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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 Dec 22. 2023

그때, 우리가 잃었던 것

영화 <서울의봄> (2023)

 모든 것이 변해버린 건 바로 그날 이후였다. 1979년 12월 12일. 영화 <서울의 봄>은 한국 현대사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 가운데 하나인 10·26 사건-박정희 대통령 살해 사건-직후에 세워진 신정부가, 전두환과 하나회 세력을 주축으로 한 12·12 군사반란에 의해 무너지는 과정을 긴박한 리듬으로 보여준다.


 나는 평일 한낮에 이 영화를 관람했다. 앞서 뉴스로, 영화를 끝까지 보고나서 심박수가 얼마만큼 올랐는지를 인증하는 챌린지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이라는 소문을 접했던 터라 내 경우에는 어떨지 내심 궁금했는데, 영화가 끝나갈 때 즈음 의외로 감정이 꽤나 차분해지는 경험을 했다. 오히려 영화 초반에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떠올리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쥐어야했다. 아마도 이때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 두었던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이라는 원초적 감정이 개인과 집단에 미칠 수 있는 파괴적인 영향력을 알기에, 영화의 결말이 더는 일어날 수 없는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전두광과 이태신이 철망을 두고 대치하는 결말부의 장면을 보면서 이런 감상을 떠올리고 있었다. 두 인물은 동일한 태도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구나.

 여기에서 '동일한 태도'라 함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기로 각오했다는 점에서다. 한때 대한민국에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내 생각에 전두광과 이태신 만큼 이 말을 잘 실천할 수 있는 이는 극히 드물 것 같다.


 그러나 영화를 마지막까지 보고 나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의지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이 향하는 방향이다. 심지어 어떤 의지는 꺾이는 편이 훨씬 좋다. 집단과 그 자신을 위해서도 말이다.

 우선 전두광의 욕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그는 국군보안사령관으로 군부에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만들어 자신의 영향력을 정치권에까지 확장시키는 데 성공한다. 영화 속에서 그는 하나회에 가입한 군인을 자신의 집무실 의자에 앉혀놓고 이렇게 말한다. "자, 이제부터 자네는 나야. 나는 바로 자네고.“ 이 대사는 그의 내밀한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그는 하나회라는 조직, 더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조직이 자신의 일부로서 기능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일부가 되기를 받아들이는 이의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일까? 얻는 것은 당장에 일신의 안전과 선택에 따른 책임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거기에 운이 좋다면 사회적 지위도 따라올 것이다. 그렇다면 잃는 것은? 실제 역사에서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집권한 이후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확연해진다. 바로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권리다.

 한편 수도경비사령관인 이태신은 전두광의 이런 사적인 야욕으로부터 군사조직과 더 나아가 국가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싸운다. 심지어는 전세가 완전히 기운 상황에서조차 말이다. 그는 남은 병사들의 헛된 죽음을 걱정하여 자신에게 권총을 겨누며 투항을 권유하는 작전참모 강동찬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마음속으로 결심했으면 쏴. 자네는 내가 인정하는 유능한 지휘관이다. 부하들을 위해 옳다고 판단했으면 방아쇠 당겨. (중략)안 쏠 거면 연병장으로 나와." 사실 전두광 역시 반란의 성공을 의심하는 하나회 장교를 향해 이와 제법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야망을 관철시키기 위함이다. 반면에 이태신의 발언은 작전참모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의견에도 일리가 있기에 존중하겠다는 태도를 전제로 깔고 있다. 그는 전두광과 달리 상대를 복속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두 인물의 차이를 비교해 봤을 때, 결국 이태신이 전두광으로부터 지켜내려했던 것은 각자의 위치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국가체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이런 작품이 계속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 차원에서든 사회적 차원에서든 상실의 경험을 지우지 않고 돌아보는 일은 중요한 것 같다. 첫째는 고통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고통을 풀어내고 그것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상실의 아픔을 통해 삶에서 소중한 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의 가치를 잊지 않고 현재의 삶을 가꿔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고통의 기억마저도 함께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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