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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Oct 04. 2020

사람의 생에는 세 가지 사랑이 찾아온다.

못 견디게 사랑스럽고 못 견디게 그리운 내 삶을 함께한 나라들.

"You know what? We say that there are 3 kinds of love in men`s life."

"그거 알아? 사람의 인생에는 세 가지 사랑이 온대."


"The first love. 첫사랑."
"The love of the life. 인생의 사랑."
"The love you get married to. 결혼하여 여생을 보낼 사랑."




누군가는 처음 사랑의 감정을 느낀 대상을 첫사랑으로 정의할 테고 누군가는 첫 연애 상대를 첫사랑이라 말할 테다. 나에게 처음 사랑의 감정을 알게 해 준 사람은 짝사랑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그 짝사랑은 나에게 '아 내가 아닌 타인을 이렇게 좋아할 수도 있구나'라는 새로운 감정의 깊이를 알려주었다. 이후 스무 살에 만나 서로의 많은 처음을 함께 했던 첫 남자 친구와의 연애에서야 비로소 주고받는 첫사랑을 했던 것 같다.


이후 인생의 사랑을 만났다. 첫사랑이 순수함이 주는 사랑이고 결혼할 사랑이 노력과 인내로 만들어질 성숙한 사랑이라면 인생의 사랑은 아무것도 필요치 않은 사랑이었다. 그저 서로가 이전부터 알아온 듯 편안했고 서로의 있는 그대로가 상대방에게 잘 들어맞는, 내가 지금의 나여서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랑.

내가 이 사람을 만나려고 과거의 그 시간까지 걸어와야 했구나, 과거의 어두운 시간까지도 존재 의미를 부여받는 그런 사랑. 살아오며 그 어느 때보다 내가 지금의 나일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하고 감사해지는 사랑. 이 인생의 사랑이 만약 내 결혼할 사랑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사랑.


77억 인구의 77억 가지 사랑이 이 세상엔 존재할 테니 분명 세 가지 사랑이 한 사람을 향하는 이들도 있을 테고, 이 중 일부만을 찾은 사람도, 일부만 선택한 사람도 있을 거다. 난 아직 첫 두 가지 사랑만 만난 것 같다.


결혼을 먼저 한 친구들은 내게 '오는 남자 마다하지 말고 가능한 많은 남자들을 만나봐!'라고 조언한다. 만약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면 좀 더 화려한 싱글라이프를 즐기겠다고, 내 한 몸만 건사하면 되고 나에게만 집중하면 되었던 자유가 좋았다면서 말이다. 아빠와 다툰 날이면 엄마까지 합세한다.

"느그는 저~얼대 한놈만 만나지 말고 많이 많이 만나봐라. 내 좋다는 다른 오빠야들 많았는데 느그 아빠한테 넘어가삤다. 내가 너무 순진했지!"

그런데 어쩌나, 아빠가 인생 유일한 남자인 우리 미정 씨가 낳은 나는 영락없는 미정 씨 주니어인 걸. 해외생활 10년 차에도 여전히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유교걸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삼십 대에 들어서면서 인정해야 했다. 아아, 다음 생에서는 꼭 오는 놈 마다하지 않는 욜로족 스페인 아가씨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

개인적 사랑 얘기는 이쯤으로 해두자. 내가 말하고 싶었던 사랑의 대상들은 사람이 아닌 나라들이니까.



첫사랑은 젊은 날의 미성숙이 어느 날 툭 던져놓고 가는 선물 상자 같은 거다. 경험한 것보다는 경험할 것이 더 많이 남아있는 삶의 초반에서 덜컥 찾아오는 사랑.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강아지의 꼬리처럼 계산 없이 솔직하고 열정적인 날것의 감정을 내보이는 용감한 사랑. 아마도 삶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처를 두려워 않고 나를 던질 수 있을 사랑.

