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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올라프 Sep 30. 2020

전문직을 향한 부모님의 무한 사랑

나는 부모님의 꿈이었다.

법조인이요?

죄송하지만 전 별 관심이 없습니다만..




"엄마! 제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게 내버려 둬! 나 사시 보기 싫다고!!"


"아니, 도대체 왜 서울대 법대씩이나 간 애가 전문직을 마다하는 거야? 엄마 같으면 몇 년이고 도전해볼 거야. 너는 지금 기껏 2년 공부하고 이대로 포기하겠다고?"


"엄마, 나는 법조계 꿈을 단 한 번도 꿔본 적이 없어! 하고 싶으면 엄마가 직접 해. 나는 이 길에 전혀 뜻이 없어."


사시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엄마와 나눈 대화이다.




하고 싶은 거 하게 내버려 달라면서 소리를 빽 질렀지만 사실 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확실한 건 법조인은 절대 되고 싶지 않았다.  


하필이면(?) 수능 성적이 기대 이상으로 잘 나오는 바람에 애초 계획에 없던 법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입시 실적을 올리려는 재수학원과 '법대에 가면 인생이 핀다.'라는 부모님의 은근하면서도 노골적인 설득에 넘어가 버렸다.


법학과를 선택한 것은 어른들의 기대와 이왕 반수를 했으니 '서울대 법대'라는 최고 학벌 타이틀을 다는 것도 좋겠다는 나의 보상심리가 동시 작용한 결과였다. 최고 학벌을 달았으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부푼 희망도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서울대 법대를 가면 다른 길도 갈 수 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2학년 즈음부터 법대 선후배와 동기들이 당연한 수순처럼 사법시험을 하나둘씩 시작하면서 나도 사법시험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처럼 얼떨결에 준비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께서도 내가 당연히 사시를 치르고 법조인이 될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계신 듯했다.


당시 나는 대학교 입학 후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없는 상태였다. 그런 내가, 대부분이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분위기 속에서 사시를 거부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아, 나 제대로 속았구나.'


법조계에 뜻이 없었다면 애초에 법대를 들어오질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사시를 준비하던 3년의 기간은 내 인생의 최대 암흑기였다. 법은 나에게 너무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껴졌고 공부에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도 않았다. 물론 법 공부를 정말 좋아해서 법조계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냐만, 평생 법조문을 보고 판례를 보면서 살 생각을 하니 너무 끔찍하고 싫었다. 행복한 나의 미래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는 법과 씨름하다가 폭삭 삭아서 제 명에 못 살 것 같았다.


법조인이 되겠다는 확고한 목표와 의지조차 없는 상황에서 요행으로라도 시험을 잘 볼리 없었다. 나는 두 번의 일차 시험 낙방 후 사시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부모님과의 마찰을 뒤로한 채 나는 졸업 후 바로 은행에 취업했다.  



사시 거부 사태'로 한창 부모님과 마찰을 빚던 당시에는 '결국 나를 법조인 만들려고 법대를 가라고 꼬드겼나.'  '왜 공부를 잘하면 다 전문직을 하도록 종용받는 거지?'라는 원망 가득한 생각이 들었다. 당신들께서 이루지 못한 전문직 꿈을 딸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반발심이 들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의 사회 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부모님의 마음을 차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학창 시절 내내 자랑스러웠던 딸이 모두가 부러워하는 서울대 법대까지 갔는데 남들은 다 하는 고시를 안 하겠다고 하니 부모님께서는 큰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확실하게 다른 대안을 제시하며 부모님을 차분히 설득한 것도 아니고 무조건 사시가 싫다고 바득바득 악을 쓰던 내가, 그저 힘든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철없는 딸로 보였을 것이다.


두 분 다 학창 시절 내내 공부를 잘해오시다가 고등학교 때 막판 스퍼트를 제대로 올리지 못해 명문대를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으셨다. 또 일반 회사원으로 일하시면서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는 전문직에 대한 선망을 키워오신 터였다. 게다가 내가 사시를 시작하던 시기에는 아빠께서 평생 일하시던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당했던 때였다.


딸이 전문직을 갖길 바라는 마음은 부모님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부모님의 전문직 선망을 그저 '욕심'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부모님께서 사회생활하던 시절에는 전문직이 돈도 많이 벌었고 사회에서 더 인정받았으니까. 그래서 전문직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기필코 이뤄야 마땅한 바람직한 정답처럼 여겨졌으니까. 무엇보다 전문직의 길을 가야 내가 사회에서 덜 상처 받고 더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으셨으니까.


부모님께서는 전문직 자체를 사랑하셨다기보다는 전문직으로 상징되는 안정감, 명예, 사회의 인정을 딸인 나에게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는 부모님의 꿈이자 희망이었다.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지금은 그 시절에 대한 원망이 남아있지 않다. 당시 부모님의 진심을 몰라주고 오해하던 철없던 나의 모습만이 기억될 뿐이다.


이제는 전문직이 아니더라도 내가 할 때 행복하고 즐거운 일로(글쓰기, 그림) 성공하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다. 그래서 머지않은 미래에 부모님과 맛있는 식사를 함께 하면서 "엄마 아빠, 나 이 정도면 꽤 잘해왔지? 지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어서 참 행복해."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그때는 부모님께서도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따라서 행복한 웃음을 짓지 않으실까?  


#전문직 #법조인 #진로 #부모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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