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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an 31. 2017

답답해서 적은 글.



 공부를 하다가 문득, 모든 것에 다 반감을 가지고 있는, 가슴을 두드리며 한숨을 계속 내쉬는 내 모습을 발견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


 어쩌면 나는 다시 2014년도의 나로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에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위해서 휴학계까지 냈었고 운이 좋게 면접에 합격했고,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오직 그 일을 위해서 바쁘게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지냈다. 일을 하기 전에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내가 가장 막내라는 것을 알아버렸고 어쩌면 '여자 막내'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그들'의 틈에서 참으로도 힘들게 버텼었다. 그러다가 현장 스탭 일을 하면서 1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매일매일 욕을 먹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나와 같은 역할을 맡은 남자는 자기는 내게 모든 권한을 넘겨주는 듯했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모든 욕을 다- 먹은 셈이 된 것이다.  게다가 내게 앞에서는 괜찮다고 걱정해주는 사람들까지도 뒤에서는 욕하는 모습을 봤었고 심지어 남들의 욕을 먹는 나를 '나' 자신까지도 욕을 하기 시작했더랬다. 상상이 가는가?

나는 22살이었다.

성인이라면 성인이고, 어리다면 정말 어리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하필 그런 나쁜 스탭 역할을 해서 사람들에게 22년간 살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많은 욕을 앞, 뒤 가리지 않고 들어야만 했을까 싶었다. 굳이 그 일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어쩌면 앞으로 살아낼 시간 동안에 들을 욕은 그 한 달,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내가, 나 자신에게 한 욕보다 많이 들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쩌면 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와 같은 곳에서 일을 했던 사람들이라면 그들만은 이해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 날이후 내 몸도, 내 마음도, 내 정신까지도 피폐해졌다.

내가 그 일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21살 때, 그 현장 참여자로 있었기 때문이고 그때 기억이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다양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들으면서 미래를 그리기도 했었다. 그래서 내가 현장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서 참여자들에게 좋은 기억들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내가 정말 바보 같아 보인 것이다. 나는 시작부터, 역할 선정부터가 잘못되었다. 아니 어쩌면 아예 스탭으로서는 참가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그 일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회사 사람들 눈치, 같이 일하는 동등한 스탭임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많은 이유로 선배노릇을 하는 사람들의 눈치, 심지어 현장 답사를 갔을 때 '여자 막내'라는 이유로 온갖 성적 수치심을 겪고 심지어는 일을 하면서 겉모습 비하까지 겪었어야 했던 탓에 내 정신은 한 마디로 '나 자신'이 아니었다. 난 태생부터가 누가 뭐라 하던 참고 이해하면서 살아온 터라, 당연히 그 당시에도 그들에게 무슨 말을 듣든 간에 다- 참고, 다- 이해하고 지냈었다. 그런데 이건 참고, 이해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스탭으로서의 일을 다 완수한 이후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나는 그제야 그런 걸 참고, 이해했던 내가, 나 자신이 진심으로 혐오스러웠고 수치심에 치가 떨렸던 것이다. 그건, 내가 했던 그 모든 것들은 바보짓이나 다름없었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였던 나 자신이 한심스럽고 비참하고 바보 같고, 말 그래도 X 같은 기분에 수치심에 사로잡혔었다.

물론 모두가 힘들었겠지만 나만큼 힘들었던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싶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나 자신을 혐오했고 미워하고 원망까지도 했다.

 "그때 왜 벙어리처럼 있었니? 그때 왜 나는 나를 변호하지도 못 했니? 나는 왜 바보처럼 내 주장을 펼치지도 못 했니? 왜 그랬니? 왜 그랬어?"

그런 바보 같은 수많은 물음표 속에서 나는 눈을 뜨고 감고를 매일 반복했다. 내가 원해서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그 일이 끝나자마자 나는 내가 참가자였을 때 만났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고,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나를 놓아버렸다. 그렇게 되자 내 주변에 존재하는 가족들에게, 내 친구들의 작은 말에도 크게 반응하고 화를 내고 울고 짜증을 냈다. 매일매일, 그것의 연속이었다.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나는 이 일을 위해서 휴학까지도 했었는데, 일이 끝남과 동시에 더 이상 목표가 없고 심지어 실패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나는 차라리 먹는 게 낙이었다.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컴퓨터를 했고 TV를 보고, 누군가의 연락-특히나 그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의-도 원치 않았다. 그리고 계속 계속 먹었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그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살은 살대로 뒤룩뒤룩 쪄갔고 휴학하는 기간 동안 10KG 이상 몸이 불었다. 정신이 망가지니 몸도 망가지고, 몸이 더 망가지기 시작하니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을 치다 못해 바닥을 뚫고 지구 반대편 우주 저 너머로 곤두박질쳐버렸다. 더 이상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저 악만 남아있었을 뿐.

