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왔다. 회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명절과 싫어하는 명절'을 주제로 잡답을 했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명절로 추석을, 가장 싫어하는 명절로는 크리스마스를 꼽았다. 이유는 너무 상업주의에 찌들어서. 어차피 크리스마스의 본질은 남의 생일 아닌가? 메이슨 백화점이 많이 팔아먹으려고 크리스마스를 명절화했고, 코카콜라가 많이 팔아먹으려고 산타를 만들어 냈는데 내가 왜 그 장단에 돈춤을 춰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자리에 있는 상당수가 가장 좋아하는 명절로 크리스마스를 꼽았고, 나는 약간 눈치가 보였다. 그날 저녁, 기억의 서재에서 크리스마스 앨범을 끄집어냈다.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진짜 어떤 날인가.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상당히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가 열심히 성당을 다닌 덕분에 세례까지 받았으니 어린 시절에 크리스마스를 접하긴 했다. 트리를 꾸밀 만큼 열성적인 크리스마스 신도는 아니었지만, 산타를 믿을 정도의 신앙심은 있었다. '아빠, 엄마 말씀 잘 듣고 착한 아이가 돼라'는 산타 할아버지의 카드가 이상하게 아빠 글씨를 닮았어도, 의혹을 끝까지 파헤칠 의욕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산타의 정체를 알아차린 뒤에도 선물을 더 받으려고 애써 모르는 척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머리맡에 놓이는 게 학습도서가 된 다음에야 산타 믿는 척하기를 그만뒀다.
실망스러운 마지막 선물 이전, 산타를 가장한 부모님에게 뭘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산타를 가장하지 않은 아빠의 선물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문방구점에 들를 때마다 눈길을 뗄 수 없었던 미미 인형이 있었다. 겨울 에디션이라 흑백 트위드 소재의 투피스를 멋스럽게 차려입고, 같은 패턴의 메텔 모자까지 쓴 예쁜 아이. 그 인형은 나에게 소공녀 세라의 에밀리나 다름없었다. 나는 아빠만 따로 문방구로 데려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형을 사달라고 졸랐다. 엄마한테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가격은 3만원 정도였는데, 50원짜리 쮸쮸바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장난감 값으로 3만원은 천문학적인 숫자였다. 그래도 아빠는 호쾌하게 인형을 사서 내 품에 안겨줬다. 날아갈 듯이 기뻐서 상자를 뜯을 생각도 못하고 고이 모신 채로 들여다보기만 했다. 아무리 봐도 이건 3천원짜리 싸구려 마루인형들과 차원이 다르다. 진한 화장에 기골이 장대해 무서웠던 바비와도 다르다. 오목조목한 얼굴 생김새며 옷매무새가 기막하게 고급스럽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었다. 결국 엄마에게 인형의 존재를 들켰고, 당장 가서 돈으로 바꿔오라는 명령을 거부하자 아빠가 불려왔다. 부부싸움의 시작이었다. 아빠는 꿋꿋하게 내 인형을 사수했지만, 싸움의 끝머리에서 엄마가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자 더는 인형을 집에 두고 싶지 않아졌다. 아빠가 내 방으로 와서 조심스럽게 환불 얘기를 꺼냈을 때는 다행스럽기까지 했다. 냉큼 인형을 싸들고 가면서 아쉬움보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평소 쉽게 살 수 없었던 300원짜리 아이스바까지 얻어먹었으니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였다.
