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 짝짝꿍 모녀 번외편
"남아! 성철이 오빠네서 점심 먹으러 갈낀데. 니 같이 갈래?"
겨울방학이라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잘 됐다 싶어 냉큼 일어났다.
"내 갈래. 엄마, 쪼매만 기다리도. 나 세수 쫌 하고…. 나 내삘고 가지마래이. 나 따라 갈끼다."
"오야~ 퍼뜩 씻은나"
신이 나서 채비를 하고 엄마를 따라나섰다. 지척에 살고 있는 사촌오빠네는 그 시절 안동에서는 보기 드물게 외국에서 살다 온 경험이 있었다. 몇 해 전 기술자인 사촌오빠가 일 때문에 베트남엘 갔고, 그 덕에 사촌오빠와 올케언니는 안동 시내에서도 나름 인테리로 행색을 했었다. 오빠는 베트남에 남아서 일을 계속했고 새 언니와 조카는 시댁 근처인 안동으로 다시 오게 되었다. 나이차이가 꽤 있어서 올케언니라 해도 사실 이모뻘 이상은 되는 나이였다. 자기 자식보다 몇 살쯤 더 많은 어린 사촌 시누이라 그런지 나에게는 항상 상냥하고 친절했다.
"숙모, 오셨어요? 들어오시소. 아이고 남이 아가씨도 왔나. 퍼뜩 들어와요."
반갑게 맞이하는 안주인을 따라 꾸벅 목례를 하고는 신발을 턱턱 벗어던지고 툇마루로 올라갔다.
안방으로 들어가 차려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상을 물린 후 새 언니가 엄마에게 물었다.
"숙모, 숭늉 끼리 뒀는데 드실래예? 아니모 커피 한 잔 드릴까예?"
"커피 한 잔 가 온나"
엄마는 과연 커피가 뭔지는 알고 달라고 하는 건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 있다가 언니가 작은 손잡이가 달린 하얀색에 파란 테두리가 있는 잔에 시커먼 물을 타 와서 엄마 앞에 놓는다.
엄마는 그 요상하고 뜨끈뜨끈 김이 나는 한약 같은 물을 마신다.
"아이고, 달달하고 맛나네. 성철이가 보내준기가?"
"예, 승윤이 학용품이랑 커피랑 설탕하고 보냈드라꼬예"
"맞나, 성철이는 잘 지내고?"
"예, 잘 지내지예. 지도 살아봤었지만 베트남이 정말 억수로 더워예. 지 고향인 대구맨치로…. 아니 그보다도 더울 땐 진짜 환장하게 덥심더. 그러니 잘 지낸대도 얼마나 고생이 많겠어예. 객지에서 남자 혼자 어디 쉽겠습니꺼?"
엄마와 언니의 수다가 길어지고 있지만 내 눈과 코와 혀는 커피에 집중되어 있었다. 과연 어떤 맛일까 무척이나 궁금하지만 올케언니 앞에서 체면치레하느라 내색도 못 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언니가
"아이고야, 내 정신 봐라 남이 아가씨 먹을 건 없네. 쪼매 기달려봐요. 승윤이 몰래 드로프스 감춰둔 거 꺼내올게"
초등학생인 조카는 어릴 때부터 외국물을 먹어서인지 드로프스며 초콜릿이며 단 걸 그렇게 좋아한다. 더욱이 8남매 사이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는 외동인 그 녀석이 여간 부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외동아들이라 버릇도 조금 없고 지 멋대로이다 보니 마구 먹을까 봐 사탕을 감춰두고 하나씩 꺼내주나 보다.
‘쩝, 부러운 녀석….’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드로프스보다 눈앞의 저 시커멓고 달달하다는 커피가 궁금하다.
언니가 사탕을 가지러 간 사이에 나는
"엄마야, 내 커피 한 모금만 마셔보자. 무슨 맛이고? 궁금타."
어른들 음식이라며 혼쭐을 내며 못 마시게 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어린 막내딸의 호기심과 외국문물을 경험시켜주고 싶으셨는지 군말 없이 건네줬다.
