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해서 나를 접어야 하나 고민하는 시간들
최근 남편과 크게 싸웠다. 이유는 지독하게 현실적인 것, 바로 생활비 때문이었다. 작년 8월 프리랜서로 다시 일을 시작했던 나는, 고작 4개월 만에 수익 악화로 일자리를 잃었다. 3개월 전부터는 모아둔 돈도 다 떨어져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 쓰는 처지가 되었다.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괜히 눈치도 보였다. 그런데도 프리랜서가 아닌 출퇴근 직장인으로 돌아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조직 생활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이미 너무 잘 알게 되었고, 네 살 딸을 내 손으로 키우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남편 역시 아이를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직장을 구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 방법을 찾아봤다. 처음에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유튜브 채널을 열어봤다. 남편의 권유로 시작한 일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경단녀가 시니어 롱폼으로 월 2천만 원 벌어요’라는 문구의 영상을 보내왔다. 아침드라마 같은 사연을 1시간에서 2시간, 길게는 6시간까지 라디오처럼 풀어내는 채널을 운영해 큰돈을 버는 40대 여성의 이야기였다. 남편은 라디오 사연을 다루는 형식이니 내게도 잘 맞을 것 같다고 했다. 나 역시 솔깃했다. 무엇보다 ‘월 2천’이라는 숫자가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하지만 채널은 한 달 만에 접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면 막장드라마 이상으로 자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 피로도가 너무 컸다. 피디로 일하며 선정적인 주제와 콘텐츠를 다뤄본 적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혼자서 그 일을 오래 지속할 자신은 없었다. 영상 조회수도 200을 넘지 못했다. 무엇보다 감정이 실리지 않는 일을 붙들고 오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자 점점 피폐해지는 내 모습이 싫었다.
그다음에는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들로 눈을 돌렸다. 옆 동네 그림책 학원에서 아이들의 글쓰기를 봐주는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시범 수업까지 해보니 예상보다 잘 맞았다. 문제는 벌이가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꽃 포장 알바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알아봤지만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토록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건, 돈만 벌 수 있으면 되는 일이 아니라 돈 이상의 가치를 주는 일을 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남편은 내게 말도 못 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었다. 내 진로 문제에다 올 하반기 집 대출 금리까지 오를 것을 생각하며 걱정이 쌓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내가 내 갈 길을 가는 걸 막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지금 형편상 그 시간을 무한정 버텨낼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걸 충분히 보지 못했다. 남편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는 줄도 모른 채, 그 사이 나는 내 유튜브 채널을 새로 열었다.
그 채널은 여유가 생기면 해보려고 오래 미뤄둔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꽃이 튀듯 갑자기 시작하게 됐다.
“나는 예전부터 네가 이런 거 하면 잘할 것 같았어. 한번 해봐.”
10년 전부터 내게 유튜브를 권하던 친구의 말이었다.
사실 엉겁결에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이 일 저 일 돌아 결국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브런치 글을 바탕으로 에세이형 브이로그를 만들기 시작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수익화가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과 근거 없는 희망으로 두 달을 보냈다. 구독자는 57명(2026. 2. 24. 기준)이 되었다. 애초에 뚜렷한 목표를 정해두고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수치인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시무룩해졌다.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현실이 바로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희망이 사라졌다. 이제 나는 어디에서 돈을 벌어야 할까. 막막했다. 조직 생활은 두렵고, 돈은 벌고 싶었다. 그러다 260만 원을 주고 결제해둔 릴스 대행 강의가 다시 떠올랐다. 회사에는 죽어도 가기 싫으니, 이 절실한 마음을 잘 다스려서 이 일이라도 다시 본격적으로 해봐야 하나 싶었다.
그래서 정신 차리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마침 친구가 괜찮은 회사의 공고를 보내줘서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던 그때, 두 달 전부터 하기로 했던 그림책테라피 스터디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첫 타자로 내가 그림책테라피를 시연하게 되어 있었다. 시연 전날, 남편이 준비하는 나를 한참 보더니 갑자기 말했다.
“그림책테라피 해. 너무 잘 어울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어차피 AI 시대가 되면 피디는 승산이 없어. 얼굴부터가 그림책테라피스트야.”
웃기기도 하고 기분도 좋았지만, 나는 현실적으로 대답했다.
“언제는 가서 돈 벌어오라며. 이거 하면 돈 많이 못 벌어.”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많이 안 벌어도 돼. 만 원이라도 벌어와. 당장 얼마를 버는지에만 집중하지 말고, 천천히 늘려가 봐.”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막막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뒤엉켜 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남편이 말을 바꾼 게 아니라는 걸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는 내가 내 길을 가는 걸 바라면서도, 동시에 지금 우리 형편이 감당할 수 있는 현실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그렇다고 나답지 않은 방식으로만 버티고 싶지도 않았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균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림책테라피를 시연하고 나서는 더 확신이 들었다. 일단 그림책테라피를 수단으로 조금이라도 수입을 내보며 경험을 쌓고 싶었다. 동시에 생활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도 하고, 학점은행제로 아동학과나 심리학과 수업을 들으며 전문성도 다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내게 필요한 것은 살아남기 위해 나다움을 포기하는 일도, 나답게 살겠다고 현실을 외면하는 일도 아니었다. 조금 느리고 서툴더라도, 현실을 책임지면서 내가 오래 갈 수 있는 방향을 찾는 일이었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르겠다. 살아야 해서 나를 접어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 그렇다고 나답다는 이유만으로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는 사람. 당분간은 그 사이에서, 내 몫의 균형을 배우며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