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의 만남
결국 2019년 3월부로 학교를 휴직했다. 그러면서 5년 가까이 미뤄두었던 석사 논문-두 번째 학교에 다니는 동안 문예창작 대학원을 야간 과정으로 수료만 해둔 상태였다-에 손을 대기로 했다.
졸업 논문의 요건은 기존의 문학 작품을 분석하여 평론하거나 단일한 주제로 단편 소설 세 편을 창작하고 해석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논문을 쓰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견딜 수 없는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독서와 글쓰기, 학위 취득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내면의 문제를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두 번째로 나에게 진정으로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확인해 볼 작정이었다. 사실 연수 휴직을 신청한 시점에서 내 마음은 더 이상 교직에 남기를 원하지 않았다. 시선 공포증, 이라고 느낄 만큼 사람들을 대하는 게 두렵기도 했고, 그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학교에 대해 느끼는 염증이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막막하게 여겨졌던 순간에 그때까지도 내 안에 은밀하게 남아 있었던, 삶의 다른 가능성 하나가 절박한 희망으로 피어올랐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창조하는 사람,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논문을 완성하기 위한 첫 과제는 세 편의 소설을 관통할 수 있는 주제를 정하는 것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집에서 한 시간 반쯤 지하철을 타고서 대학 도서관에 발을 들였다. 거기에서 심리학 분야의 책들이 꽂힌 서가로 향했다. 원론적으로 접근했을 때 문학은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예술의 한 분야이고, 지금 내 마음 상태는 온통 불안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우선은 심리 서적들을 둘러보면서 나에게 맞는 키워드를 찾아보기로 했다. 한참을 서가에 머물러 있던 중에 마침내 현재 나의 처지와 정확히 부합된다고 생각되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나는 홀린 듯이 책을 집어 들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였다.
자리에 선 채로 책의 서문과 목차들을 빠르게 훑는 동안 심장이 가파르게 뛰었다.
‧ 이 책에서 내가 분석하여 보여주려는 것은 근대인이 아직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불안한 인간은 온갖 부류의 독재자들에게 자신의 자유를 넘겨주거나, 스스로 기계의 작은 톱니가 되어 호의호식하지만,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 자동인형 같은 인간이 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어려움은 인간의 지적 능력 발달이 감정 발달을 훨씬 앞지른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이 인간과 현 상황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중략) 대다수 사람들은 아직 독립적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인간은 혼자이고, 인간 자신을 빼고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권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뎌내려면 그들에게는 신화와 우상이 필요하다.
· 내가 보기에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우리의 사회생활에서 가장 본질적인 사실(개인의 인격과 독자성)들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것이다. -‘1965년판 서문’ 중에서-
<목차>
제1장. 자유-하나의 심리학적 문제인가?
제2장. 개인의 출현과 자유의 다의성
제3장. 종교개혁 시대의 자유
제4장. 근대인의 관점에서 본 자유의 두 측면
제5장. 도피의 메커니즘
제6장. 나치즘의 심리
제7장. 자유와 민주주의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책의 내용이 내가 그토록 원했던, ‘잃어버린 언어’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두세 달에 걸쳐 책을 읽었다. 당시에-아직 진단은 받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우울증으로 집중력이 불안정해진 상태에서 내용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노트북을 이용한 필사였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책의 언어와 만났다. 가장 주목하고 공감했던 부분은 ‘도피의 메커니즘’을 설명한 ‘제5장’이었다.
1. 권위주의
- 수많은 사람들이 권력의 승리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것을 강함의 표시로 받아들였다. 확실히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은 순전히 물리적인 의미에서 우월한 힘의 표현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면, 나는 그보다 ‘강한’ 것이다. 하지만 심리적 의미에서 보면 권력욕은 강함이 아니라 오히려 약함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것은 개체적 자아가 홀로 서서 살아갈 수 없다는 표현이다. 그것은 진정한 힘이 부족할 때 2차적인 힘을 얻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다.
- ‘힘’이라는 낱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어떤 사람에 대한 영향력, 그 사람을 지배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잠재력을 갖는 것이다.
- 우리가 말하는 무력한 사람은 남을 지배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 권위주의적 성격자에게 활기는 기본적으로 무력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활기는 이 무력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활기는 자신의 자아보다 높은 무언가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2. 파괴성
- 내 밖에 있는 세계를 파괴하면, 그 세계와 비교하여 내가 무력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파괴적 충동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열정이고, 그것은 반드시 대상을 찾아낸다. 어떤 이유로든 타인을 파괴 대상으로 삼지 못하면 자기 자신이 쉽게 그 대상이 된다.
- 삶에 대한 충동과 파괴에 대한 충동은 서로 독립된 요소가 아니라 반비례적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 삶에 대한 충동(인간의 감각적‧감정적‧지적 능력의 성장과 표현의 자발성)이 방해를 받을수록 파괴를 향한 충동은 강해지고, 삶이 더 많이 실현될수록 파괴성의 정도는 줄어든다.
3. 자동인형적 순응
- 이 유별난 메커니즘은 근대 사회에서 정상인 대다수가 발견하는 해결책이다. 간단히 말하면, 개인은 자기 자신이기를 그만둔다. 그리고 문화적 유형이 그에게 제시한 성격을 그대로 수용한다. 따라서 그는 모든 타인과 똑같아지고 타인들이 기대하는 모습과 똑같아진다. ‘나’와 외부세계의 차이는 사라지고, 그와 더불어 외로움과 무력함을 두려워하는 의식도 사라진다. 자신의 개별적 자아를 포기하고 자동인형이 되는 사람은 주위에 수백만 명의 다른 자동인형과 똑같기 때문에, 더 이상 고독과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가 치르는 대가는 비싸다. 그것은 자아의 상실이다.
노트북에 한 문장씩 옮길 때마다 나는 깊은 허기를 느꼈던 것 같다. 권위주의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다른 사람의 기대에 충실하게 부응하려고 애썼던 ‘나’, 그 속에서 점점 자기혐오의 목소리를 키워갔던 ‘나’의 모습이 글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내가 왜 어릴 적부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을 동경해왔고, 창작자의 꿈을 떨쳐버릴 수 없었는지 분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반드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도피한 자리에서 잃어버린 자유를 회복해 나가는 여정이 되리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