컵에 코를 박자 탁하기도 하고, 쿰쿠무리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한 생전 처음 맡아보는 향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개마냥 컵 안으로 혀를 날름 내어 맛을 봤다. 그러고는 혀를 찹찹 대며 신중히 맛을 음미했다. 그러자 씁쓸하면서 찝찔한 신맛도 느껴졌고, 그 끝에는 달콤함이 입 안에 확 퍼졌다. 그 맛을 느끼고 나서는 몇 모금을 꿀꺽꿀꺽 마셨다. 엄마는 그제서야 내 손등을 가볍게 찰싹 때리며 그만 잔을 뺏어서 내려놓았다. 그 후로 언니가 갖다 준 드로프스를 입에 넣자 쓰고 달고 했던 커피로 물든 내 입안은 달콤한 드로프스가 더해져 턱 끝이 짜릿해지면서 침샘이 폭발했다.
집에 와서는 내내 그 커피 맛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고, 언니들을 붙잡고 커피 마신 걸 자랑해 댔다. 며칠이 지나서도 커피 생각이 간절했는데 마침 엄마가 사촌 올케언니 댁에 무생채무침을 갖다 주라며 심부름을 시켰다. 평소라면 바로 아래 남동생이나 위 언니에게 미뤘겠지만 냉큼 일어나 부리나케 올케네로 갔다.
"언니,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마루가 비어 있길래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러자 안방 문을 열며 언니가 나를 맞이한다.
“언니, 엄마가 이거…. 무생채 갖다주라캐서 왔어요.”
원래도 왕왕 왔었으면서 괜히 온 명백한 사유를 밝혀야 할 것 같아 무생채가 담긴 바가지를 앞으로 쑥 내밀며 더욱 크게 설명을 했다.
“오야, 춥재? 들어온나.”
안방으로 들어가자 조카인 승윤이는 엎드려하던 방학숙제를 멈추고는 나를 올려다봤다.
“고모 왔나?”
그러자 올케언니는 승윤이를 나무란다.
“퍼뜩 일나서 인사 몬하나?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이 웃어른한테 엎져서 인사를 하노?”
“와? 내보다 세 살 빡에 안 많은데? 고모라고는 꼬박꼬박 부른다 안카나.”
승윤이는 고작 세 살 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5촌인 나에게 고모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새삼 억울했는지 투덜거리며 일어나 꾸벅 목례를 한다.
“괜찮아요. 언니. 승윤이한테 뭐라카지 마세요.”
“아닙니더. 촌수는 촌수지…. 나이가 뭔 상관이라꼬예. 요즘 아-들은 버릇이 없어가 큰 일입니더.”
“엄마 니는? 엄마도 시누이한테 반말하잖아. 그건 괜찮은기가?”
“시끄럽다, 마! 좋은 말로 할 때 입 다물고 숙제나 퍼뜩 해라. 밀린 숙제하는 주제에 어디서 말이 많노?”
언니는 비록 강짜부림이지만 논리적인 아들의 대꾸에 민망했는지 서둘러 말을 잘르고 말을 돌렸다.
“아이고 숙모님은 뭘 이런 걸 다 챙기주노. 식구도 많은데 그냥 드시지."
“아니라예. 순덕이네 아지매가 가을 철에 무 많이 뽑아서 볏단에 쟁여뒀었다꼬 많이 갖다 줬어요."
“나야 고맙지만…. 아가씨 잠깐 앉았다가 가요. 뭐 먹을 거라도 주까?"
언니는 엄마가 방금 전 턱턱턱 굵직하게 무채를 썰어 고춧가루와 젓갈, 사카린을 조금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손바닥으로 찧어 빻은 참깨가루로 마무리한 무생채를 손으로 집어먹으며 묻는다.
나는 괜스레 언니를 보지도 못한 채 엎드려서 방학숙제를 하고 있는 승윤이의 공책을 같이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언니, 내도 며칠 전에 엄마 마신 거…. 그거…. 커피…. 그거 마셔보면 안 돼요?”
언니는 짜지도 않은지 맨 입에 연신 무생채를 집어먹던 손가락을 쪽쪽 빨더니 따라오라는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부엌으로 가서는 나무로 된 선반에서 커피 통(일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전에 본 적은 없으니까)과 설탕포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얘캉 얘캉 두 개를 솥에 있는 물 퍼서 섞어 마심 돼요. 커피 한 숟갈, 설탕 두 숟갈 쯤 넣어서 타는 게 아가씨 입맛엔 맞을끼다. 내 손이 이래갖고 몬 타주겠네. 아가씨 먹고 싶은 맹키로 타서 마셔요. 난 승윤이 숙제 봐주고 있을게."