 

바로 그 날것의 첫사랑이 이집트였다. 선배의 권유에 반신반의하며 신청했던 국가장학생 프로그램에 덜컥 합격하면서 가게 되었던 그곳. 아는 거라곤 사막과 피라미드 밖에 떠오르지 않던 그곳. 첫 외국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 내 삶을 꾸린 곳이었다. 세상의 무서움을 아직 모르는, 무식해서 용감했던 스무 살의 내가 맞닥뜨린 나쁜 남자 같았던 나라, 이집트.


이집트에 처음 도착했던 날, 비행기에서 바라본 도시.  지금 다시 보니 숨이 턱 막히는데 그때는 같은 걸 보고 설레어서 가슴이 쿵쿵 뛰었다지. 스무 살의 나는 정말로 용감했다.


하루가 머다 하고 이집션들의 짓궂은 농담부터 성희롱에 이르는 다양한 사건들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나는 이집트를 사랑했다. 단 하루도 조용하게 넘어가는 일 없이 나를 울게 하거나 웃게 했던 애증으로 범벅된 그곳을 후회 없이 사랑했다. 학교 가는 길 집 앞 골목에서 어김없이 나를 괴롭히는 이집션 남자애들 때문에 씩씩거리며 길을 나서면, 다음 골목에서 과일이 가득한 리어카와 서서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드는 과일장수 친구를 만났다. 그가 대가 없이 건네준 바나나를 우물거리며 학교에 가다 보면 어느새 그들의 놀림 따위는 잊고 마는 식이었다. 이렇게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이집트와의 연애에 나는 매 순간 후회 없이 울고 웃었다.


결국 아랍의 봄 혁명이 일어나면서 도망치듯 전세기를 타고 떠나야 했지만 힘들었던 만큼 강렬한 기억들로 나를 사로잡았던 이집트를 나는 한동안 아주 많이 그리워했다. 인도가 아니고선 지구 상에서 대적할 상대도 없는 그 끔찍한 무질서함마저 그리울 정도였으니. 코딱지까지 까매지는 이집트의 매연 냄새를 맡으면서도 나는 행복했었다. 기꺼이 모든 감정을 내보이고 아낌없이 쏟아냈던 내 첫사랑.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난 종종 이집트를 떠올리며 그 시절의 순수하고 용감했던 나를 그리워할 거다.





이스탄불에선 필터가 필요 없다. 눈으로 보면 더 예쁘다. 하지만 너무 예뻐서 마음에만 담을 수 없어 계속 셔터를 누르게 된다.


내 인생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이 터키, 그중에서도 이스탄불이다. 대체 그동안 어디 숨어있었니? 생각하게 만드는 나의 반쪽. 이스탄불의 온전한 사계절을 보내면서 나는 이스탄불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애증愛憎이 아닌 애愛로만 가득 채워진 사랑이었다. 나는 더 이상 이집트에서처럼 팔짱을 가슴 앞에 낀 채 긴장을 하며 길을 걷거나, 성희롱을 하는 남자애들과 치고받는 쌈닭이 될 필요가 없었다. 터키는 내게 고국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가장 따뜻한 호의와 환대 그리고 사랑을 떠 안겨주었고,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집에 온 듯 완벽한 편안함 속에 매일을 살 수 있었다. 정말이지 내가 나여서, 나를 이끌어준 내 삶에, 이곳에 올 수 있게 만들었던 내 모든 좋고 싫은 과거까지 모든 것에 비로소 감사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이스탄불에 살던 시절만큼 '현지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라는 내 처지가 이토록 감사했던 적이 없었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현지인의 삶을 사는 영광이라니! 모든 것에 반응할 준비가 되어있는 섬세한 여행자의 시선으로 나는 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도시를 탐닉했다. 정말이지 이스탄불은 황홀 그 자체였다. 두 제국의 수도로 살아왔던 수천 년 역사가 흐르는 도시에서 역사 가이드로 일한다는 것은, 그의 매력에서 빠져나가는 건 이번 생에서 거의 불가능과 같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풍경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 냄새 팍팍 풍기는 터키 사람들의 정을 나눠 받을수록 나는 터키를 내 나라만큼 사랑하게 되었다.


