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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Feb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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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희연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겨울 하늘은 어두웠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만 같은 하늘 아래, 서늘한 밭들이 길가에 펼쳐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다희연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족히 2시간은 걸린 듯 하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사실 그 긴 시간동안 숨막히는 정적 뿐일거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떠들썩했다. 주혁씨는 전라남도 전주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사장님을 따라 제주도에 정착했다고 했다. 4살 터울의 누나지만 어렸을 때부터 워낙 주변 사람들이 자기보다도 그녀를 더 어리게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으로도) 봐왔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둘 중 '누가 더 어려보이냐'는 짓궂은 질문을 여행객들의 웰컴 질문으로 던지기 시작하다가 상처만 남아서 더 이상은 하지 않기로 했고 그 질문을 받은 여행객들의 90%가 사장님이 어려뵌다는 대답을 했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럼 10%는,

 "별로 궁금해 하질 않던데."

그는 씁쓸해 했지만 그러는 모습마저도 유머러스했다.

 "참, 해진씨는 여자친구 있어요?"

 "아뇨,"

그의 물음에 해진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래됐죠."

뒷 좌석에 앉아있던 나는 그의 어깨가 올라갔다가 천천히 내려가는 것을 목격했다.

 “어, 그래요? 의외인데요?”

주혁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곁눈질로 여러 번 쳐다보았다. 그러는 와중에 해진씨는 손사레를 쳤지만 알 듯 모를 듯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이후에 해진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의 말을 되받아치기도 했고 크게 웃기도 했다. 여전히 주혁씨가 이야기를 주도하고 있었지만 해진씨는 훨씬 말 수가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아주 잠시 정적이 흐를 때면 그는 멀리,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한림공원으로 가는 길에 그가 언급한 '첫사랑'이 생각났다. 아마도, 추측이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를 생각하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그녀는 그가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 잘 찾더라고요. 그 사촌 조카가 이번에도 제주도에 왔었는데 한 시간 내에 3개찾았더라니까요."

 저도 인터넷에서 봤었는데 여행하는 분들이 다희연에서 네잎클로버를 많이 찾았더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나는 한 번도 네잎클로버를 내 손으로 찾아본 적이 없어요. 그 꼬마가 한 시간에 3, 5개를 찾을 동안 나는 그냥 풀 밭에서 시간만 죽이고 있었죠, 뭐."

길은 점점 좁아졌고 이내 산길이 나타나자 빗방울 또한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라, 비가 오네. 누나 우산도 안 가져갔는데."

 건물 안에 들어가 계시지 않을까요?

 "아, 뭐, 페가 있긴 한데. 거기에 앉아있겠죠, 괜찮겠네."

조금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금새 소나기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주혁씨는 차에서 내려 짐칸에서 우산 두 개를 꺼내왔다.

 “자, 이거 쓰고 와요. 먼저 입장권 끊어 놓을게, 천천히 와요!”

그는 보조석 문을 열고는 우산 하나를 해진씨에게 넘겨주고 티켓박스로 뛰어갔다. 해진씨는 머뭇거리다 자리에서 내리곤 우산을 펼쳤다. 차 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듯 떨어지는 빗방울에 몸이 젖었지만 금새 그의 손에 들려있는 우산으로 하늘이 가려졌다.

 “가요.”

빗방울이 무섭게 바닥을 때리다가도 두 사람이 지나갈 때는 우산에 잠시 가려졌다 다시 나오기를 반복했다. 티켓박스에 서 있던 주혁씨는 우리가 멀리서 걸어오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토도독 소리를 내며 비닐 우산 위에 떨어진 빗물 구부러진 선을 따라 우산끝에 맺히자마자 어깨위로 방울이되어 떨어진다.

 앗, 차거!

조금 크고 차가운 물방울이 어깨로 떨어져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이 말이 튀어나왔다. 티켓박스 앞에 서 있는 주혁씨와의 거리가 조금 가까워지자 그는 입구 안쪽으로 들어가자고 손짓했다.

 “카페로 일단 내려가있는게 좋겠죠? 비 금방 그칠 것 같으니까.”

다희연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왼쪽에는 검정색 말라뮤트종의 커다란 개가 앉아있다. 비가 많이 오고 있는데도 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어, 감기 걸리겠다, 멍멍아."

 들어가.

그 '멍멍이'는 두 사람을 힐끔 바라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는 요란하게 짖지 않는 아이를 신기해하며 손을 흔들었다.

 "순둥이네요."

 정말요.

그렇게 다희연 지킴이를 지나고 나자 눈 앞엔 쭉 뻗어있는 도로가 보였다. 그 길의 끝은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이미 멀리 걸어가있는 주혁씨는 길의 끝에서 조금 더 빠르게 오른쪽 길로 걸어갔다. 나와 해진씨도 역시 그의 뒤를 따라갔다. 얼마 가지 않고 주혁씨는 나와 해진씨가 있는 쪽으로 돌아보더니 손가락으로 풀이 무성한 비탈길을 가리키며 외쳤다.

 "밑으로 내려오면 돼요!"

그리고 그는 비탈 밑으로 조심히 걸어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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