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고 싶어, ADHD 진단 받으러 갔다
3개월 전, 옆동네를 지나다 한 플랜카드를 보았다. 'ADHD 명의 000 원장님 진료 시작합니다'라고 궁서체로 적힌 문구, 나는 플랜카드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1년 전 부부 상담을 하며 내가 ADHD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니 그곳에 가서 치료를 받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표면적인 이유는 프리랜서로서 시간 관리를 잘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문제가 생기기 직전까지 해야할 일을 미루는 습관이 있는데 이건 의지로는 되지 않는 ADHD의 증상 중 하나라고 한다. 실제로 내가 제일 못하는 것이 매일 조금씩 하는 일이다. 방학 때 밀린 일기를 새벽에 부랴부랴 쓰던 기억, 급하게 벼락치기를 하느라 점심도 안 먹고 혼자 교실에 남아있던 기억이 선명하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과업을 끝마치고 나면 나는 또 다시 끝없이 늘어지고 시험 기간이 찾아오면 벼락치기 모드가 되고 나도 이런 내 자신이 한스러운 순간이 많았다. '그냥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인가 보다' 정도로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퇴사하고 프리랜서가 되니 이 점이 지나치게 큰 약점이 되었다.
최대한 빨리 깔끔하게 업무를 마쳐주는 것이 프리랜서의 도리인데, 나는 매주 월요일 밤 2시 반쯤 일어나 영상 편집 업무를 겨우 끝내고 있다. 일과 시간에 해야할 일 대신 하고 싶은 일(ex. 지금 쓰고 싶은 주제로 글을 바로 쓴다거나, 간단히 서치해서 섭외해도 되는 일에 책 읽어가며 정독한다거나, 유튜브 쇼츠를 만든다거나)을 하다가 많은 시간을 보내버린다. 여전히 해야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해야 두 가지를 모두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업무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시간 배분을 잘하는 것은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건 표면적인 이유이고 치료를 받고 싶은 마음에는 더 깊은 이유가 있다. 내가 가진 한계를 보완해 나를 진심으로 믿어주고 싶어서다. 회사 밖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능력이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나를 믿고 노력하는 힘이 가장 중요하단 생각을 했다. 흔히들 '그릿'이라고 말하는 끈기, 나는 그게 부족했다. 계속 불안해만 하면서 이것 저것 몇번 찔러보지도 않았는데 안 된다 실망하고 좌절하는 내 자신이 답답했다. 나를 너무나 믿어주고 싶은데 방법을 몰랐다.
그러면서 내가 자신감 없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어릴 때 나는 혼이 많이 났다. 자주 어딘가에 부딪히고 뭔가를 잃어버리고 시간에 쫓기고 해야햘 일을 까먹는, 집에서는 늘 덜렁이라고 불렸다. 그러다보니 나는 늘 허둥지둥 살았고 가족들에게 쓴소리를 많이 들었다. 특히 의도치 않게 엄마를 괴롭히는 나를 보며 동생들은 '너는 항상 왜 그 모양이니?' 한숨을 쉬던 동생들과 살았다. 그러다보니 성과를 내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던 것 같다. 나는 그냥 바보가 아니라고, 성취 강박이 거기서 시작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 생활, 엄마와의 이별, 육아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며 많은 증상이 레벨업이 되었지만 나를 믿지 못하는 그 불신의 마음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첫 내원 때는 뇌파 검사와 자율신경계 검사를 하고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진행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은 10명 중 7명은 ADHD라며 그림으로 설명해주셨다. 내 생각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ADHD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30분 정도 선생님 질문에 따라 학창 시절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선생님은 99.9% 확률로 ADHD일 가능성이 있다며 검사 일정을 잡아주셨다.
복용 후 '나의 창의성과 열정이 사라져서 색깔을 잃으면 어떡하죠?' 라고 얘기했더니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지금보다 생산성있는 삶을 살게 될 거라며 기대감을 심어주셨다.
나는 진료실에서 나와 검사를 받을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33만원이라는 금액도 부담스러웠지만 그보다 내가 없어질까봐 걱정됐다. 내 이런 점을 좋아해주는 사람들도 있고 나 스스로도 발전해나가며 이런 점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굳이 약을 먹어야 할까 싶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아닌 것 같다 싶으면 투약을 중단하면 된다고 하니 '가려운 곳이나 긁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검사 일정을 잡고 많은 양의 검사지를 받아왔다. 내가 받은 검사는 7개로 아이젱크 성격검사, TCI, MMPI-2 다면적 인성검사, 불안 민감도 설문지, 자서전적 기억면담 면접지, 문장완성검사, 이화방어기제 검사지다. 다음 내원일까지 체크해오면 된다고 하였고 작성하는 데 총 3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TMI이지만 이것도 미뤄서 병원가서 마지막 장 끝낸 건 안 비밀이다.)
