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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Mar 0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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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희연 2



주혁씨가 내려간 곳은 꽤 경사가 가파른 길이었고 그 밑엔 커다란 동굴이 자리잡고 있었다. 길은 자연 그대로 둔 곳이었다.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되지 않은 흙 길 위에 얼음이 조금 얼어 있었고 그 밑으로 노랗게 시들어있는 풀들이 보였다.

 “내려갈까요?”

가만히 서서 아래쪽만 바라보고 있던 내게 해진씨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앞서 걸으며 자신이 밟은 곳으로만 내려오라며 신신당부했고 덕분에 동굴 앞까지 미끄러지지 않고 잘 내려갈 수 있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비릿한 향이 코 끝을 스쳤다. 입구의 맞은편에는 단을 올려 만든 무대가 놓여 있었고 왼쪽으론 몇 개의 의자와 테이블이 평단 위에 올려져 있었다. 주혁씨는 벌써 무대 앞쪽을 지나치고 있었는데, 그가 가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반대쪽으로 이어진 다리가 놓여 있었다. 주혁씨의 뒤를 쫓아 허겁지겁 두 사람은 빠르게 걸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는 위태로워 보였지만 의외로 튼튼하게 이어져 있었다. 다리를 지나 길을 따라 올라가자 오른쪽으로 나있는 또 다른 동굴이 눈에 띄었다. 입구 앞에 세워진 나무 푯말에는 ‘다희연 동굴카페’라고 적혀있었다. 입구에서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신비로웠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비릿하고 시원한 향이 사방에 퍼졌다. 곳곳에 설치된 조명은 은은하게 길을 밝히고 있었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이기에 여전히 석회수가 흐르고 있어 발 밑을 조심하며 천천히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천장이 조금 낮아 키가 큰 사람들은 허리를 조금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170의 나도 머리가 부딪힐까 염려스러웠으니 나보다 키가 더 큰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아니나다를까 앞서 걸어가는 해진씨는 허리를 90도로 굽히다시피하며 걸어 들어갔다. 밖은 추웠지만 카페에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온기가 느껴졌다.

카페 안은 조용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사장님과 또 다른 여행객 두 무리가 전부였다. 방금 들어온 우리 3명을 포함하면 총 8명. 사장님은 입구로 들어오는 우리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어 반기셨다.

 “두 사람도 같이 왔어.”

주혁씨가 그녀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잘했어! 어서 앉아요!”

사장님은 나와 해진씨를 번갈아 바라보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따뜻한 차라도 마실까? 녹차 괜찮죠?”

나머지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혁씨는 다희연에서는 녹차를 마셔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걸어갔다. 사장님은 오늘 오전부터 다희연을 계속 걸어다녔다고 하셨다. 언덕이 꽤 높지 않느냐는 해진씨의 질문에 사장님은 전동차를 타고 다닐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다희연은 6만평이나 되는 녹차밭이 펼쳐져 있다. 따라서 모든 곳을 다 둘러보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두 발은 그닥 좋지 않은 이동 수단일 것이다.

 “물론 전동차도 타봤죠. 여기 한 두번 온게 아니니까.”

 “재밌겠네요!”

 “그쵸?”

마침 벨이 울렸고 주혁씨가 일어나 녹차를 받아오셨다. 새하얀 잔에 맑은 초록빛이 도는 찻물이 찰랑거렸다.

 잘 마시겠습니다.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손을 녹이다 네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잔을 들어 차를 음미했다. 신기하게도 다희연의 녹차는 녹차 특유의 쓴 맛이 많이 나지 않았다. 고소하고 은은한 맛만이 입안에 감돌았다.

 맛이 좋네요.

“그렇죠?”

사장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향해 다시 되물었다.

 네.

나는 향기를 맡아보고 입 안에서 차를 음미하며 천천히 삼키기를 반복했다.

 “마음에 들어하니까 내가 다 뿌듯하네.”

주혁씨는 맞은 편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언젠가 엄마와 한 번 더 와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또한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일 년 전부터 다도회에서 차를 우리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하셨다. 다도를 배우기 위해선 다기(茶器)가 필요했고 엄마는 처음으로 찾은 취미 생활을 위해서 값 비싼 다기도 시원하게 구입하셨다. 그리고 마치 학창시절에 동아리 활동을 했던 것처럼 엄마는 다도회를 통해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을 사귀면서 차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엄마의 차를 마시면서 나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아졌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밝아진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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