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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Mar 20. 2017

15

통화



 겨울은 시간을 빨리 삼키는 계절이다. 해가 일찍 지는 만큼 다희연에서의 시간 또한 빠르게 흘러갔다. 동굴카페에서 꽤 오랜 시간 앉아 있었지만 (그 시간의 대부분이 주혁씨와 사장님께서 과거에 들렀던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곳에서 나왔을 때 여전히 비가 많이 오고 있었기에 다희연 전체를 구경할 수 없었다. 다만 그 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녹차 돈까스로 주린 배를 채우고 게스트하우스로 다시 돌아갔다. 저녁 7시가 훌쩍 넘는 시간에나 도착할 수 있었고 방으로 올라오자마자 엄마에게로부터 연락이 왔다. 엄마는 한림공원과 다희연에 대해 재잘대는 내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매화를 좋아하는 엄마는 내가 보내준 이미지를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지정해 두었다고 했다. 언젠가 엄마와 함께 다희연에도 가고 싶다고 말하자 머지 않을거라며 그 곳 말고도 다음에 올 때 갈 만한 곳을 더 정해 놓으라 덧붙였다. 엄마와의 통화가 끝날 즈음, 엄마는 전화를 끊으려던 나를 불렀다.

 “참, 윤겸아.”

 응?

 “그런데, 우리 딸 왜 다른 이야기는 안 하실까나?”

 무슨 이야기?

엄마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리자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아,

한림 공원에서 엄마에게 보낸 사진과 문자, 그것은 매화에 대한 내용 뿐만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만났다는, 그러니까 내가 박해진씨를 만났다는 내용 또한 포함된 문자였다.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들으니 순간적으로 얼굴이 화끈거렸고, 나는 계속 머뭇거리며 말을 잇기가 힘들어 헛기침만 뱉어댔다.

 “뭐야, 누굴 만났다면서 아직 엄마한테 말할 정도는 아닌거야?”

그녀의 물음에 놀란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강하게 부정했다. 엄마는 더 크게 웃었다.

 “아무튼, 얼른 씻고 일찍 자. 다음엔 말해주겠지.”

 아, 엄마!

 “끊는다~.”

엄마는 당황스러워하는 나를 놓고 억지로 웃음을 참는 듯했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 그와 동시에 몇 분 동안 방 안을 채우던 내 목소리는 사라졌고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침대에 누워 멍하게 허공만 바라보았다.

 박해진.

입 밖으로 조그맣게 이름을 불러보았다. 엄마는 내가 누군가를 만났다는 것을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일년 전에도, 엄마는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었다. 내가, 처음 누군가에게 빠졌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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