단골 케밥집 아저씨. 일 년에 한두 번 가는데도 잊지 않고 웃으며 나를 맞아주신다. 내가 고추피클을 좋아한다는 것도, 갓 짠 석류 주스를 마시는 것도 기억해주시는 스윗한 아저씨


바르셀로나로 발령을 받아 이스탄불을 떠나던 전날 밤, 선배와 부둥켜안고 떠나기가 싫어 얼마나 울었었는지 모른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풍경과 새파란 공기를 가진 이스탄불과 작별하기가 싫었다. 정말 이대로 우리 이별해야 하니?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그와 보낸 시간이었고, 앞으로도 내 몸의 모든 감각들까지도 그를 떠올리며 살아갈 것이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플라타너스 나무를 보면 톱카프 궁전의 가을이 떠오르고, 고양이를 봐도 이스탄불의 길냥이들이 떠오르고, 길 가다 들리는 터키어에도 내 고개는 자동적으로 휙휙 돌아간다. 내 삶에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해버렸기에 이런 본능적인 반응들은 어쩔 도리가 없다.


터키를 떠난 후에도 나는 매년 적어도 한 번, 많으면 세 번까지도 터키로 날아갔다. 그렇게라도 터키에 다녀와야 또 남은 기간을 살아갈 힘이 생겼다. 내 삶에 나타나 줘서 고맙다고, 평생 그 아름다움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살 뻔했다고, 그렇게 나는 언제나 터키와 터키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지독한 짝사랑도 했더랬다. 오 나의 바르셀로나, 오 나의 스페인. 지중해 햇살을 가득 머금은 바르셀로나는 슈퍼모델 같았다. 그를 선망하고 흠모하는 수많은 이들을 그는 이름조차 몰라주었지만 세상 모두가 그의 이름은 알았다. 가우디의 도시, 예술의 도시, 태양의 도시, 열정의 도시, 너무 많아 그를 위한 수식어조차 셀 수 없는 그곳에서 나도 빨개진 볼을 어쩔 줄 모르는 소녀처럼 매일매일 짝사랑을 키워나갔다. 몰라줘도 괜찮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짝사랑이었다. 고작 반년 정도의 시간밖에 머무르지 못해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내 사랑들. 거리 곳곳에 뿌려두고 온 내 애정들. 그리고 아직도 내 마음속 서랍 한 칸에는 고이 접어둔 바르셀로나 사랑이 존재한다. 언젠간 이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야심 찬 희망과 함께.



프라하는 내게 어떤 사랑일까. 체코에서의 첫 1년은 마치 오래 알아오던 친구와 갓 연애를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너무나 편안하고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친구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하는 모습들로 나를 놀라게 하고 그래서 설레기도, 당황스럽기도 한 연애의 초반 같은 느낌이랄까. 체코에 정착하기 전까지도 매년 체코에 와서 한 달씩 지내던 나였는데 잠시 놀러 온 나는 체코의 진짜 모습 같은 건 눈곱만큼도 몰랐던 거다. 이래서 옛날 어른들이 같이 살아봐야 진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나 보다. 생각보다 콧대 높고 생각보다 차가운 체코에 와서 나는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호된 신고식을 겪어야 했다.


깊이 알아갈수록 나와의 공통점이 보이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수록 앞으로 풀어나가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문제들도 보인다. 우리는 과연 사랑일까. 어떤 사랑으로 남게 될까. 내가 너에게 그냥 스치는 외부인으로 남고 싶지 않듯, 너도 나에게 가슴에 남을 사랑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체코가 결혼할 사랑이란 건 절대 아니다. 아직 나는 젊고, 만나보고 싶은 이 놈 저놈은 없어도 만나보고 싶은 이나라 저나라는 너무 많으니까.

그래도 난 미정 씨 딸이니까 결국 터키나 스페인으로 돌아가게 되려나? 어떤 결과여도 나는 행복할 것이다. 결혼할 사랑만큼은 내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랑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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