언니는 나에게 숙제 아닌 숙제를 주고는 양푼에서 밥을 퍼서 무생채 바가지에 넣고 숟가락으로 슥슥 비비며 머쓱한듯 웃고는 부엌을 나갔다.
커피 통 뚜껑을 열어보니 검은색 고운 모래같다. 얼핏 화로에 남은 잿가루 같아 보이기도 하고 초콜릿을 잘게 부숴놓은 것도 같이 생겼다.
나는 찬장에서 하얀색 컵을 꺼내다가 도로 놓고 양껏 먹을 욕심에 옆에 있던 대접을 꺼냈다. 얼만큼을 넣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밥숟가락으로 몇 숟갈을 푹푹 퍼서 넣고는 그것 이상으로 설탕을 때려 부었다. 말 그대로 ‘때려 부었다.’가 맞는 상황이었다.
솥뚜껑을 열어 아까 꺼내다만 컵으로 물을 가득 두 번 퍼서 대접에 부었다.
솥뚜껑을 다시 잘 닫아둔 후 부뚜막에 걸터앉아 경건한 자세로 대접을 두 손으로 고이 잡은 채 김이 나는 커피를 후후- 불며 마셨다.
역시 쌉싸래하고 달큰한 맛이 여간 맛있는 게 아니다. 지레 신이 나서 발을 휘적휘적 앞뒤로 흔들어 대며 그 큰 그릇의 커피를 다 마셨다.
그 후에도 며칠이나 들락날락 괜히 핑곗거리를 찾아서 성철 오빠네 들렀다. 올케언니는 내 속셈을 이미 알아차렸는지
“아가씨, 커피 너무 많이 먹음 안 좋아예. 추우니깐 몸 데핀다고 생각하고 한 잔끼리줄게요. 숙모님한테는 말하면 안되예.”
라며 군말 없이 나를 반겨줬다. 그리고 내가 가면 항상 커피를 한 잔 타줬다. 그 때 엄마가 마시던 하얗고 예쁜 잔에... 비율에 맞게 커피가루와 설탕을 섞어 타줘서인지 내가 부뚜막에 걸터앉아 마셨던 커피보다 강렬한 맛은 아니었지만 하얗고 예쁜 잔에 마시는 커피 덕에 귀부인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방학 동안 몇 잔쯤의 커피를 마셔보고는 새학기를 맞았고, 우리반 담임 선생님은 1학년 때 담임이셨던 김복자 선생님이 되었다. 나는 사실 김복자 선생님 덕분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읽어보라며 1학년 학급 교실에 세계 명작을 쌓아뒀었고, 여름 방학 때 읽기 시작한 책이 재미있어 쌓아둔 책을 다 읽었는데, 2학년이 되어서도 선생님은 가끔 나에게 책을 빌려주셨다. 그런 선생님이 또다시 중3 담임이 돼서 너무 좋다.
3학년이 된 후 학기 초 교내 백일장, 사생대회가 열려 글짓기를 해서 냈다. 주제가 따로 없어서 무얼쓸까 고민하다가 커피에 대한 얘기를 썼다. 이 전 학년에서도 글짓기를 하고 장려상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사실 나는 글재주가 크게 있지 않다 생각했는데, 웬일로 이번에는 학년에서 금상을 받았다.
난생처음 내가 쓴 글이 복도에 걸렸다. 학년 대표로 전교생 앞에 나가 상장을 받는 기분이 얼떨떨해서 가슴이 쿵닥거리고 귀까지 빨개진 내 볼이 부끄러웠지만 기뻤다.
그러고 며칠 후,
학교에 온 엄마는 복도에 걸린 내 글을 보고는 기가 막혀했다.
중학교 졸업반이었기 때문에 중학교를 마치고 진학을 할 사람에 대한 상담이 필요해서 선생님이 직접 보낸 가정통신문을 보시고 진학 상담을 받으러 오신거다.
기쁘기는 했는데 괜히 뜨끔해서 받은 상장도 학교 교실 선생님이 쌓아둔 책들 사이에 넣어두고 집에 가져가질 않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엄마에게 들켜버렸다. 내가 혼나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올케 언니까지 혼날까 봐가 더 걱정되었다.
먼저 집에 가지도 못하고 운동장에서 엄마가 나오기를 한참 기다렸지만 막상 아무 말도 없이 내 앞을 지나치는 엄마를 따라 나도 아무 말없이 뒤를 따라 갔다.
