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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May 15. 2017

요즘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누군가에겐 아주 많이 불편한 이야기



어느 날, 내 다음으로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된 친구에게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언니가 일 할 때 어땠어요? 그냥, 그때 언니 힘들었다고 해서... 어떤 게 힘들었나 싶어서..

저 메시지에 나는 갑자기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일 할 때 '그 인간'은 나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억지로 풀게 만들어 개인 SNS로 친구에게 본인임을 숨기고 나 인척 하면서 이상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던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혹시나 그 친구도 그렇게 당하고 있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 메시지도 그 인간이 내가 본인 욕을 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저렇게 보낸 걸까 봐, 아주아주 아-주 장문의 메시지를 몇 분에 거쳐서 써 보냈다.


음... P야, 너 본인이 아니라 '그 인간'이라면 당최 저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어서 일부러 저한테 연락을 하셨는진 모르겠는데요. 지금 이 친구 휴대폰으로 저한테 굳이 연락을 해서 마치 P인양 저한테서 일부러 '안 좋은 소리'를 들으려고 연락을 하셨다면 앞으로는 학생들 휴대폰 가지고 마음대로 장난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정말 만약에 진짜 '그 인간'께서 저한테 이렇게 여쭤보시는 거라면 저는 같이 일할 수 있어서 좋았다면 좋았고 힘들었다면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네요.
일 이건 사람 이건 호가 있으면 불호도 있고 불호가 있으면 호가 있습니다만 3개월 동안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호 보다도... 솔직히 마음고생을 더 많이 했습니다. 잘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작은 사무실에서 복작복작하게 지냈던 게, 좋았던 순간도 있었지만 성격 상 누군가로부터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소리를 듣는걸 매우 싫어하는 저로서는, 솔직히 제게 하시는 인신공격을 비롯한, 나중엔 장난으로 말씀하시는 것까지도 상처가 많이 남았습니다. 물론 어른으로서 저에게 제안해주시는 공부나 학습방향 등은 저도 많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점은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제가 이 분야 일은 적성에 안 맞는다는 것도 확실히 알게 되었고 지금은 제 적성에 훨씬 맞는 직무가 어떤 것인지를 찾게 되었음은 확실합니다.
모든 일이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실 사람들 서로서로 배려하고 조금이라도 상대방을 생각해준다면 타인의 근로 조건과 다른 사무실에서의 일이 힘들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혹시 진짜 P라면 ㅋㅋㅋㅋㅋㅋ내가 이렇게 보내는 게 이상하겠지만 저 글 안에 내 맘이 담겨있단다...
성격의 차이였던 거 같아. 너는 친화력이 좋으니까 누구보다도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안 좋다고 보면 다 안 좋게 보이고  그 속에서도 좋은 부분을 찾아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도 분명해! 부당하다 생각하는 것은 말을 하는 게 옳다고 보고 아닌 건 아니라고 바로 말하고. 나는 성격상 그게 잘 안되었어서 혼자서 많이 끓었던 것 같아.

내가 얼마나 많은 필터링을 거쳐서 글을 적었는지 단연 짐작이 갈 것이다. 직설적이지 않아서 답답한 고구마 같은 메시지였다, 저 글은.

내가 저렇게 보내자 상대는 조금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절. 대.로. 그 인간이 아니라 본인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저 글을 그 인간이 보기를 99% 바랐다. 그래서 뭔가 아쉬우면서도 다행인, 그런 오묘하고 애매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며칠 뒤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면접관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 최근에 가장 본인을 힘들게 했거나 화나게 했던 순간이나 사람이 있었나요? 있었다면 말해주세요.

면접자는 3명이었고 내가 가장 첫 번째로 말하는 주자였다.

'있었다면 말해주세요.'라는 질문이 끝나자마자 나는 2016년 지난 3개월 동안 일했던 것이 생각났었고 그가 생각났다.

한 3초 동안 망설였다. 나는 이런 말을 면접관에게 말해도 되는 걸까. 그런 고민을 하는 그 3초 동안 말할까, 말까를 수십 번 고민한 것 같다. 그리고 정말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이 이야기를 기승전결, 조리 있게 말해야 할까 엄청나게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뜸을 들이 듯 입을 열었고 나의 경험담 중 술 때문에 죽을 뻔했던 경험을 약간의 필터를 거쳐 순화시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면접관은 다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 그럼 술 권유를 피하는 다른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요? 주변 사람들은 뭘 했고 왜 다 받아 마셨어요?


