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태어나고 만 2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내 주변엔 정말 많은 일과 변화가 있었고 내 마음속에서도 어둠 깊숙이 숨어있던 어두운 것들이 사라지거나 흐릿해지거나 했다. 형부의 독일 출장으로 언니와 조카만이 남은 집에 오랜만에 방문을 했다. 3살이 채 되지 않은 아이가 재잘재잘 혼자서 종알거리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고 혼자서 뭐든 해 내려고 하는 모습에 또 연신 놀라며 이틀을 보냈다.
"많이 컸지?"
아이구, 다 컸네, 이쁜이!
갑작스러운 언니의 결혼식은 뱃속에 든 이 아이의 소식보다 늦었었다. 그 일은 내 주변엔 있을 리 없을 것이라는, 드라마에서만 볼 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왔던 세월을 뒤엎어버린 일이었다. 엄마는 오죽했을까, 큰언니는 엄마의 모든 것이었을 텐데. 아무튼 그 당시엔 언니도 미웠고 형부도 미웠고 심지어 이 죄 없는 아이까지고 미웠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모두가 참 많이 변해 있었다. 아이를 잘 이해하고 키워오는 언니도 대단했다. 그것은 엄마도, 이모들도, 모두가 언니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언니도 언니 나름대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지난 2016년엔 30년을 넘게 언니에게 의지하는 엄마를 매몰차게 밀어냈다. 그것은 언니의 살기 위한 발악이었다고 했다. 그때 엄마에게 사과를 받기 위해 울며불며 소리치는 언니들을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던 나였다. 엄마는 내게도 사과받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지금 얘기하라고 했었지만 나는 차라리 아빠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었지만 최근에야 생각해보니 나는 언니들에게 특히나 둘째 언니에게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어제오늘 조카와 함께 놀면서 하루 종일 생각하다가 결국 큰언니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어렸을 때부터 기죽고 살아왔던 것,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내 기를 팍 죽여놓고 욕을 해대던 둘째 언니, 그래서 나는 언니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큰언니는 엄마가 둘째 언니에게 똑같이 대했다는 말을 했다고 내게 말했다. 다 엄마 탓이라고.
그래 그럼 우리 모두의 공공의 '적'은 엄마라는 거구나. 근데 나는 엄마가 아니라 둘째 언니에게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단 말이다. 큰언니는 내게 엄마가 둘째 언니에게 화를 냈던 것은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서 마치 언니는 엄마의 감정의 하수구 역할을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해하라는 것인가. 본인들은 그렇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라고 그렇게 엄마에게 소리 질러놓고?
지금에서야 생각이 났다, 아까 말하지 못했던 것이.
"그럼 나는?"
왜 나는 항상 이런 식으로 대화가 끝난 다음에야 후회하며 이때 이런 말을 할걸, 이때 저런 말을 할 걸 하는 걸까. 항상 나는 속이 시원하게 대화를 끝마친 적이 없었다. 뱅뱅 돌리면서 대화를 진행하다가 결국에는 알맹이가 없이 대화가 끝나곤 했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서 풀어내곤 한다.
언니는 본인이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딸은 이렇게 불행하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며 항상 노심초사하는 마음이다. 함부로 대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렇게, 인간은 참 이기적이다.
요즘 들어서, 언니들을 보면서 느낀다. 그리고 그러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나는 머저리 천치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