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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un 21. 2017

성장



새벽 4시 50분 알람이 울리자마자 부리나케 끄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전날 짐을 다 싸놓은 덕에 집을 나서기 전 준비를 하고 챙길 물건들만 식탁 위에 올려놓았을 뿐이었다. 엄마는 내게 아침 먹어야지, 그렇게 말씀하시고 이것저것 먹을 것을 물어보셨지만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았던 나는 토마토 주스 한잔으로 속을 달랬다. 그리고 어제 먹은 옥수수빵이 얹혔는지 어쩐지,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엄마는 딸내미를 2달 동안 보지 못한다는 것이 마음 에쓰였는지 굳이 터미널 안까지 들어오겠다고 하셨다. 가방이 무거워서 안쓰러워 보였는지 엄마는 자꾸만 가방을 가져 가려했다.

  에헤이, 엄마, 그냥 줘, 줘.

자꾸만 엄마와 내 손 사이를 갈팡질팡 해대던 캐리어가 결국 내 손에 잡혔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표를 확인하고 버스에 오르기까지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 걸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며 버스에 오르는 나를 보았을까. 출발 10분 전이었지만 엄마는 얼른 나를 버스에 올려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나 빨리 올라가랬다. 나는 알았다며 엄마와 쿨하게 안고는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당연히 터미널을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10분이라는 시간 동안 그 새벽에 깨어있던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멍을 때렸고 배즙을 마셨다. 혹시나 몰라서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한 번 쳐다보기도 했지만 엄마가 보이지 않았기에 안도감과 순간적인 아쉬움도 내심 생겨났었다. 그리고 잠시 후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차창이 터미널과 마주하는 순간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흰 마스크를 쓰고 얇은 생활한복을 입고 버스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나는 그 10분 동안 밖에 혼자 서 있었을 엄마를 생각하니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더랬다. 왜 안 가고 저렇게 서있었을까. 그럼 차라리 빨리 올라가라고 재촉하지 말지!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조금이라도 더 밖에 같이 있을 걸... 그런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엄마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처음 내 확고한 목표를 듣고 엄마는, 정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내 인생의 아주 큰 주류가 엄마나 가족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달았고 마침내 진짜 내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데 그것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분야의 일이었고 그런 나를 본 엄마는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고 있을까. 내가 생각했을 때 나는 조금 독특한 딸내미임에 틀림없다. 나는 엄마의 자식들 중에서도 가장 욕심이 많은 딸임에 틀림없다. 나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그 일은 꼭 해내야만 하고, 무슨 경험이건 뭐든지 보고, 듣고, 느끼고 싶어 하는 그런 아이였고 지금도 그렇다. 어쩌면 엄마는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나를 어떤 딸로 생각할까. 언젠가 나는 시간관리에 대한 교육을 들었었는데 강사는 본인의 3년 후, 5년 후, 10년 후의 내 모습을 이미지화시켜서 써보라고 했었다. 더하여 나는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적어보라고 했다. 나는 가족들에게, 특히나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믿음직한, 기댈 수 있는' 동생이자 누나이자 딸이 되고 싶고 적었고 그 날 이후 다시 읽어본 그 글의 전반적인 내용이 나는 남들에게 믿음직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는 걸 깨닫고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나조차도 위태로운 그 순간순간을 살아가면서 누가 나에게 기대길 바라나, 그렇게 기대려고 하는 사람을 밀쳐내려 한 적도 있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래서 나는 더 혼란스러웠었나 보다. 나는 남들이 나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고 싶은데, 정작 누군가가 나에게 의지하려 하면 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아이러니한 인간이 다 있다니!' 하며 속으로 생각하면서 살아왔더랬다.

사실 엄마는 본인의 속 얘기를 나에게만 하는 사람이었다. 본인의 인생 이야기의 어느 부분들이며 언니들에 대한 이야기며 친구들과의 이야기들까지. 엄마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언니들보다도 동생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언니들은 엄마에게 관심을 놓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엄마에게서 그렇게나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언니들을 보면서 속으로는 욕을 하며 저주까지 했었다. 그런데 나 또한 지쳐있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아, 나도 똑같은 년이네, 그런 생각도 했더랬다. 어쩌면 나도 엄마에게 의지를 많이 했는데 말이다...

엄마는 본인이 의지했던 유일한 딸이 볼리비아로 떠나는 것이 어쩌면 걱정이 되면서도 서운 할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목표로 하는 일에 대해서 다른 말 없이 그저 잘 해보라고, 잘 해낼 거라고, 그렇게 말을 해주면서 나를 버스에 올려 보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렇게 버스 차창 밖으로 흰색 마스크를 쓰고 한 없이 작아지는 엄마를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지만 결코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엄마에게 의지를 했었던 나도, 이제는 내 혼자 힘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순간이 온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 관리 교육 시간에 적었던 '자랑스러운, 믿음직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그 약속을 앞으로는 지킬 수 있을 수도 있겠구나, 그만큼 내 안에 있는 상처받은 아이가 많이 성장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꽤 울음을 잘 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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