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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 Aug 28. 2024

9등급 교사

마음의 밑바닥

 “선생님, 제가 이번에 교육청으로 한 달 동안 출장을 가게 돼서요. 제가 맡았던 생기부 업무 마무리를 대신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날은 이미 퇴근시간이 지난 뒤여서 교무실의 자리가 거의 비어 있었다. 나 역시 하던 일을 마무리 짓던 중 갑작스레 들어온 업무 요청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

 나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상대를 마주봤다. 그는 앞서 윤리 선생님의 사건이 있었을 때 회의실에서 ‘매뉴얼 대로’ 하자는 의견으로 여론을 반전시켰던 장본인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가 싫었다. 마음 같아서는 단호하게 요청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선은 상대 선생님의 입장에서 나에게 업무를 부탁하는 게 타당해 보였기 때문이다. 내 업무는 1학기 방과후 학교(보충수업)로, 2학기에는 비어 있었다. 다만 2학기에 업무를 이어 받았던 선생님이 방과후 업무가 처음인데다 자주 아파서 업무를 지원해주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녀는 교무실 안에서 막내였다. 만일 내가 핑계를 대어 일을 거절한다면, 다음 순번은 분명 그녀일 터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일을 거절하기에 마땅한 이유를 떠올릴 수 없었다. ‘우울증으로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실패했고, 마음이 몹시 지쳐 업무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 같다’는 말 정도가 입안에서 맴돌았는데, 그 말을 꺼내느니 차라리 일을 받아서 대충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할 게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는 안심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꾸벅 인사를 건넸다. 나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사실 이전 학교에서 마지막 해에 생기부 업무를 담당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 학년 부장은 직책에 따르는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학기말에 해외연수를 신청하여 자리를 비웠다. 급작스러운 책임자의 부재에 화가 났지만, 그때는 주어진 업무를 차질 없이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 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때와 동일한 업무를 전혀 다른 마음가짐으로 대하고 있었다. 반 아이들에게는 담임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남아서 생기부라도 잘 써줘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학년 업무에 있어서는 정말로 최소한만을 했다. 그러면서도 뒤에서 흘러들어오는 비난에 심장이 따끔거렸다.


 “선생님은 모두가 키우는 어린애 같아.”

 특히나 옆자리에서 함께 근무해왔던 현진의 말이 고통스럽게 폐부를 찔렀다. 입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소통의 문을 걸어 잠근 채 단절된 행보를 보이는 내 모습을 모두가 견디고 있다는 뜻일까.

 수치심과 굴욕감이 깊숙이 내려앉았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더 두텁게 침묵의 벽을 두르는 것으로 나를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벽 안쪽에서는 영혼을 갉아먹는 괴물이 목소리를 크게 키우고 있었다.

 - 만일 교사에게도 학생들에게 하듯이 성취에 등급을 매긴다면 너는 9등급에 해당할 거야.

 나는 습관대로 한쪽 입술 끝을 퍼석하게 말아 올렸다.


 그러는 동안 내 안에서는 한 가지 의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학교가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그리고 학생들이 편에 선 교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는데 왜 이렇게 돼 버렸을까? 아니, 그 전에 나는 과연 학교가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하기를 바랐나?


 ‘그렇다’라고 수긍하기에는 내 안에 남아 있는 슬픔과 분노가 너무 컸다. 관절이 꺾인 채로 바닥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채 놓여 있는 마네킹의 이미지를 연상했다. 마네킹의 얼굴에서는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매끈하고 단단한 밀랍 안에서 절규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더는 못 하겠어. 나는 도망치기로 마음먹었다. 상처 입은 아이의 나약함을 조롱하며 완벽한 성취만을 요구하는 듯한 세계의 목소리로부터.


 학교에는 자율연수 휴직을 신청했다. 10년 이상 근무한 교사에게 단 한 번 주어지는 연구년이었다. 소식을 접한 현진이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내년에 자율연수 휴직을 신청한 이유가 있어요?”

 “그냥요. 좀……. 대학원으로 가서 미뤄둔 석사 논문을 쓰려고 해요.”

 흥. 그녀가 코웃음을 치며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이제 곧 내 뒤에서 다른 사람들과 실컷 뒷담화를 즐기겠지.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는 이제 곧 학교를 떠날 사람이었으니까.  


 한편 종업식을 며칠 앞두고서 나는 저녁 시간을 기다려 기정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별인사 같은 게 아니라 그저 기정의 출결처리에 필요한 서류를 가져와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녀가 기정의 거취에 대해 뜻밖의 이야기를 전했다.

 “선생님, 내년에는 기정이를 제주도에 있는 학교로 보내려구요.”

 나는 무덤덤한 척 물었다.

 “다 같이 제주도로 이사를 간다는 말씀이신가요?”

 그건 아니고요. 그녀는 잠깐 틈을 두고서 말을 이어나갔다.

 “제주도에 제 지인이 살아서요. 그 분이 고맙게도 일 년 동안 기정이를 맡아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렇군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기정이도 성인이니까, 독립해서 원하는 대로 살면 되겠네요.”

 나는 잔뜩 비꼬아서 대꾸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고조됐다.

 “선생님, 저도 너무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에요.”

 “그렇다고 해도 아이를 버리면 안 되죠!”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를 향해 왈칵 화를 쏟아냈다. 마치 내가 기정이라도 된 듯이.

 “……솔직히 잠깐이라도 떨어져 있어야, 저도 아이도 살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서류는 어머님이 방문하시는 시간에 제가 수업이 있어서요. 다른 선생님께 얘기해 둘 테니 그쪽으로 전달해주세요.”

 “네.”

 기정의 어머니와 통화를 마치고서, 나는 남편이 올 때까지 한 시간 가량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꼭 내 마음의 밑바닥을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나는 학교로부터 버려졌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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