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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수 Jan 12. 2021

[삶은 인사이트] 평범하게 살아왔다는 말에 숨겨진 상처

일상의 균열은 한순간에 찾아온다

내 고등학교 친구 중에는 모든 것이 유별나지 않은, ‘평범하다’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친구가 있다. 치킨집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1살 터울의 여동생과 자랐으며 집 근처 국립대를 졸업해 현재 모 보험사 손해사정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아마 나와 비슷하게 가장 먼저 ‘무던한’, ‘평범한’ 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키 160 타원형 얼굴형에 오똑한 코, 어깨 정도까지 오는 검은 단발머리를 가진 친구는 외적으로도 지극히 평범한 비주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너무 짧지도 너무 길지도 않은 주기로 연애도 하며 모든 것에 대해 부족함도,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게 모든 면에서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지극히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을 것 같은 그녀는 꽤나 특이한 학창시절 추억을 갖고 있다. 나는 처음 그녀를 고등학교 1학년 학교 방송부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친구 덕에 난생 처음 골 때리는 일을 겪게 됐다. 매일 저녁, 야간 자율학습 전 호랑이 같은 방송부 선배들에게 교육을 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군기가 워낙 강하다 보니 10초라도 지각하면 바로 무릎을 꿇고 벌을 서야 하는 문화가 있었다. (끝나고 나오면 종아리가 동그란 모양으로 새빨개져 있었다.) 벌도 벌이지만 싫은 소리를 듣기 싫었던 방송부 동기들은 악착같이 그 시간을 엄수했는데 그녀는 꼭 일주일 한 두 번 정도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우리를 진땀나게 만들었다. 그녀의 반으로 부리나케 뛰어가 물어보면 그녀가 결석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핸드폰은 항상 전원이 꺼져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나는 그때 왜 그런 일탈을 했냐 물었는데, 그녀는 창피한지(?) 배시시 웃으며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학교가 너무 답답했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당시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말해주었다. 부모님,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던 열일곱의 나는 그때의 가치관으로 그녀가 꽤나 양아치(?!)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얼마나 건전한 방식으로 본인을 지키려 했는지 똑똑한 아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종종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이면 서울행 ktx를 끊어 세상 구경을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이 얼마나 기특한 자기 주도 학습인가.)


작년 말, 스물 여덟 살을 다 같이 마무리하자는 의미로 그녀를 포함해 세 명의 친구가 강화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던 중 그녀는 내년 초에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와 퇴근 시간이 비슷한 그녀는 종종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물었는데, 그때마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어떻게 해야할지 묻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아 친구가 한계치에 다다라가고 있구나 생각하며 결정을 내리게 되는 시점이 분명이 올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실제로 내가 말하던 그때가 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3월에 회사를 관두고 교육직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했다. 사실 크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지금 하는 일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했다. 말수가 별로 없는 내성적인 그녀가 하루에도 수십명씩 소리를 지르는 고객들과 통화를 하다보면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며 살아야 하나 현타가 왔고 평생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섰다고 한다. 그러면서 불안한 눈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와 원하던 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네는 일을 하면서 즐겁냐고···.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난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을 하고 있지만 주류에서 일하지 못한다는 갈증이 있고, 타 방송업계와 비교했을 때 소박한 월급에 경제적인 스트레스도 갖고 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만족을 잘 느끼지 못하는 편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다른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운이 좋게 가족의 도움을 받아 식당을 개업하게 됐지만 그만큼 잘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글쎄, 나는 어쩌면 너만큼 용기가 없는 걸지도 몰라 땡땡아.)


친구의 이야기가 너무 길었는데, 다 접어두고 하고 싶은 말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삶을 사는 것 같은 사람도 자신만의 깊은 고뇌가 있고 전환점은 피할 수 없이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 인생만 유달리 롤러코스터 같이 사건 사고가 많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라는 것. 나에게 오늘 해주고 싶은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주변 친구들도 나도 취업 준비로 바쁘던 시절, 한 친구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는 너무 평범하게 자라와서 도대체 쓸 말이 없다고. 그즈음 지병으로 어머니와 이별했던 나는 그 말이 그렇게 고까울 수 없었다. 아마 그녀는 평범하다는 말로 자신의 상처를 덮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나는 그 친구에게 그말을 들은 뒤로 평범하다는 말이 너무 싫어졌다. 평범하다는 말 뒤로 숨을 수 있는 상처들이 꽤나 많지만 그 말은 또 다른 상처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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