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촌, 용감한 김씨 사총사

나이가 들었어도 언제나 그 시간, 그 자리에 있는 우리

by 은쓰다

“앗! 뜨거워. 나 안 가!”

팩 하고 성질을 내며 율무차가 든 종이컵을 지하철 플랫폼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쏜살같이 역 계단으로 휑하니 달려 올라가는 남동생의 뒤통수를 보며 남은 우리 셋은 율무차를 들고 벙찐채 서 있었다.

겨울 방학을 맞아 사촌형제 네 명이 친척 댁에 다니러 가기로 했다.

나는 사촌 중에 초등학교 6학년 가장 누나였고, 사촌 동생 중 첫째, 내 동생, 그리고 사촌 동생 중 둘째 이렇게 네 명이 차례로 한 학년 씩의 터울이 있었고, 내게는 다 남동생이었다.

우리 넷은 항상 옹기종기 잘 붙어 놀았다.

부모님들의 걱정에도 용감한 김씨 사총사끼리 의기투합하여 지하철을 타고 서울 근교까지를 갈 셈이었는데 지하철 여행에 오르기도 전에 자판기 율무차때문에 이 사달이 난 꼴이다.


넷 다 또래이기는 했으나 우리 넷은 성격이 너무도 달랐다.

그 중 내 남동생은 성격이 급하고 추진력이 강한 아이였고, 첫째 사촌동생은 둥글둥글하고 순한 성격이었다. 막내는 마냥 어려 그저 누나, 형들을 따랐고 나는 아마 의젓하고 현명한 누나…였을 것이라고 지난 기억을 미화해 보겠다.

이렇게 다른 우리 넷이 잘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넷 중 둘째인 사촌 큰 동생의 둥그스름함과 까탈스럽긴 해도 형을 잘 따르는 셋째인 내 남동생의 케미 덕분이었다.

그 사건이 있었음에도 남은 우리 셋은 친척댁에 갔었고 1박 2일을 재미있게 놀다 왔다.


겨울 방학이 끝날 무렵 방학 숙제를 위해 박물관에 가야했던 내 동생과 사촌 큰 동생은 둘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가겠다며 지하철 모험길에 나섰다. 긴장 탓인지 내 동생은 화장실에 들렀고 사촌 큰 동생은 미리 플랫폼으로 갔다.

볼일을 마친 내 동생은 계단을 내려가다 자판기 앞에서 코코아컵을 든 채 호호 불며 식히고 있는 사촌 형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 순간 내 동생은 형에게 고마움과 머쓱함을 느꼈다고 한다.

둘 다 꼬맹이였지만 그래도 역시 ‘형만 한 아우는 없다.’는 말이 맞나보다. 또 성질을 내고 가버릴까봐 동생을 위해 고사리손으로 코코아를 식히고 있던 모습을 상상하면 기특하고 어딘가 짠하다.

그 기억 덕분인지 내 동생은 여전히 사촌 형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다.


이제는 각자의 삶이 바빠서 자주 볼 순 없지만 그래도 서로를 위하는 가족애를 느낀다.

물론 그 때 나이의 몇 배쯤은 먹어서 율무차가 아닌 술 잔을 기울인 채 옛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럴 때면 우린 다시 그 시절의 꼬맹이가 된다. 남이 아니라 보일 수 있는 모습들을 알고 있는 게 가족이다.

그래서 가족들 간에는 항상 언제나 그 때 그 모습 그대로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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