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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국수

by 마리 Feb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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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어떤 음식도 쉬이 만들지 않는다.

떡볶이, 만두, 튀김 같은 분식은 할머니 기준에서는 음식으로 치부되지 않았기에 손녀에게 만들어 주지도, 사주지도 않았다. 손녀는 첫 영성체 교리를 받으러 성당에 가면 할머니 시야에 벗어난 틈을 타 친구들과 삼삼오오 근처 분식집에서 오백 원 컵떡볶이를 먹는 게 대단한 일탈이었다. 할머니가 적어도 한 시간은 투자했거나, 할머니의 검수가 끝난 식재료로 만들어진 음식만이 손녀네 식탁 위에 올라올 수 있었다. 언제나 이렇게 까다롭기만 한 할머니도 즐겨 만들었던 아주 간단한 레시피 몇 가지가 있다. 그런 건 가족들에게 정식으로 해 주려고 만든 음식은 아니었고, 한나절 내내 부엌에서 무언가를 삶고 무치고 찌고를 반복하다가 '아이고, 되다.' 하는 한 마디로 소박하게 시작하는 할머니의 끼니를 위하여 개발되었다.


참기름 꼬순내를 맡고 손녀는 방문을 빼꼼 열고 나왔다. 시험공부는 집중이 안 되고 방 안에 박혀있는 게 영 답답하기도 했다. 집은 그렇게 넓지 않아서 방 문을 열고 나오면 금방 부엌에 있는 할머니 시야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만, 어떤 대화를 기대하더라도, 결국은 할머니 몸의 어디가 아프다고 하는 하소연으로 귀결되거나, 손녀 네가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잔소리의 일방적인 할머니의 연설이 있을 것임을 빤히 알면서도 방 문 밖에 있는 할머니와 할머니가 만들어 내는 그 음식이 궁금하기에 슬쩍 나와 봤다. 할머니는 대야 가득 한 바탕 여러 김치 재료를 절여두고 2차전에 돌입하기 전에 대충 식탁 의자에 걸터앉아서 한 주먹도 안 되는 국수를 들이켜던 중이었다.


"할머니, 그거 뭐야?"


"먹을라냐?"


그럼 그렇지 하는 미소로 할머니가 손녀에게 묻는다. 그럼 그렇지 손녀의 마음을 한참 전에 읽어뒀으니 넉넉하게 소면을 삶아 두었다. 소면 한 주먹을 사발에 휙 던져 넣고 나를 꼬릿하게 하는 그 간장 한 숟가락을 척 뿌린다. 그 뒤로 노란 설탕 한 숟가락, 할머니가 집요하게 찾아낸 방앗간에서 국산 참깨로 짜낸 참기름 한 숟가락을 둘러 넣고 휘리릭 비비면 꼬순내 가득한 간장국수가 된다. 이런 한국 요리가 정식으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끼리는 그냥 간장 국수라고 부른다.


그렇게 국수 한 그릇 간단히 먹은 할머니는 해가 저물고 엄마, 아빠가 퇴근할 때 까지도 쉴 새 없이 그 작은 주방을 분주하게 만든다. 다리를 다친 후로 할머니는 왼쪽 팔꿈치를 싱크대에 짚고서라도 주방과 사투를 했다. 이제는 그만하시라고, 힘들면 좀 쉬시라고 엄마와 아빠는 수 없이 할머니를 설득했다만, 바깥음식이나 엄마의 요리마저도 영 맘에 들지 않았는지 주방을 고집스럽게 지켰었다. 귀에 못이 박힐 것 같은 불평은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덤이었고.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몇 달 전까지 할머니방에서 청국장을 띄었다. 마지막 할머니의 청국장을 먹으면서 구수한 냄새에 손녀는 속으로 놀랐다. 청국장 냄새 가득한 겨울의 집안 냄새도 싫었고 억지로 먹기 싫은 청국장을 먹어야 하는 식사도 짜증 났던 어린 자신의 마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음식에 대한 경험은 성인이 되어서 여러 영향을 끼친다고 하던데, 그렇게 억지로 먹어 봤던 청국장을 이제는 그리움과 감사함으로 또 구수함으로 돌아오다니. 눈물을 꾹 참고 손녀는 마지막 청국장을 귀하게 비웠다. 할머니의 정성이 참 오래 걸려 빛을 발한다는 약간의 허무함도 섞인 마음이 들었다.


