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서 May 27. 2017

17

아침



 잠깐 졸았던 것 같은데 눈을 뜨자 아침이었다. 어젯 밤 늦게까지 글을 쓰다 잠이 들었다. 작은 글씨가 노트북의 하얀 화면에 한 줄씩 채워지면서 내 이야기가 만들어 지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무런 목적 없이 쓰는 글이었기에 어떻게 이어질지가 걱정이었다.
시계를 보니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밖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자전거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조금 이른 시간에 나서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아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와 세면실로 향했다. 사실 어제 체스를 두고 방으로 올라와서 바로 글을 쓰진 않았다. 글을 쓰기 전에 잠시-라고 하지만 한 두 시간정도- 다음 게스트하우스까지 가는 길에 어떤 관광지가 있는지 찾아 보기도 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갈 생각이었으나 다음 숙소까지 거리가 꽤 되었기 때문에 올레길 14-1 코스를 따라 서귀포로 바로 가로질러 갈 작정이었다. 그 길 위에는 생각하는 정원, 유리의 성, 오설록 등의 관광지가 이어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오설록은 꼭 들러보기로 했다. 대학 친구가 준 오설록 카페 할인 쿠폰이 있었기에 점심은 거기서 해결하기로 했다. 같은 녹차밭이지만 그래도 다희연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겠지.

세면을 하고 나와 계단을 올라가기 식당 앞을 지나갈 때 안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라디오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으로 누군가가 벌써 깨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숙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겠구나, 그런 생각을하며 나는 방으로 다시 돌아와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입고 선크림을 잔뜩 바른 후 서둘러 짐을 챙겨 식당으로 내려왔다. 식당 안에는 전날 아침처럼 빵과 잼, 버터가 놓여있었고 거기에 더해 달걀프라이가 올려져 있었다. 내가 창가 자리에 짐을 올려놓자마자 조금 전보다 라디오 소리가 약간 더 크게 들려오는 부엌에서 사장님이 식당으로 빠져나왔다. 사장님은 놀란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벌써 일어났어요?”

그녀는 시계를 보며 ‘이제 6시인데?’라고 덧붙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전거 타고 이동하려면 얼른 출발해야죠.

 “어, 내가 가져다 줄게요.”

사장님은 접시 위에 빵과 잼, 버터 그리고 계란을 올려 내게 건네 주었다.

 고맙습니다.

그녀는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고 여전히 어두운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 시간에 출발하면 무서울텐데.”

 괜찮을거에요.

나의 대답에 사장님은 창 밖에 두었던 시선을 내게 옮겼다. 그리고 그녀는 내 얼굴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뗐지만 그녀의 입술은 그녀가 시선을 떨구며 다시 굳게 닫혔다. 그러다 그녀는 다시금 나를 보며 말했다.

 “윤겸씨, 참 대단해요. 나도 어렸을 때 윤겸씨처럼 용기가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녀는 내게 이야기 하는 중이었지만 언뜻 혼잣말을 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하긴, 이미 늦은거, 지금 와서 후회하면 뭐해. 그쵸?”

마치 자신에게 이야기 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윤겸씨는 후회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랑도, 일도, 여행도.”

그녀의 말이 끝났을 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었기에 그저 입으로만 미소를 짓고는 버터를 빵에 발랐다. 그녀는 포크로 달걀 노른자를 터트렸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더라고요, 그 시간 속에서 내가 무엇을 잡느냐에 따라서 시간은 반짝거리면서 흐르기도 하고 때론 되게 구리게 흐르기도 하죠.”

나는 아무 말 없이 사장님을 빤히 쳐다보았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사실을 나도 확실히 알고 있고, 맞다. 하지만 어린 나도,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땐 시간이 멈추지 않고 조금만 더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은 나이가 빨리 들어 어른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의 막연한 상상을 더한 나의 희망이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포함한 꽤 복잡한 심경의 심리였다. 사장님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쳐다보는 내 모습을 보며 사뭇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윤겸씨도 알다시피 나의 시간은 말했던 것처럼 후자고..”

그리고 진지하게 듣고 있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피식 웃고는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하하, 그러고 보니 울 엄마도 나랑 똑 같은 말 해줬었거든요. 나는 윤겸씨가 동생 같으니까 말해주는 거라 생각해줘요.”

 네, 고마워요.

 “아, 아침부터 너무 진지했다! 아직 해도 안 떴는데? 미안!”

사장님은 오른쪽 눈을 찡긋하곤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아니에요.

사실 그녀가 한 말들이 다 맞는 말이었기에 나는 아무 말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마냥 어린 나이가 아니지만 그래도 그녀에겐 어린 나였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던 것, 당연히 이해가 갔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어른들이 나에게, 특히나 나에게 저런 '바르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하는 옳은 말'을 많이 해주었기 때문에 더 더욱 이해가 갔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방금과 같이 고개만 끄덕이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던 것같다. 그저, 수긍만, 계속적인 인정만, 공감만, 이해만 했을 뿐이었다. 러나  여행은 사람을 솔직하게 만든다.

 있죠,

이곳에 와서까지 나를 숨기고 있어야 할까. 차라리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그래도 이곳에서 만큼은 솔직하게 말해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저는,

나는 말의 초입에서 약간 뜸을 들였다. 순간 그가 말했던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말했던 것처럼 조금은 이기적일지라도 나는 이 곳에서만큼은 솔직해지고 싶었다. 어쩌면 지금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순간이 될수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든것은 왜일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1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