딸내미 학교에 온다고 연옥색 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엄마는 집 방향이 아니라 시장 방향으로 꺾었다. 나는 여전히 엄마를 졸졸 따라갔다.
시장 입구 칼국수 집으로 들어간 엄마는
“두 그릇 주이소.” 라고 하더니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나는 조용히 엄마와 마주 보고 앉았고 엄마는 주인아줌마가 내다 준 양은 주전자의 냉수를 대접에 따랐다. 그러고는 벌컥벌컥 마시고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엄마의 시선이 느껴져 숙였던 고개를 채 들지도 못하고 눈만 치켜들고는 엄마를 쳐다봤다.
“맛있드나?”
“…”
“그래서 그렇게 풀방구리 드나들듯이 성철이네 갔든기가?”
“…”
모락모락 김이 나고 밀가루 익은 내를 풍기는 칼국수가 턱턱 탁자 위에 놓인다. 엄마는 젓가락을 빼내어 내 국수를 휘휘 몇 번 저어주고는 젓가락을 나에게 건넨다.
“무라. 뜨거우니깐 천천히 무라.”
나는 못 이기는 척 젓가락을 받아 엄마가 식으라고 휘휘 저어준 칼국수를 또 몇 번 젓고는 한 입 먹었다.
맛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칼국수다. 아, 커피도 좋아한다.
꼬다리 배추를 숭덩숭덩 잘라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만든 국수를 멸치국물 내어 슴슴하게 끓여 고소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엄마도 몇 젓가락 드시더니 갑자기 크게 웃으신다.
“맞네. 니이~ 그때 밤에 잠 못 자고 자꾸 요강에 오줌을 싸드만, 커피 마셔서 그랬는갑네.”
창피한데 사실이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언니네 다녀온 날은 밤에 잠도 잘 안 오고 자꾸 오줌이 마려웠다. 중학생 사춘기 소녀라서 요강에 오줌을 누기는 싫었는데 밤에 혼자 변소에 가기는 무서웠고 자는 언니들을 깨우자니 변소 귀신을 만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루에 놓여 있던 요강에 가서 오줌을 눴다. 그럴 때 쳐다본 밤하늘은 맑고, 빛이 났었다.
다행이다. 엄마가 웃었다.
“잘 썼대~. 그런데 상장은 와 안 보이주노?”
엄마가 칼국수를 먹느라 볼록해 진 내 볼을 쓰다듬는다.
갑자기 볼이 빨개지고 눈물이 날 것 같다. 지금 울어 버리면 칼국수가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아 꾹꾹 참았다. 엄마가 양은 대접에 담긴 물을 내민다. 냉수를 한 모금 마셔 칼국수와 함께 꿀꺽 삼켰다.
그러자 엄마는 이제 내 볼이 아니라 입술을 손바닥으로 슥 닦아준다.
“마저 무라~” 라며 날 보고 웃었다.
올케 언니네서 몰래 마신 커피 보다 이 냉수가 더 맛있다.
설탕을 타지 않았는데도 꿀맛이 나는 기분이다.
엄마가 웃는다. 나도 같이 웃는다.
내일은 선생님 책 사이에 숨겨놨던 상장을 갖고 와야겠다.
나중엔 내가 커서 엄마에게 금상이 아니라 금을 선물할 거다.
아, 금잔에다가 엄마도 나도 좋아하는 커피도 타줄 거다.
커피
- 장영남 -
커피
올케언니가 하얀 잔에 내어준 까만 커피
귀한 사람이 된 기분
쓴데 달고, 시큼한데 고소하다.
아궁이에 물이 끓는다.
부뚜막에 앉았다.
대접에 타서 호로록 마신 커피
쓰고 달다.
마시다 보면 검은 물에 하얀 엄마가 보인다.
단데 쓰다.
우리 엄마 한숨은 쓰다.
우리 엄마 웃음은 달다.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엄마가 운다.
연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부뚜막에 걸터앉아 눈물을 훔친다.
그럴 때 내 마음은 쓰다.
엄마가 삯바느질을 한다.
마당에서 노는 우리를 보며 웃는다.
허리를 펴며 넘어진다 조심하라 하며 웃는다.
그럴 때 내 마음은 달다.
# 엄마의 어린 시절 일화를 소설로 각색한 글 입니다.
시대적 배경, 사투리는 사실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