면접관의 말에 나도 답답했다.

 왜 안 해봤겠습니까. 그런데 '강제로' 먹이는데 어쩝니까. 요즘에 회사에서도 이러는 사람 잘 없잖습니까. 저도 몰래 버리기도 하고 화장실로도 '대피'해보고 가게 밖에  오래 있다가 들어가기도 했는데요. 그러다 어느 날에 제가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자 소주를 맥주 글라스에 따르더니 원샷하라고 시키던걸요. 중간에 끊으면 강제로라도 마시게 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마시지 말라고도 했고, 그 인간에게 그만하라고도 말했죠. 그런데 본인은 그 X 같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마시지 않으면 폭언을 일삼았죠. 학생 모두가 본인처럼 살기를 바라는 걸까요?


여기서 '본인처럼'이란 누군가의, 즉 권력자의 혹은 윗사람의 '비위를 아~주 잘 맞추는 것(난 이전에 썼던 문장을 지우고 최선을 다해 그 문장을 순화시켜보았다.)'을 말한다. 그건 그분의 전문이었으니까. 아참, 물론 위와 같이 얘기하진 않았다. 내가 미쳤다고 이렇게 필터링 없이 얘기했겠는가. 나는 위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순화시켰다.


 왜 안 해봤겠습니까. 저도 몰래 술을 물컵에 뱉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고 일부러 화장실에 오래 있다가 나오기도 했었죠. 물론 주변 사람들이 마시지 말라고도 했고 '그분'께 그만하라고도 말씀드렸는데 뭐, 무조건 다, 강제적으로, 마시라고 하시더라고요. 하, 그런 말씀이 잘 통하지 않는 분이셨으니까요. 그런데 음, 뭐, 워낙에 제가 술을 잘 못 마시기도 하고 그때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사건이 발생할 '뻔'하지 않았을까,라고도 생각합니다.


나의 답을 들은 면접관들은 입을 떡 벌렸다.

- 아니, 요즘 세상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 어머 세상에... 나 원...

그중 여자 면접관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숨을 내뱉었고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속으로 '그러게요. 요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네요, 아직도요.'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엔 어떻게 되었나요? 풀었나요?'라는 그들의 마지막 질문에  나는 선뜻, '네.'라고 명확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에둘러 '풀었다.'라곤 얘기했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표면적으론 풀렸을진 몰라도 진심으로 나는, 풀리지 않았다. 여기서 '풀다.'라는 것은 국어사전에 나온 수많은 정의 중에서 '일어난 감정 따위를 누그러뜨리다.' 혹은 마음에 맺혀 있는 것을 해결하여 없애거나 품고 있는 것을 미루다.'라는 것인데, 과연 어느 누가 본인을 죽일 뻔 한 사람과의 일과 감정을 100% 해결하고 누그러뜨릴 수 있겠는가. 나는 그 어떠한 전지전능한, 마음이 넓은 누군가도 아닌 인간인데. 


그런데 면접이 다 끝나고 방을 나오면서 '아, 괜히 말했나.' 싶더랬다. 괜히 그런 말을 해서 나의 약점 하나를 공개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면접관들 중, 어쩌면 '그 인간'보다도 연세가 훨씬 많은 면접관도 생각하기를 '세상이 이렇게 많이 변했는데, 여전히 누군가는 그러고 있다니!' 하며 충격을 받는 모습에 놀라웠다. 그래, 세상이 많이 변했는데 말이다. 


-

사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최근까지도 내 친구 중 한 아이는 나에게 경찰에 신고하라, 재판 준비를 하라느니 그런 농반진반 말을 던지기도 했다. 약 40명의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한 누군가의 재판처럼 너도 무더기 증인 신청이 가능한 만큼 증인이 많다느니 하면서. 그 말에 나는 '돈만 있으면 뭔들 못하겠니.'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돈이 없어서, 어려서, 여자이기 때문에 약한 그들을 쥐고 흔들려는 사람들에 '맞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나는 본인도 모르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돈'이 있음으로써 누군가를 위에서 군림할 수 있다는, 권력을 쥘 수 있다는, 갑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참으로 웃기고 씁쓸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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