그렇게 두 번째 내원을 하게 되었고, 나는 외부에서 오신 임상심리전문가와 함께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검사를 했다. 웩슬러성인용지능검사(K-WAIS-IV), 벤더 게슈탈트 테스트(Bender Gestalt Test), 집-나무-사람 그림검사(House Tree Person Test), 동적 가족화 검사(Kinetic Family Drawing Test), 로르샤하 잉크반점검사(Rorschach ink blot Test), 우울 자가 검사(Beck Anxiety Inventory), 면담(Psychological Interview)을 진행했다. 내 머릿 속을 열어서 보여주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도 들고 체력적으로도 진이 빠지는 검사였다.
마지막으로 면담을 진행했는데 임상심리사 선생님이 내게 왜 약을 복용하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체계적으로 노력해 성과내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웃으시면서 어떤 성과를 내고 싶은지 물으셨다. 어느 정도로 설명을 드릴까 고민하다 내가 하고 싶은 콘텐츠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했고 선생님은 재밌으면 계속 하라고, 만 31세에 성과를 바라냐며 웃으셨다.
그렇게 2주 뒤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세 번째 내원을 했다. 초, 중, 고 학교생활기록부가 준비물이었다. 자기보고식 ADHD 검사지 두 개를 간단히 하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학교생활기록부와 임상심리사의 보고서를 기반으로 나에게 ADHD 확률 99.9%라는 진단을 내렸다. 선생님은 학교생활기록부를 보며 머리가 안 좋은 사람이 아닌데 지능검사에서 결과가 많이 낮게 나와 당황스럽단 말을 덧붙였다. 임신, 출산으로 근 몇년간 머리 쓸 일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 생각이 들면서 확실히 예전보다 머리가 막힌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얘기했다. 선생님은 좌절하는 나를 보며 약을 먹으면 막힌 부분이 뚫릴 수도 있다고 위로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주의력 결핍형 ADHD(R/O ADHD, predominaltly inattentive type) 진단을 받았고 더불어 우울 장애, 강박 증상도 시사된다고 했다. 이는 ADHD에 수반되는 증상 중 하나라고 한다.
복용 첫날 누군가는 평범한 삶을 처음 경험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던데 나는 남편이 대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내가 평소보다 화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화가 아예 안 났다.) 남편은 이쯤 되면 최소 3번은 혼났어야(?) 되는데 평화롭다며 내 변화에 감탄했다. 모든 부분에서 무던해지면서 에너지를 덜 쓰게 되고 체력이 되니 남편에게도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변화는 내 머릿 속에서 늘 조잘조잘 수다를 떨던 친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잡생각으로 발 디딜 틈 없던 내 머리가 순식간에 백업되었다. 생각을 줄여보려고 노력했던 지난 날이 무색하기까지 했다. 처음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멍이란 것도 때려보았다.
세 번째로 말의 속도가 느려지고 평소보다 목소리가 작아졌고,
네 번째로 불안, 우울, 식욕이 없어졌다.
다섯 번째로 머리 말리기, 양치와 같은 지루한 일상 루틴을 좀 더 오래 지속했다.
그런데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약을 먹기 싫어졌다. 갑자기 시력이 안 좋아진 사람처럼 저해상도로 세상이 변하고 생각은 모조리 사라지니 답답한 기분이었다. 너무 선명해서 괴롭던 이전의 삶이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내 열등감이 약으로 어느 정도 해소되며 성장 동력을 잃어버렸다는 점이 문제였다. 내 안의 문제를 해결하려 치열하게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갈 곳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두 번째 처방 받는 날 선생님께 이 얘기를 했더니 변화에서 오는 당연한 생각이라며 극단적인 생각도 들 수 있으니 염두해두라고도 하셨다. 그리고 이건 문제가 있어서 받는 '치료'가 아니라 '변화'이기 때문에 언제든 중단해도 되니 많은 고민을 해보라 덧붙이셨다.
일단 약을 타고 집에 돌아와서 고민했다. '더 먹으면 또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몰라' 어차피 당장 변화되는 게 아니니 나는 경험하는 차원에서 더 먹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이 약을 복용한 지 한 달 정도가 되었다. 지금은 '안 먹었으면 큰일날 뻔 했다'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간 내 안의 문제에 에너지를 쏟느라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제3자가 되어 직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는 성장을 명목으로 열등감을 극복하는 데만 중독되어 있었다. 뜬금없지만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렸다. 나를 잘 다스려야 가정, 국가를 다스리는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그간 너무 내 문제에 오랫동안 붙잡혀 세상 밖에 나서지 못했단 생각이 들었다.
엊그제 약을 타러 갔을 때 선생님께서 '좀 더 자기중심적으로 삶이 바뀔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무슨 말인지 되물었다. '지금보다 더 자기중심적으로 변하면 어떡하지?' 걱정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설명을 듣고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좀 더 주도적으로 해나갈 수 있게 된다는 의미였다.
약을 먹으며 천천히 외부로 시선이 확장되고 있음을 느낀다. 계속 변화하다 보면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이던 에너지를 바깥으로 펼치게 될 것이고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알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되겠지. 그렇게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