싫었다. 나는 침대 위에 폴짝 올라가 이불 안으로 발을 쏙 집어넣고 벽에 기대 앉았다. 그리곤 오늘 찍은 사진을 확인하려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올 때 찍은 일주도로, 맑게 갠 하늘과 바다, 멀리 보이는 비양도, 그리고 한림공원에 도착해서 찍은 입구와 야자수길, 돌하르방. 매화 정원으로 가는 길에 찍은 사진들과 팝콘처럼 핀 매화 사진들.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그. 주루룩 넘기며 빠르게 감상하던 사진들 중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손가락을 멈췄다. 그리고 사진을 좀 더 크게 확대해 보았다. 매화 사이로 보이는 그의 옆 모습은 카메라를 통해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지하면서도 진중하게. 뭐였을까, 이 사람이 보고 있었던 것은. 그 수 많은 매화 나무들 중에서 그는 어떤 것을 찍은 것일까. 나는 한참 그 사진을 크게 또는 작게 보면서 붉거나 혹은 흰 매화 틈 속에서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를 보고 있는 그의 모습만을 가만히 들여다볼 뿐이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게 주어진 시간의 절반을 그렇게 멍하니 보내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손에서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테라스로 나갔다. 몇 시간 전만해도 맑던 하늘은 곧 비가 내릴 것처럼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어왔고 어쩐지 첫째 날에 테라스에 나왔던 내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눈 앞에 바다가 펼쳐졌고 그리고 그가 도착했었다. 나는 테라스 난간에 팔을 걸쳐놓고 비양도를 바라보았다.

 “어,윤겸씨! ”

그 때,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다 테라스의 난간을 따라 오른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보았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 보자 2층에서 해진씨가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바람이 차지 않아요? ”

 답답해서 나왔어요.

 "저두요.”

두 사람의 목소리는 바람소리를 타고 서로에게 전달 되었다.

 차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그저께 여기 오면서 산 차인데, 맛이 어떨지 장담은 못하겠어요. 그래도 감기엔 좋다니까 꼭 드세요."

나는 그가 서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고마워요. 있다가 자기 전에 꼭 마시고 잘게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깐 정말 미안했어요. 신발이 그렇게 젖고 있을줄은 상상도 못했구요."

그리고 그는 두 손을 모으고 한껏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하. 다른 신발 있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괜찮아요.

신발 이야기가 다시 나오자 나는 그가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얼른 안심시켰다. 그리곤 재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서울에 계신거에요?

 "네, 직장은 서울에 있구요. 집은 경기도 수원이에요. 윤겸씨는?"

 학교가 청주 있어요. 집은 경상도구요.

 "그렇구나. 학교... 학교라는 말, 오랜만이네요."

그는 수평선 어느 부분으로 시선을 돌렸고 나 또한 그가 보는 어느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때 마침 주차장으로 나오는 주혁씨가 보였고 그가 나와 해진씨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 마침 나와있네! 내려와요, 이제 출발할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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