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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Sep 14. 2016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해.



올해도 적을 한 명 만들었다. 적이라면 적이고 내 인복 중에 복이라면 복일 사람이었다.

-


2016년은 나에게 '처음'이라는 단어를 많이 안겨준 한 해였다.

2016년은 나에게 제대로 된 학교 생활을 처음 하게 해 준 한 해였고,

처음 진정한 친구들을 만나게 해 준 한 해였고,

처음으로 대학교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한 해였고,

처음으로 내 모든 속 얘기를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의 지인들에게 털어놓은 한 해였고,

처음으로 학교에서 일을 해본 한 해였고,

그리고 처음으로 누군가의 밑에서 거의 개인 비서처럼 따라다녀야 했던 한 해였고,

그의 친구, 술에 찌든, 처음 보면서 앞으로도 보지 않을 그의 친구에게 '18x'이라는 욕을 들은 한 해였고,

그 x  때문에 나는 잘 마시지 못하는 술을 죽을 뻔할 때까지 마셔본 한 해였고,

... 이렇듯 극과 극의 '처음'을 안겨준 한 해가 올 해였다.

그리고 나는 올해도 적을 한 명 만들었다. 위의 글만 읽어도 대상은 누군지 알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왜인지 내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를 많이 했다. 그들에 대한 나의 기대감이 클수록 그 사람에게로부터 얻는 실망감도 크다. 그리고 나는 올해, 직함만으로도 존경받을만한  '그 쓰레기'와 친분을 쌓을수록 나는 계속 피폐해지고 있는 모습만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3개월의 일이 끝나고 또 다른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친구들은 내 얼굴을 보면서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느니, 웃음이 많아졌다느니 하는 말을 많이 했다. 솔직히 나는 그 쓰레기의 '거의 개인 비서인 듯한 역할'을 하면서 인신공격이니, 욕받이 노릇을 하면서 3개월을 버텼었다. 나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쓰레기 같은 마인드 자체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나는 본인의 소유물도 아닌데 마구 대하는 것 자체, 그리고 내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는 것이 너무너무 기분이 나빠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서 그 3개월을 그렇게 버텼다. 오죽했으면 내가 내 입으로 바닥을 닦아도 될 것 같다느니 하는 말을 했었을까. 그만큼 살면서 단 시간에 한 사람에 대한 욕을 한 것도 '처음'이었다.

 

 엄마는 그 쓰레기가 내게 어떤 말을 했는지 확실히 모른다. 나 또한 그 말을 굳이 엄마에게 말해서 상처를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제야 나는 엄마에게 그 쓰레기의 친구에게서 '18x'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아무리 힘들다는 말을 해도 시간 지나면 다 해결이 된다고 말하던 엄마도, 어제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2년 전 언젠가 난 내 속이 내 속이 아니라, 썩어 문드러져 없어졌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나는 속이 없는 사람이다. 고로 내게 쓰레기를 투척해도 다 받아주겠다." 혹은, "나는 쉬운 사람이다, 아무 말이나 해도 나는 보살이다, 부처다."라는 말로 인지하는 x 같은 사람 또한 있었다. '썩어 문드러졌다.'는 말은 나는 속이 새카맣다는 거다. 그냥 다 타버려서 부서져있다는 말이고, 내게 함부로 대하지 말아달라는 말이었다.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장난이라도 정도가 있는 거고, 특히나 나는 그 정도의 선이 명확하기에 넘지 말아달라는 거다.


그런데 그런 나의 약점을 가지고 놀거나, 이용하거나, 더 상처 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적으로 만들었다.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상대가 미워도 나에게 득 되는 사람일 수 있다, 둥글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그게 뭐람. 그건 그냥 참는 것일 뿐, 상대에게 나는 다 받아주는 사람이라고만 말할 뿐이잖아.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엄마.

많은 적을 만들면 좋지 않지만, 내게 해코지하는 사람들은 적으로 둘 거야.

둥글게 살더라도 모난 부분이 분명히 있게, 내가 살아나갈 수 있을 정도로는 모가 나있을 거야.

나는 부처님도, 예수님도, 하느님도 아니야. 관대하게 살 수없는 인간이고 굳이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아.


미움의 가시는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의 적은 만들어야 마땅하고, 그에 따라서 내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이라는 단어를 많이 안겨준 2016년에,

나는 처음으로 나이 든 적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처음으로 인지했다.

적을 굳이 만들 필요는 없지만, 굳이 만들지 말아야 할 필요도 없다고.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나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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