크리스마스 앨범 2번째 장의 배경은 명동이다. 남자친구가 생기면 크리스마스에 명동을 거니는 게 소원이었다.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도 보고, 골목마다 울려퍼지는 캐럴을 듣고, 다른 행복한 연인들과 함께 축제를 즐기는 상상만으로도 이미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이 많은 남친은 인생 경험이 풍부했던 만큼 크리스마스 명동행에 회의적이었지만, 내 의지는 굳건했다. 드디어 그날을 맞아 미니스커트에 롱부츠를 신고, 하얀 케이프를 걸쳤다. 오직 이 날을 위해 구입한 실용성이라고는 1도 없는 물건. 밑단과 후드 주변에 보송보송한 털 장식이, 긴 리본 끝에는 몽실몽실한 털방울이 달려 빨간 모자의 크리스마스 버전 같았던 그 케이프는, 겨울 옷이지만 방한과는 거리가 멀었다. 덜덜 떨며 도착한 명동에는 정말 사람이 많았다. 내 발로 걷는 게 아니라 사람 무리에 휩쓸려 다닐 만큼. 지나고 보니, 그 인파의 1.5배 정도만 더 있었어도 '명동 크리스마스 대참사'가 일어나 훗날 이태원 압사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구남친에게는 미친 성수기를 감안해 미리 식당을 예약할 만한 주변머리가 없었고, 나는 사태가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을 몰랐다. 눈싸라기까지 날리는 추운 겨울날, 주린 배를 쥐고 굽 높은 부츠를 신은 채로 얼마를 걸었던지. 가는 곳마다 방이 없다고 문전박대를 당했던 마리아와 요셉부터 마지막 성냥까지 태우고 얼어죽은 성냥팔이 소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리스마스 인물들의 심정을 사무치게 실감할 수 있었다. 걷고 또 걷다가 결국 명동과 아무 상관없는 외진 동네까지 가서 대충 한 끼를 때웠다. 젊어서 체력이 좋았기 때문인지, 아직 순수했기 때문인지 싸우지는 않았다. 오히려 화이트크리스마스를 함께 했다고 기뻐했던 것 같다.
다음 장은 캐나다의 크리스마스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추앙하는 이 나라에 와서 처음으로 트리를 장만했다. 다른 집 아이들은 트리 아래 온갖 친척들이 보내준 선물을 가득 두고, 날이 밝으면 포장지를 짝짝 찢어발기는 일로 한나절을 보낸다는 말을 듣고, 얼추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우리 딸에게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려고. 그렇게 몇 해가 지난 뒤에도 철석같이 산타를 믿는다는 딸을 보며 흐뭇하기도 했다. 날 닮아서 영악하군. 어디 가서 굶지는 않겠어. 땡길 수 있을 때 최대한 땡겨야지. 그리고 내가 산타 믿는 척하기를 집어치운 6학년이 돼서 진실을 밝혔다. 사실 지금까지 산타인 척 선물을 챙겼던 게 엄마, 아빠였다고. 그때쯤이면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지, 이게 무슨 대단한 스포일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딸의 믿음은 진실했고, 내 고백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까짓 거 한두 해 더 챙겨줄 걸 그랬다고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날 이후 나는 '동심파괴자'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올해 우리 집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없다. 실은 작년부터 없었다. 산타의 진실을 밝힌 김에 트리까지 냅다 걷어치운 건 아니고, 고양이 두 마리와 맞바꿨다. 줄을 유독 좋아해서 물고 당기는 녀석들이 전선을 씹다가 감전되거나 집에 불이 나는 사태를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져서 팔아치웠다. 트리마저 없으니 더욱 크리스마스에 공감하기 어렵다. 흥청망청 번잡스러운 시기일 뿐이다. 하지만 어둠이 내린 뒤 집으로 돌아올 때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온 동네에 반짝반짝한 고드름, 사탕지팡이, 루돌프 모양의 색색가지 조명과 큼직한 산타 공기인형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밝아진다. 게다가 이게 웬일인지, 남편이 내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민하는 게 아닌가? 명분을 얻은 김에, 2주 전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꾹 참고 안 샀지만 두고두고 눈에 밟혔던 목걸이를 냅다 주문했다. 마침 크리스마스 세일 중이라 20% 할인까지 받았다. 만세!
나는 앨범을 덮으며 생각했다. 상업주의에 좀 오염된 것 같지만,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군.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