그렇게 망가진 몸과 마음을 가지고 복학을 했고 조용히,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나는 1년을 지냈다. 다만 그동안 쪘던 살을 빼는데 몰두했다. 처음엔 맞는 옷이 없어서 시작했다. 운동은 원래 좋아했었으니까 자취방 근처 헬스장을 다녀볼까 했지만 혼자 운동을 하려니 근육이 잘 붙는 몸인데 지방이 잘 타지 않아 오히려 몸이 단단해지기만 할 뿐 날렵한 태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의 여성트레이닝센터에서 PT를 시작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그래도 몸무게가 줄어드는 게 보이자 재밌기도 했고, 무엇보다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리니까 자연스럽게 모든 게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3달 만에 1년 동안 찌웠던 10KG을 그대로 빼는 데 성공했다. 안 맞던 옷이 맞기 시작하고 주위에서도 몸도 좋아지고 표정이 밝아진 것 같아 보기 좋다는 소리를 들으니 잃었던 자신감을 조금씩 되찾는 데 성공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도 다시 재정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는 MOOC 사이트에서 영어로 전공과목을 공부해서 과목 학위도 받았다. 나는 잃었던 내 모습을 찾으려고 내 나름대로 다시 일어설 준비를 천천히 했다, 그 1년 동안. 그리고 그 해 말에 빅데이터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었고 더불어 또 다른 전공을 선택하게 되면서 복수전공 관련 활동을 학교에서 찾아 이제는 학교 밖이 아닌 학교 안에서의 나를 돌아보기로 했었다. 그리고 2016년이 되었고 나는 비로소, 다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2014년도의 나는, 나 자신을, 내 자체,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까지도 했던, 그런 시간들뿐이었다. 남들이 나를 모욕하고 부정하는대 그치는 게 아니라 심지어 내가 나 자신까지도 미워하고 증오하기 시작하니까 정말 갈 데까지 가겠더라는 거다. 그래서 나는 할 수만 있다면 2014년도를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비참해질 수 있나, 바보 같아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실패한 한 해'라고 정의하면 될 정도다. 그 실패한 한 해, 잃어버린 나 자신을 다시 찾기까지 또 다른 1년이 걸렸는데, 문제는 2017년 지금, 졸업을 앞둔 현재 나에게 또 2014년도의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번엔 그냥 모든 게 다 아니꼬워 보이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이 미워 보이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면서 2014년도의 내가 얼마나 병신 같았는지를 다시 떠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2014년도의 나로 돌아가고 있는 걸까.


그래, 난 정말 병신 같았다.


이런 생각은 설날 차례를 지내면서 문득 들었다. 첫째, 둘째 언니와 남동생 이름은 알지만 내 이름은 절대로 모르는 이놈의 집안사람들 때문에 순간적으로 갑자기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엄마에게 얘기를 했더니 내 존재감을 더 높이라나 뭐라나. 존재감이라? 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인 채로 25년 동안 지내왔었다던 것이다. 작년까지도 괜찮았는데 그게 갑자기 너무 기분이 나쁜 것이다. 더하여 차례를 지낼 때나 음식을 할 땐 여자들만 일을 한다는 것에 또 짜증이 났다. 나는 엄마에게 '례를 지내는 것은 허례허식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그래도 조상님들 덕분에 잘 살고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 싶다, 지금까지 우리 집안사를 살펴보고 생각해보면. 거기에 더하여 엄마에게 내 속 얘기를 드문드문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날카롭게 뱉어댔다.  잘 지내다가 갑자기 셋째 딸내미가 뭐 같은 유교사상이라느니, 차례는 다 허례허식이라느니, 우리 집안은 왜 이 모양 이냐느니,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른다느니, 어렸을 때부터 아무도 나에게는 관심도 없었다느니, 언니들은 언니 같지도 않다느니, 왜 아무도 내 생각은 안 하느냐느니 하는 말을 하자 엄마도 황당했을 것이다. 그냥 다 아니꼬웠다. 그렇게 결국 하루 종일 우울한 상태로 설을 지냈고 엄마에게 모든 짜증을 퍼부어댔더랬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는 더 힘들었을 텐데 그런 말을 꺼내다니.

그래! 나는 불효녀다, 제기랄 거!!


 생각해보니 나는 2014년 그 날 이후로 나를 무시하거나 나 자체를, 내 존재를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 크게 반응을 하는 것 같다. 2016년에는 14년에 만난 쓰레기들과 비슷한 인간인 그를 '적'으로 만든 적이 있다. 그래, 그때도 왠지 2014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 것 같아서 아예 상종을 하지 않았더랬다. 그런 종류의 사람들을 마주하면 더더욱 반감이 드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설 당일에 차례를 지내는 동안 집안 어른들이 내 이름을 모르는 것에 불만이었던 내게 엄마는 또 네가 이해하라는 식의 말을 했었다. 그 말에 울컥한 나는 엄마에게 이제부터 나는 착하게 살지 않을 거라고,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에 그들의 말을 다- 참고 다- 이해하려 하지 않을 거라고도 말했었다. 참, 별 말을 다했었네, 생각해보니까. 진짜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던 걸까. 아무튼 엄마는 그 날,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던 상태의 내 모습을 보고 현재 나는 '졸업 전이라-백수가 되기 전이라- 불안한 심리 상태를 가졌으니 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건 누가 봐도 그래 보였으리라.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날 그런 행동의 내가 2014년, 갈 데까지 간 그 심리 상태로 돌아가기 전초전일까 봐 두렵다. 모두가 최악이라 생각하는 '자존심은 센데, 자존감은 또 낮은 상태.' 그게 딱 그 시기였고 지금 그때와 비슷하게 흘러가는 기분이 드는 느낌이다.

 

와, 그런 최악의 상황이 어떤지 잘 알면서, 뼈저리게 알고 있으면서, 그 1년 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알고 있으면서, 그 잃어버린 1년의 나를 찾으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나 자신이 제일 잘 알면서, 그런데 또다시 그런 거지 같은 내 모습으로 돌아가려 하다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아, 진짜 큰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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