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D+925] 나도 모르게 경력 단절이 되었다

이 악물고 버팁니다

by 탄산수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여러군데 문을 두드렸다. 관심있는 회사에서 연락이 와 면접을 보기도 했지만 결국 탈락했다. 차가운 현실 앞에서 나는 '경력단절'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내가 낳고 아이를 키우는 3년 동안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일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경력 단절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물론 경력단절만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공고를 보고 있는데 남편이 카톡을 보내왔다. 부업으로 유튜브 수익을 내는 40대 경력 단절 여성분의 영상이었다. 5060 시니어를 대상으로 1시간짜리 오디오 소설을 만들어 유튜브에서 월 2천5만원 수익을 낸다고 한다. 어차피 지금 이 상태로는 취업이 쉽지 않을 것 같고, 취업을 해도 장기적 관점에서는 어려움이 있어 관련 경험도 쌓자는 마음으로 이분을 따라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남편의 월급으로 네 가족 생활비가 감당이 되지 않아 1,500만원짜리 강의를 들으며 절실하게 두 달 넘게 운영해 성공한 분이었다.


며칠 뒤, 이 여성분이 무료 강의를 하신다고 하여 아이와 잘 준비를 하며 한쪽 귀로 수업을 들었다. 5060 세대들을 타겟으로 하는 시니어 유튜브의 경우, 그들에게 익숙한 라디오 채널을 대신해 외로움을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내가 라디오 피디가 되고 싶었던 이유라 마음이 확 갔다. 또한 분량이 1시간짜리이기 때문에 수익이 다른 채널에 비해 많이 난다고 했다. 내 꿈을 실현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이 일을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나는 채널을 시작했다.


문제는 콘텐츠를 어떻게 만드느냐였다. 강사님은 어르신들이라고 재미없는 콘텐츠를 듣지는 않는다 했다. 어르신들이 몰입해서 들을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해 전략적으로 흐름을 짜야했다. 시니어 분들이 좋아하는 사연 역시 매콤한 사연이었다. 요양원 엔딩으로 맞이하는 '고부 갈등'은 순하디 순한 맛이었다.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불륜' 정도는 되어줘야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나는 외로운 시니어 분들을 자극으로만 이끄는 것에는 거부감이 들었다.챗 gpt는 나에게 매콤하게 유입을 시켜 내용에서는 마음이 채워지도록 화해, 회복, 통찰로 결론을 지으면 된다고 했다.


그의 의견을 반영해 적당히 매콤하게 영상을 제작해봤다. 한 자리서 일어나지도 않고 꼬박 5시간 넘게 만든 영상은 조회수 8회을 기록했다. 나는 좌절했다. 물론 신생 채널이 노출이 잘 되지 않은 것을 감안하긴 해야 하지만 슬펐다. 다행히 같은 영상을 쇼츠로 만들어 올린 덕에 구독자 10명이 되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전략을 알아가는 이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이분처럼 두 달안에 성과를 내면 참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못 해도 채널 톤을 만들어가며 천천히 성실히 꾸준히 할 것이다.


엄마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외로워졌다. '퇴사한 벌을 이제서야 제대로 받는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먹고 살 궁리가 시급한 나를 보며 삶의 무게가 급격하게 올라갔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그렇게 좌절하면서도 동시에 이런 생각도 한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직장 생활을 포기할 용기도 못 냈을텐데, 의도치 않게 야생의 환경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어린이집을 보내고, 무기력을 떨치기 위해 잠시 운동을 하고, 5시간 동안 시니어 라디오를 만들고 다시 부리나케 아이를 데리러 가는 삶. 매일 무표정으로 걸어다니며 내 목소리도 잃어버리고, 누군가와 이야기 하는 방법도 까먹은 것 같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카페에서 이 글을 쓰면서 조용히 나와 대화하고 있다. 매일 올리기로 마음 먹은 에세이도 내 영혼을 위해 주 2회는 올려야겠다고 마음 먹는다.(오늘의 생활) 나에게 글은 내 품위를 지키는 유일한 취미이니 말이다. 옆에 직장인들이 조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니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인생은 원래 살만하다가도 왜 이렇게 살기 벅찰까 싶어지고 또 다시 살만해지고 그런 것이므로 조용히 이 시기를 견뎌야 한다.내 마음을 조용히 알아주는 남편이 한정식집에 데려가 거하게 저녁을 사주고, 3살 딸이 내 두 볼을 꼬집으며 '귀여워 죽겠네'하고 베시시 웃는 순간이 있으니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