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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수 Jun 20. 2018

[삶은 인사이트] 방송국 인턴 기자로 일하며 있었던 일

모든 사람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평생 글 몰라도 잘 살라따/그런대 이장이 공부하라니. xx/미음이 외이리안도ㅑ시브랄거.’ 

 2017년 1월, 한글 대학을 수료하신 83세 양옥순 할머니가 쓰신 시 일부이다. 구수한 시골 할머니의 표현력 때문인지 SNS 상에서 이 시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모았다. 당시 방송국 인턴기자였던 나는 할머니와의 인터뷰를 위해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가 간 뒤 할머니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시에서 느껴지는 포스 그대로 할머니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여보슈!”

 “할머니 안녕하세요, 여기 방송국인데요, 잠깐 전화 통화 괜찮으세요?”

  귀가 어두운 할머니께 같은 말을 반복하며 겨우 상황을 납득시키자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질문? 내가 뭘 알아야지. 나 암것두 몰라.” 괜히 씩 웃음이 났다. 어려운 질문은 안 한다며 침착하게 답한 뒤 통화 15분 만에 준비한 질문을 드디어 여쭐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던 할머니는 한 시간 남짓 되는 인터뷰 시간 동안 젊은 시절 고생한 이야기와 같은 묻지도 않은 질문들까지 넘치도록 답해주셨다. “감사하고 고마워! 방송국까지 나를 이렇게 불러주고 고맙지.” 고맙다는 할머니의 인사를 끝으로 사무실이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인터뷰가 끝났다.

  양옥순 할머니를 비롯해 인턴 기자로 활동하면서 놀라웠던 점은 나이, 직업, 성별, 지역을 불문하고 인터뷰 요청을 위해 전화를 건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내게 질문해주길 기다렸던 사람처럼 술술 자기 이야기를 꺼낸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질문 하나당 1시간이 넘도록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어 중간에 말을 끊어야만 하는 난처한 경우도 생겼다. 

  물론 이들이 처음부터 “내게 궁금한 게 뭐요?”하며 모든 걸 다 대답해주겠다는 대담한 태도로 나서는 건 아니다. 양옥순 할머니처럼 하나같이 내게 무슨 이야기를 듣겠냐며 해 줄 이야기가 없다고 쑥스러움을 내비친다. 하지만 몇 마디 나누기 시작하면 금세 자신의 인생 보따리를 풀어놓으신다. 심지어 어떤 분은 말하기도 어려운 가정사를 털어놓고 방송국에서 자식을 찾아줄 수 없겠냐며 하소연하던 분도 계셨다. 어떻게 해드릴 도리가 없어 가슴이 너무 아팠던 기억이 난다. 대체 이들은 내가 뭐라고 속 깊이 있던 이야기까지 다 해주시는 걸까?

  그러다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떡볶이집 사장님이 하는 이야기에서 그 힌트를 얻었다. 촬영을 끝내고 가는 제작진에게 여태껏 내 얘기를 이렇게 많이 들어준 사람은 없었다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사장님.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인터뷰했던 모든 사람들이 떠올랐다. 야간 경비 서면서 글 쓰는 경비원, 시한부 판정 받은 어머니, 크리스마스 때마다 이벤트 하는 버스 기사, 19년째 세계를 떠돌며 사는 가족, 이발 봉사 다니는 경찰관 등 그들 역시 내게 하고픈 말이 이토록 많았던 것은 누구에게도 내 이야기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일하는 1년 동안 남들이 보면 지나칠 정도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주로 기사에 담았다. 1시간 동안 생판 모르는 남(나)에게 소중한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 누군가의 즐겁고 신나는 목소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론 조금 과장스럽게 그들의 이야기에 박장대소하고, 때론 한없이 눈물을 쏟으면서 나 역시 그들의 소중한 이야기에 보답해주었다. 1년 동안 나와 이야기를 나눈 모든 사람들이 인터뷰를 한 그날만큼은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행복하게 하루를 보냈더라면 그것만큼 뿌듯한 일이 없을 것 같다. 참 많은 사람과 함께한 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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