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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an 25. 2017

솔직함을 대하는 친구들


 나는 초등학생 때 내 친구들에게 아주 많이 의지했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가정사도 스스럼없이 말하곤 했었고 그 결과, 그들은 나를 비참하고, 불쌍한, 어른인 척해야 하는 아이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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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와 조카를 만나고 돌아오던 버스에서 나는 둘째 언니와 나 사이에서의 트라우마가 갑자기 떠올랐고 그 날 이후로, 왜인지 모를 우울감이 나를 보이지 않는 감정의 바닥 저 끝으로 끌고 내려간 것이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대학교에서 만난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할 나의 친구들에게 지금, 그 순간이 너무 힘들고 우울하다며 털어놓았다. 그러자 졸업과 동시에 취준생-이라고 말하고 백수라고 한다.-이 될,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일 한 친구에게서 이유를 묻는 개인 메시지가 왔고 나는 고된 나의 감정의 고리가 너무 얽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날 바로 급작스런 여행이 계획된 것이다. 대학교 친구들의 고향을 매 달 번갈아가며 여행하자는 약속이 행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제, 1박 2일 동안의 여행 동안 나는 그들에게 속 얘기를 털어놓았다.

 아이들은 아니 모든 사람들은 엄마와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엄마를 매몰차게 밀어낸 첫째 언니의 이야기, 둘째 언니와 엄마와의 관계, 현재 엄마는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언니들은 엄마에게 사과를 받았고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 그러나 나는 그 사과의 현장의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었고, 엄마에게 보단 아빠와 할머니, 특히 둘째 언니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는 것, 예전에 아주 조금씩 솔직해지기 시작했을 즈음 살짝 말해뒀던 어리지만 어른스러웠어야 했던 이유-아빠의 죽음-와 더불어 지금 나의 현재 감정까지. 전부 빠짐없이 그들에게 말했던 것이다. 나의 마음속에 담겨있던 모든 말을 그들에게 털어놓기 시작하자 생각만 해왔던 말들이 마치 방언 터지듯 주루룩 쏟아져 나왔다.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의지하는 것 같고 나만 이해하면서 살아야 하고, 나는 왜 그렇게 살아왔어야 했는지, 앞으로 내 나이만큼 나는 그들을 이해만 하며 속으로 삭이며 살아가야만 할 것 같다고. 그리고 또 다음 내 나이만큼의 시간에도 그럴 것 같다며, 형부가 최근에 나에게 말했던 장녀 같다는 말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더했다. 마침내 나는 내가 속으로만 생각했던 말들의 마침표로 결국 눈물을 흘리며

 "나 너무 힘들어."

라고 말했다.

나는 솔직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고 그렇게 살아왔었다. 솔직함이라는 것이 나를 얼마나 우습게 만드는지, 나를 얼마나 불쌍한 사람으로 만드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던 사춘기 시절 탓에 20대에 들어선 나는 솔직함을 추구하면서도 솔직할 수가 없었다. 직설적일 수가 없었고 뱅글 돌려 말하기 선수였다. 지난 시절엔 그 누구도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던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 글을 쓰면서 살아와야 했고 홀로 외롭게, 혼잣말을 해야 했고 후회만 하면서 살아와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제는, 그래도 이 사람들에게는 내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아주 작은 용기가 났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까.

 내가 솔직해지니, 당신들은 당연히 날 떠날 건가요?

나는 그게 두려웠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벌거벗은 모습까지 다 보인 것 같았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까, 그들은 우는 나를 다독여주었다. 한 명은 담담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한 명은 나를 안아주었고, 한 명은 아무 말 없이 티슈를 건네주었고, 또 한 명은 내 말에 공감해주며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술을 마시면 우는 주사가 생겨버린 나를 놀리려고 이 친구들은 종종 내가 울고 있는 사진을 찍곤 했는데 어제도 역시나, 언제나처럼 이들은 내 사진을 찍어 남겨놓았다. 물론 그 상황에서 찰칵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에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사진 메시지가 여러 개 와 있었고 대부분이 내가 우는 모습이었다. 나는 저런 상황에서도 사진을 찍었냐며 괜히 타박을 했지만 개구진 친구들은 오히려 나를 웃게 만들었다.

 "이 또한 추억이야!"

그들은 이렇게 그들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 날 내 이야기를 다 토해낸 그 자리에서 우리는 훌훌 털고 일어나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정말, 언제 울었냐는 듯,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만약 어린 나이였다면, 그러니까 초등학생 때 만났던 아이들에게 이런 모든 말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나는 아무래도 정신병이 있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은 나를 멀리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생각하는 폭도 넓어지고 마음도 넓어진다. 그것은 나이를 먹으면서 삶의 경험이 많아지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초등생 때의 그 아이들도 오늘날의 나에게 내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어쩌면, 정말 어쩌면 어제의 내 대학 친구들의 반응처럼 응답을 해주었을까, 하는 그런,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대 중반의 내가 10대가 아닌 20대 중반의 그 친구들에게 다시 솔직해진다면 그 친구들은 그때처럼 또다시 멀어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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