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다고 하면 큰 이사를 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걸 귀국이라고도 부르더라.
귀국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번 이사를 그로서 부르지 않으려고 한다. 오랜만에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건데 그걸 유난스럽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도 그렇고 수만 번 고민 끝에 내린 '이동'이라는 결정 위에 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괜히 없어도 될 막중함을 짊어지고 집에 가야 할 것 같아서, 집에는 좀 편안한 마음으로 가고 싶어서 그냥 이사 정도로 부르기로 했다.
이런 이사는 신물 날 정도로 많이 했다. 대륙에서 대륙으로, 도시에서 도시로 수차례 이사를 하던 지난날들 나를 움직이게 만든 그 모든 상황들이 괘씸했었다. 정을 붙이나 싶으면 나를 밀어내던 세상이 너무도 미웠다. 그 미움을 나에게 오롯이 풀어내었다. 부족한 나를 가득 채워 복수하겠다는 그런 비장함을 가지고, 억울함과 분노를 가득 짊어지고 그 도시들을 떠나왔었다.
서른을 넘긴 어딘가에 있는 나는 마음에 어떤 여유가 생긴 건지 진짜 성장이라도 한 건지 '떠남'에 조금 더 담담하다. 비장하지도 억울하지도 않다. '내가 부족해서'라는 아쉬움도 없다. 억울한 마음 대신 추억과 감사의 마음을 챙겨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환상 대신 새로운 일상과 현실을 상상한다. 콩콩 뛰었던 마음 대신 평온함으로 '시작'을 맞이하려고 한다.
내가 사랑했던, 나의 반짝이던 10년을 함께 보낸 Bay Area를 마음에서 잘 보내 주고, 언젠가 기분 좋게 다시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성숙하게 Bay Area를 놓아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여기는 둘도 없는 지상낙원'이라는 독단적인 믿음을 놓을 수 있게 된 건, 어쩌면 그 지상낙원에서 누려 온 일상 덕분이었다. 지상낙원에서 겪었던 평화, 설렘, 무너짐, 기쁨과 슬픔은 나에게 충분했다. 나를 움직이게 이끌어 준 크고 작은 모든 인연, 켜켜이 쌓인 모든 경험이 한국행 비행기를 타자고 결심하게 이끌어주었다.
내가 나를 설득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
삶의 큰 결정들은 단 하나의 이유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내리는 결정들은 그렇다. 어떠한 결정을 할 때면 나는 양측의 주장을 끊임없이 듣고 그 둘을 무수히 설득한다. 한쪽으로 금방 치우치지 못해 답답한 시간 속,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선명한 답을 볼 수 있다.
답은 언제나 내 마음 안에 있다.
이번 결정을 통해 나는 정답이 없는 것 같은 난제를 또 한 번 스스로 해결했다. 뿌듯하다. 남들은 이걸 난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나의 결정이 정답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소중하게 스스로에게 전달한 이 결정을 깊이 존중한다.
대략 15년 만에 돌아가는 우리 집에서의 생활과 서울살이가 조금은 두렵고 조금은 설렌다. 이젠 나와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과 수월한 한국말을 쓰면서 일을 하면 어떨까. 혹시 나의 마음이 조금 다치진 않을까. 대중교통을 타고 시끄러운 도시를 매일 가로지르는 하루는 생동감이 있을까.
내 마음에 미안해지지는 않을까.
Bay Area에 두고 가는, 여기 이곳에서 멈춘 것들이 조금 아쉽긴 하다. 그래도 다시 원한다면 언제든지 찾아오리라는 마음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나의 선택이 조금 더 수월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서울에 가면 내가 그리워하게 될, 이 동네의 소중한 몇 가지를 기록으로 남겨둔다.
해가 진 후에 귀가해서 집에 주차를 마치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깜깜한 밤하늘에 빼곡히 박힌 별들이 참 예쁘다.
걱정이 가득한 밤, 울며 잠들더라도, 다음날이면 지친 기색 없이 매일 같이 짙은 햇볕을 꺼내어 주는 하루하루에 고마웠다.
가끔 놀러 가는 LA에서 보는 늘씬한 야자수와 언덕 아래에 끝없는 태평양과 그 위에 물든 노을 덕분에 나의 짧은 연휴마다 회복할 수 있었다.
내가 고요함을 참 좋아한다는 걸 알게 해 준, 마운틴 뷰의 고요하디 고요한 방에서 책을 읽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순간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