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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마음 Nov 21. 2023

[수업] 내 인생의 모이스처라이저

키워드 글쓰기: "기다림" 2023.11.18

아마도 어느 수업의 과제였던 것 같다. 연극을 보러 대학로에 갔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하는 어린이용 연극을 제외하면 인생 최초의 연극 관람이었다. 게다가 열연하는 배우들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무대가 가까운 소극장. 어찌나 설레던지 등받이도 없이 널빤지에 방석 하나 달랑 올린 옹색한 관객석마저 낭만적이었다. 드디어 불이 꺼지고 천지사방이 어둠에 잠긴 순간, 나는 마치 '유리가면'의 마야가 된 것처럼 가슴을 죄며 눈앞에 펼쳐질 신세계를 기다렸다. 마침 연극의 제목도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며 기다림은 대개 고통이다. 움치고 뛸 주도권이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일이다. 그날 나는 3시간을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연극을 보며 하염없는 기다림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부조리한 일인지 절감했다. 이 희곡을 쓴 사뮈엘 베케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관객들이 부조리란 무엇인가를 깨우칠 수 있도록 확실한 한 방을 날렸으니까. 극 중에서 고도를 기다리던 디디와 고고도 지칠 대로 지쳐 내일까지 고도가 오지 않으면 나무에 목을 매달자고 결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졸음과 사투를 벌이며 지켜보던 나는 내심 그들을 응원했다. 하지만 고도는 끝내 오지 않았고, 두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런 고도! 제발 올 거면 오던가, 안 올 거면 헛된 희망이라도 버리게 해 달라고!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든 기다림을 집어치우지 않을까. 모든 기다림은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밑도 끝도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의 과정이다. 도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기다림의 시련이 주어지고, 기다림을 거쳐 충족되는 기대는 고생 끝에 낙이 된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언론고시 준비를 하다가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 터질 듯한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집 뒷산을 뛰어올랐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가 캐나다 영주권을 받았을 때는 긴 터널을 벗어나 빛의 세계로 진입한 듯이 행복했다. 출판사들에 투고를 하고 간을 졸이다가 출간 계약 제안을 받았을 때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두 팔을 휘저으며 동네를 쏘다녔다. 그간의 모든 목표는 기다림으로 한껏 숙성됐기에 성취의 순간들이 그토록 짜릿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성취 없는 기다림은 무용한가?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순간, 애면글면했던 그간의 과정은 의미를 잃고 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그 불확실성이야말로 기다림의 핵심이기에. 도박은 당연히 따야 제맛이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도박중독자들의 뇌를 연구한 결과, 그들은 베팅에 실패해서 돈을 잃을 때도, 성공해서 돈을 딸 때와 마찬가지로 희열을 느꼈다. 딸지 잃을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패를 던지는 행위 자체가 쾌락의 원천이다. 따거나 잃거나 도파민이 펑펑 쏟아지니 뇌 입장에서는 언제나 이기는 게임을 하는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도전하는 순간 이미 보상을 얻고 기다림에 중독된다. 기다릴 게 없는 삶은 지루하다. 고도를 기다리던 두 사람이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고도라도 기다리지 않으면 당장 목을 매야 할 만큼 무료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동안 기다리지 않는 삶을 살았다. 내가 기다렸던 대부분은 이미 이루어졌다. 진학, 취업, 이직, 결혼, 출산, 이민, 다시 취업, 고양이 두 마리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걸 다 가진 나는 기다림의 고통에서 벗어났지만 그게 곧 행복은 아니었다. 기다림이 빠진 인생은 딱딱하게 굳어져 더 이상 내 마음대로 주무르고 모양을 바꿀 여지가 없어졌다. 가능성이라는 반죽이 마르지 않으려면 기다림이라는 물기를 더해야 한다. 사람을 괴롭게 하는 기다림의 수동성은 사실 능동성과 한몸이다. 우리의 능동적인 결의는 애벌레와 같아 저 혼자서는 나비가 될 수 없고, 기다림의 고치에 들어가 번데기 상태를 지난 다음에야 날갯짓을 할 수 있다.


기다리는 고통이 기다릴 게 없는 고통보다 낫다면 무엇을 기다려야 할까. 새로운 기다림을 기다리던 나에게 초대장이 날아왔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여러 해를 겪어내며 당신의 모든 것이 응축된 글을 기다립니다." 신춘문예 공고였다. 나를 기다리는 세계. 꼭 들여보내 준다는 보장이 없기에 더더욱 아름답게 반짝이는 그 세계의 불빛. 어떤 합격 통지보다도 사랑스러운 초대에 나는 기꺼이 응답하기로 결심했다. 기다림이 시작되자 메마른 심장에 다시금 피가 돌고, 종점에서 만날 수도 있는 최선의 결과를 상상하면 요정의 가루를 뿌린 듯이 마음이 둥둥 날아오른다.


봄을 기다리는 특권을 누릴 수 있어 참 좋은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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