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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un 14. 2017

첫사랑에게

당신이라면 그냥 읽어만 주세요, 부끄러워서요.



안녕하세요.

너무 깜짝 놀랐어요. 갑작스런 연락 아닌 연락이 와서요. 벌써 몇 년 전부터 끊긴 줄 알았던 연락을 다시 해줘서 고마워요. (비록 저인 줄 모르겠지만요.) 참, 혹여나 이 글을 본다면 그냥 읽어만 주세요. 제가 무슨 말을 하던 그냥, 넘어가 주세요. 그냥요... 부끄러워서요.

음,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시간이 참 빨리 갔어요. 서로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벌써  당신은 또 다른 세월을 살고 있고 저도 그때의 당신 나이가 되어있네요. 지금에야 당신의 나이가 되어보니까 그때 당신은 어렸지만 어른인척 하는 사람이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지금의 나처럼요. 어렸던 저는 그때의 당신이 마냥 멋있어 보였어요, 당신이 했던 말들, 행동, 모든 것들이요. 그랬는데 지금, 당신 나이가 되어보니 당신도 참 많은 고민을 했겠구나, 힘든 시간들을 겪어왔겠구나,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요.

그리고 그 밤, 당신과 연락하던 그 날들 중 가장 슬펐던 그날 밤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때도 당신은 힘들어하고 있었어요. 그런 당신과 연락을 하면서 저는 어두운 방에서 울고 또 울었었네요.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힘들어하는 사람 곁에 있어줄 수없어서 슬프다는 말부터 당신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그 말은 모두 제 고백이었더라구요. 하하, 제가 너무 욕심을 부렸던 것일지도 몰라요. 그때 마음을 들키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겠어요, 어렸고, 당신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었고, 그런 당신을 보기가 힘들었을 만큼 제가 당신을 너무 좋아했었던걸요.

그 날 이후, 당신과 연락이 뜸해지고 한 동안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락하다가도 그 사람들과 저 사이에서 당신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어요. 어느 날엔 누군가가 당신의 흉을 보는 말을 하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대화 화제를 돌리고 있는 저를 발견하기도 했었죠. 그렇게 당신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저는 혼자서 마음 졸이고 사랑했었나 봐요.

그리고 저는 당신과 비슷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당신이 했던 일들을 하려 했고 당신에게 연락을 했었죠. 그때 당신은 저를 말리는 대신 많은 얘기를 해줬어요. "내가 말려도, 너는 할 애야." 그렇게 말하면서요. 그리고 그때 당신이 일에 대해서, 사람들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던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잘 몰랐는데 그 일을 마치고 다시 당신이 해준 말들을 되뇌니, 당신이 다 맞더라구요. 그러게요, 이미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까지 파악하고 있었고 진심으로 저를 걱정해줬더라구요.  

그런데 일을 마치고 당신에게 다시 연락을 하는 건 참 어려웠어요, 연락을 하자는 마음을 잡기가 참, 어려웠어요. 저는 어렸고, 당신이 했던 그 말들은 다 맞았고, 모든 게 어려웠고 모든 사람들이 미웠으니까요, 심지어 당신도요. 다시 한번 당신은 왜 말리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었지만 그래도 저는 했었을 거예요. 당신이 저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처럼, 저는 할 애였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당신처럼 되고 싶었으니까요. 

당신은 저에게 멘토였고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친해지고 싶었지만 가벼운 마음은 아니었나 봐요. 저는 당신을 좋아했어요. 어쩌면 당신과의 첫 만남의 순간은 강렬했고 당신의 말이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던 시간들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어쩌면  당신은 부담이 되었을지도 몰라요. 당신은 미래를 걱정하는 한 청년이었지만 그런 당신의 한 부분만 보고 마냥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기 때문에요... 그랬다면 정말 미안해요....

아차, 그나저나 당신이 최근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된 건 2개월 전이었어요. 어쩌다 지인의 SNS를 통해 알게 되었거든요. 저는 당신이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언제 한국에 들어와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도 사람일은, 정말 한 치 앞을 모르는 안갯속 같네요. 이제야 당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이제야 당신이 한국에 돌아왔는데,...

그나저나 아침엔 비몽사몽 한 상태로 이불 안에서 당신의 연락 아닌 연락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당신은 저인 줄 알았을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 착각을 했던 걸까요. 무엇이든 간에 고맙습니다. 저는 아직도 쿨하지 못해서, 아직도 심장이 시려서 그리고 무엇보다 부끄러워서 개인적으론 연락을 먼저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당신이 항상 행복하기만 바라요. 그리고 이건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당신이 읽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모른 척 넘어가 주길 바라요. 부제에도 썼지만 읽었다는 말을 제게 한다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작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게 그 추억이 깨지지 않도록 당신이 조금만 도와줬으면 해요.


그런데 우리, 언젠가는 볼 날이 오겠죠...?


그때는 제가 당신을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길 바라요. 어렸을 때 저는 당신처럼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또 그렇게 되려고 계속 노력했어요. 그래서 당신을 대할 때 더 부끄러웠고 설레 했었나 봐요. 그리고 당신이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해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덕분에 저는 항상 도전했고 노력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래요. 언제나 당신이 저를 응원했던 것처럼 저도 언제나 당신을 응원해요.

고마웠어요, 고마워요, 그리고 앞으로도 고마 울 거예요. 

언젠가는 꼭, 당신을 만나러 갈게요. 그러면 아무렇지 않게 저를 환영해주세요. 웃으면서 맞이해주세요. 그걸로 돼요.

그럼... 다시 만날 날까지, 잘 지내요. 안녕.


- 이제야 당신의 나이가 된 어린 소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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