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향기웹진_20년9.10월호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중략)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호박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아~♬'
평상 위에 둘러 앉아 계시는 할머니들 틈에 엎드려 베란다 창살에 열심히 노끈을 묶고 계시는 아빠를 구경하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호박줄기가 잘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꽉 조여 맨다.
아파트에 살았지만 1층 주민의 특권인양 할머니께서는 화단을 밭처럼 가꾸셨다. 여름이 되면 복숭아 나무와 호박이 잘 자라라고 동생의 소변을 뿌리셨다. 그런 할머니의 소일거리를 지켜 주고 싶으셨던 아버지는 화단 가꾸기를 도왔다.
나는 노오란 호박꽃이 열렸다가 오므라들며 동그란 호박이 열릴 때쯤이면, 시들어진 호박꽃을 꺾어다가 친구들과 김치랍시고 소꿉놀이를 했다. 그런 날은 엄마의 손아귀 힘을 느끼며 내 노래진 손바닥은 때수건으로 빡빡 문질러졌다.
뭉툭한 엄지를 가진 우리 아버지는 손재주가 많고 꼼꼼한 분이라 내 인형 집이며, 동네 할머니들을 위한 평상에, 이웃들의 맥가이버였다. 일명 ‘뱀머리 손가락’ 이라고도 불리는 둥글넓적한 엄지를 가졌는데 엄마는 내가 태어나자 마자 손가락부터 살펴 봤다고 한다.
지금이라면 큰 일 날 소리지만 ‘여자가 그런 손을 지니면 팔자가 세다는데 닮지 않아 참 다행’ 이라며... ‘그래도 남자는 그런 손이 손재주가 많다더라.’ 라는 말을 꼭 붙인 채…
엄마는 부엌살림에는 능한 분이지만, 시계 배터리 한 번 갈아 본 적 없을 정도로 부엌살림 외에 모든 일은 아버지께서 도맡아 정돈하셨다. 7년 전 새 집으로 이사를 온 후 암으로 저물어가는 목숨 끝을 간신히 붙잡고 계시면서도
“내가 기운 조금 차리면 전기선들 정리해 줄게”
라고 잘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집안을 둘러보셨더랬다.
결국 그 해 여름, 아버지는 전기선 정리를 하지 못 하신 채 우리 곁을 떠났다.
요즘은 흔히 볼 순 없지만 아파트 화단에 과실수를 볼 때면 할머니와 아빠를 떠올린다.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인 시절이 몇 해가 지났는데도 평상에 배를 깔고 바라보던 아빠는 이제 없다.
그렇지만 지금도 혼자 흥얼거려 본다.
'애들하고 재미있게 뛰어놀다가 아빠 생각나서 꽃을 봅니다. 아빠는 꽃 보며 살자 그랬죠. 나보고 꽃같이 살자 그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