쏟아부은 정성에 비해 할머니는 그걸 먹는 손녀의 반응에는 쿨했다. 할머니에게는 어쩌면 그건 큰 관심사는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할머니의 매서운 눈으로 젓가락이 입과 접시를 쉴 새 없이 드나들어야만 한다는 언질을 주면서, 젓가락질이 잦아들기라도 하면,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더 먹으라는 재촉을 하는 것으로 당신의 성취감을 채웠지 싶다. 입도 짧고 음식을 잘 먹지 않았던 손녀가 젓가락질이 지지부진할 때면 귓가를 따갑게 하는 할머니의 재촉이 싫어서라도 입에 이것저것 넣고 씹기 바빴었다. 어쩌다 잘 먹는 모습을 보면 할머니는 지친 몸을 내려놓고 매서운 눈을 풀고 연속극을 보듯이 손녀가 밥 먹는 장면을 지켜봤었다.




오늘의 그 손녀는 자신이 이뤘다고 믿는 그 성과에 대해 타인의 보상을 갈구한다. 아주 작고 하찮은 구석까지 잘한 점을 빼먹지 않고 세상의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게 베푼 작은 도움마저도 스스로 곱씹으며 언젠가 돌려받아야 한다는 보상을 초조하게 기다리기도 한다. 어른이 되면, 이런 보상 같은 것에 쿨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어른이 되어도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욕심은 손녀 마음에서 여전히 방을 뺄 여지가 없나 보다. 이런 알량한 마음의 한 구석을 눈치채면서 손녀의 시선은 할머니에게로 향한다. 아기새처럼 할머니의 밥을 생각 없이 받아먹기 바빴다가, 스스로 먹이도 찾아먹고 사회생활에 치이기도 하면서 이제야 당신의 마음을 헤아려 보다니 이게 다행인 건지, 못난 건지 모르겠다.


쿨한 할머니라 그런 살가운 말이 필요 없었겠지 생각하는 건, 그걸 못 본체 하려는 괘씸한 손녀의 생각일 뿐이다. 어린 손녀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잘 감춰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어쩌면 할머니는 알게 모르게 비췄었는지도 모른다. 손녀의 평생엔 강한 할머니만 있었을 뿐일까? 손녀의 할머니에게도 살갑게 보드랍게  만져 주던 어떤 할머니의 존재가 있었을까? 아무래도 손녀는 할머니에 대해 너무 모르고 할머니와 헤어졌다.


한인 마트에서 사다 둔 시판 간장과 참기름으로 만들어 먹는 간장 국수는 그때 할머니가 대충 만들어 줬던 그 맛이 아니다. 한두 번 그렇게 해 먹어보고는 기억 속 맛까지 해칠까 더 이상 해 먹지는 않는다. 한 숟가락 들어가는 간장이 사실 이 음식의 맛의 전부인데, 정 없는 기계가 대량 생산한 그 맛을 할머니가 몇 날 며칠에 걸쳐 땀 흘려가며 매 년 만든 그 간장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할머니의 간장만을 가지고 손녀는 이렇게나 할 말이 많을 줄은 몰랐는데, 기억 속에 묻힌 간장 이야기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될 것이다. 장독대를 어디에 두느냐를 가지고, 장 담그는 재료를 할머니 마음에 드는 만큼의 퀄리티에 못 미친다는 걸 가지고 손녀의 엄마, 아빠는 할머니와 365일쯤 실랑이를 벌였고, 콩의 품질이 할머니 성에 안 차니 무르라는 난감한 주장에 엄마와 한 바탕 소란은, 뭐, 없이 지나가면 서운할 정도였다.


누군가는 먹고사는 게 그렇게 중요하냐 물을 수 있지만, 할머니에게는 그의 자식과 손주들이 먹고사는 문제가 죽고 사는 문제보다 중대한 사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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