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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Nov 02. 2020

2020년 락다운 아래 프라하의 가을.

[프라하 일기]시끄러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가을 풍경들.



2020년 8월 중순.다섯 번이나 취소되었던 체코행 비행기는 마침내 인천공항에서 이륙했다.

코로나 대유행 시대의 비행은 더 이상 설렘과 행복의 여정이 아니었다. 마스크를 쓰고 열 시간이 넘는 기내에서의 시간을 견디는 일은 꽤 불편했고, 기본 어메니티조차 제공되지 않아 양치를 못한 입에서 나는 입냄새는 마스크 안에 머물며 나를 고문했다.



그렇게 도착한 프라하, 2월에 떠났던 그 프라하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비로소 천만명 인구가 사는 나라인 게 실감이 났다고나 할까. 관광객의 실종은 곧 내게 실업상태를 뜻하지만, 텅텅 빈 이 도시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인생에 한 번쯤은 이런 실업 상태도 감수할만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체코에 다시 돌아온 이후 천 명, 이천명, 오천명, 칠천명을 넘던 일일 확진자수는 10월 중순 무려 만 오천명을 넘겼다. 대한민국의 코로나 누적 환진자 수가 이만 육천명인 것을 생각할 때, 한국인인 내게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수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열 명 중 나를 포함해 두세명에 불과했고, 마침내 10월 22일 체코는 제2차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리고 얼마전 10월 28일, 결국 통행금지 조치가 추가되었다. 식료품 및 생활 필수품 구입, 반려견 산책, 의사 방문 등 필수적인 외출을 제외하고서는 자유로운 통행이 제한되고 9시 이후에는 무조건 집에 머물러야 했다. 아마도 권고 수준의 규제로는 도무지 확산세를 줄일 방도가 안보였기에 강제적인 조치를 취하게 된 것 같았다.


일부 시민들은 곧바로 반발하며 28일 통행 금지 조치 첫날 통행금지와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열었다. 숨 쉬기가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로도 마스크를 쓰지 않기를 고집하는 수많은 길 위의 사람들. 건강한 그들에게 코로나는 감기와 다름없을지 모르나 면역력이 약한 주변의 누군가는 이 바이러스로 인해 생명을 잃거나 소중한 가족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듯 했다. 의대생도 모자라 치대생까지 동원되는 의료인력난과 병실 부족으로 애를 먹는 방역 최전방의 사람들을 보지 못하는 듯 했다.  


체코 한 병원의 의료진들의 사진. 선명한 마스크 자국만큼이나 선명한 피로가 그들의 얼굴에 묻어있었다.


통행 규제 이후 한 신문 기사. 오후 9시 이후에 반려견 산책을 위해 자택 반경 500m에 한해 외출이 가능하단 걸 노리고 한 시민이 꼼수를 부리다 잡혔다.

나는 그저 슬펐다. 한국인인 내게는 아주 당연해보이는 기본적인 시민 의식과 남을 위한 배려심 그리고 공동체 의식은 지금 내가 있는 세계에서 그렇게 당연한 게 아닌 것 같았다. 마스크 착용 생활화와 손씻기 등 개인 위생을 각자 신경쓰는 것만으로도 단 한 번의 국가 봉쇄 조치 없이 일상을 살아온 한국 사회에 지난 6개월을 지내다 돌아온 내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마스크를 쓰지 않던 그들이 얻은 것은 결국 자유가 아닌 상실된 일상이었다.


요즘 나는 하루에 한 번, 여의치 않을 때에는 이틀에 한 번 장을 보러 나간다. 장보기만이 나에게 합당한 외출의 이유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트램을 타고 휙 갔다가 휙 돌아왔을 슈퍼마켓을 이제는 걸어서 간다. 그 중에서도 최대한 멀리 있어 오래 걸을 수 있는 곳을 선택한다. 꽃 한 다발, 버터 하나, 감자 두 알에 양파 한 알. 돌아오는 길에도 걸을 수 있도록 장은 최대한 간단하게 본다. 



마트로 가는 길, 편도로 3km쯤 되는 길을 걷다보면 떨어진 낙엽, 구름 사이로 아주 잠시 비추는 햇살, 초록과 노랑 주황빛이 뒤섞인 가을 풍경에 카메라를 들고 자꾸만 멈춰선다. 걷기와 멈추기를 무한 반복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느덧 두세시간이 훌쩍 흘러있다. 어쩌다 길을 잘 둘러간(?) 덕택에 도보량 9키로를 돌파한 날이면 괜히 뿌듯해진다.


집에 와서 그날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예쁜 사진들을 갈무리해 지인들과 나눈다. 마트에서 사온 튤립 한 다발이 앙다문 꽃잎을 피우는 것을 일주일에 걸쳐 바라보며 매일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일상은 단순해졌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아름다움을 찾아본다. 그러다보면 이 까마득한 락다운의 끝에 어느새 서있을 것만 같다.



길을 걷다가 알록달록하게 물든 페트르진 언덕을 보고 숨을 헉 들이쉬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한동안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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