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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Apr 26. 2017

배려한 거야.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는 말을 요즘 들어 너무나도 많이 듣고 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1. 3시간 전 일이다.  

고향 친구 중에서 그래도 제일 친하다고 생각했던 아이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향엔 안 내려와?'라고 물었고 그 아인 언제나처럼 시간이 없다느니, 할 일이 많다느니, 그리고 결론은 '네가 대전으로 오는 횟수가 더 많으니 니가 와.',였다.


2. 20대 초반에는 사람이 좋아서 내가 직접 그들을 만나러 다녔다. 물론 그 친구도 내가 만나러 다녔다. 누가 더 위하 건 간에 상관은 안 했다. 내가 그 친구가 보고 싶으면 내가 가면 돼! 라며 달려가곤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젠 아예 '아, 얘는 잘 돌아다니는 애니까. 내가 있는 곳엔 언제나 얘가 오는 애니까.' 이런 생각을 아예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3. 문득 2014년에 함께 일한 언니 중 한 명과 대화가 생각이 났다. 요즘 뭐하고 지내냐는 물음에 휴학 중이라며 여행도 다니고 쉬고 있다는 내용의 대답을 했더니, '한량이네?' 이런 말이 돌아왔다. 그땐 웃어넘겼는데, 내가 그렇게 많이 싸돌아 다녔구나,부터 시작해서 아예 '나=잘 돌아다니는 애= 놀러 잘 다니는 애 = 한량'으로 생각하고 점을 찍어버렸던 그 언니가 갑자기, 오늘 이 친구와의 대화 중에 생각이 났던 것이다. 

내 이미지를 내가 잘못 만들어 온 걸까.


4. 친구에게 이렇게 서운한 느낌이 든 적은 처음이었다. 친구의 말에 갑자기 내가 마치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그런 말 잘 듣는 개처럼 느껴진 건 오늘 처음이었다.

누군 안 바빠?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도 그래, 일을 하지 않고 있는 내가 가는 게 맞나, 싶기도 했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 준비하는 게 있는데, 얘도 이젠 나를 한량으로만 생각하는구나, 그러면서 서운하고 화까지 났다.


5. 친구와 전화를 하다가 자꾸만 신호가 끊어져 마무리도 하지 않은 채 그래, 그럼 시간 날 때 보자, 라는 메시지를 보내곤 연락을 멈췄다. 그리곤 이런 속을 털어놓고 싶어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친구 중 한 명에게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했다.


6. "... 그게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는 거야. 그리고 그 애는 내가 대전으로 가면 아르바이트 하루 뺄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 그래서 '고오맙다, 말만이라도 고맙네.' 그랬어. 그래도 이젠 내가 예전에 내 몸이 아니다,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다, 저번에 면접 보러 갔을 때 전날 올라갔다가 다음 날 새벽에 고향에 도착했을 때 코피가 쏟아지더라, 이런 얘기를 하니까, '어이구? 너 거기 가서는 어떻게 지내려고 그래?' 하는 거야. 그때 화가 나서 내가 무슨 얘길 하려 했는지 알아? '너는 내가 죽어서야 그제야 고향에 내려와서 내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낼 거니?' 그런 말을 하려고도 했는데 꾹 참았다니까. 난 내 시간을 쪼개서 걜 만나러 갔고, 그건 그 아이를 배려했던 건데. 걔는 이젠 그게 당연시된 건가 봐. 그냥 당연하게 생각하네, 이젠."


7. 난 배려한 건데, 그걸 왜 당연하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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