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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올라프 Aug 21. 2020

상처를 글로 적으면 상처가 아니게 된다

내 최초의 상처 시작점으로부터

내 최초의 기억이 시작되는 7살 시절은 한 가지 사건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기억으로 뒤섞여 있다.

7살의 나는 굉장히 암울했고 이 시기는 나의 최초의 상처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다.  



당시 우리 집에는 부모님, 나, 여동생, 친할아버지,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함께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손주들 중에 나에게만 본인의 품을 허락하실 정도로 나를 예뻐해 주셨고 나에게만 따로 간식거리를 주셨다. 나는 할아버지와 방을 같이 썼는데 할아버지께서는 가끔씩 밤에 소주를 드시면서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다. 할아버지께서 우시면 나도 슬퍼져서 같이 따라 울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 아빠는 회사에 출근하시고 할아버지께서도 대부분 노인정에서 시간을 보내시느라 나와 항상 함께 있어주지 못하셨다. 유일하게 의지하던 할아버지마저 외출하셨을 때 나는 일하시는 아주머니 공포 아래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주머니께서는 욕을 잘하셨고 나를 자주 때리셨다.

아주머니에 관해 생생히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오신 엄마에게 된장찌개를 먹고 싶다고 했었던 적이 있다.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으셨지만 엄마는 웃으면서 어린 딸이 먹고 싶어하는 된장찌개를 밥과 함께 퍼주셨다. 그때 거실에서 TV를 보시던 아주머니께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x발"이라고 소리 없는 욕을 하셨다. 아마 본인이 해놓은 된장찌개 양이 줄어들고 또 요리를 해야 하니까 싫으셨던 모양이다. 어린 나에게 아주머니의 표정과 말이 얼마나 위협적으로 느껴졌는지 모른다.

 

내가 친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해서 상대적으로 차별받는다고 느꼈던 여동생을 대신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 아주머니께서는 여동생과 내가 싸울 때마다 이유를 불문하고 빗자루로 내 머리를 내려치셨고 나는 항상 머리 여기저기에 혹을 달고 살았다. 동생과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와 엄마방에서 같이 놀다가 동생이 울자(운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머니께서 빗자루로 내 머리를 때렸던 적이 있다. 엄마 화장대 거울로 부풀어 오른 머리 혹을 보면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주머니가 너무 무서워서 밖에 나가서 놀고 오겠다는 소리를 하지 못해서 친구들과 밖에서 놀았던 기억보다는 집에서 책을 읽거나 EBS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많다. 집에 동생이 있으면 동생에게 아주머니에게 밖에서 놀다 오겠다는 소리를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린 나는 부모님과 할아버지 그 누구에게도 언어적, 신체적 학대를 당한다는 사실을 그 당시엔 말하지 못했다.



나의 최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당시의 난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사랑을 안정되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시간은 내가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낀 시간이었다. 나는 외로움을 혼자서 극복해야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해주셨지만 항상 나의 곁을 지켜주지는 못했고 부모님께서는 일하시느라 어쩔 수 없이 나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셨다. 결정적으로 집에서 살면서 일하시던 아주머니의 정서적, 언어적, 신체적 학대로 당시 나의 마음은 불안하고 우울했다. 당시 나는 누군가 단단히 내 편이 되어준다라는 안정된 느낌이 필요했지만 그 느낌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고민이 있어도 주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혼자 앓으면서 해결하는 편이다. 아마 어릴 때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부모님께 얘기를 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일 없이 나 혼자 스스로 생각하고 극복하는 방향으로 자라온 영향인 것 같다. 부모님을 정말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그 마음과는 별개로 아직까지도 마음속 깊은 고민과 생각을 털어놓질 못한다.


지금은 7살 때의 우울한 기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다행히 그때의 기억이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때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나는 나 스스로를 챙기는 법을 터득했고 혼자 보내는 시간에 익숙해졌다. 당시 나는 혼자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지금도 나는 정말 나와 마음이 맞고 섬세한 사람들이 아닌 이상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는 혼자서 글을 읽고 쓰며 보내는 시간이 편하다. 마음을 위로받고 싶을 때 사람을 찾기보다는 에세이를 읽고 글을 쓰는 성향이 이때부터 싹이 튼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내가 잊지 못하는 상처를 마음속에서 그대로 썩히기고 트라우마로 남기기보단 밖으로 끄집어내서 글을 쓰면서 풀고 싶다. 그래야 내 상처에도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나의 최초의 기억은 상처 받은 기억으로 시작하지만, 나의 경험을 담은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서로 위로를 주고받으면서 상처가 치유되는 기적을 경험하기를, 결국엔 마음 따뜻한 기억으로 마무리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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