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찬양 02. 지금만 보는 습관

내일의 근육통은 내일의 나에게 맡긴다

by 장덕우


언제 받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주 오래전에 상담 중에 의사 선생님이 나름의 비책이라며 포스트잇에 '오늘만 보자' 라고 써서 주셨었다. 그의 의도는 잡 생각이 많고, 과거에 대한 자책이 심한 것을 조금이라도 고치고자 매일 저 포스트잇을 보고 스스로에게 되뇌라는 것이었다. 받은 당일은 굉장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당장 화장대에 붙여 놓고 '그래, 지금만 보자. 지금 나에겐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잖아.'하고 달래던 기억은 난다.


그 후, 어떤 책이든, 말이든 '지금, 여기'를 다루는 말이라면 모두 감명깊게 받아들이고 사진을 찍어 두거나 메모를 하는 등 기록해 두었다. 하지만 전부 다 그 때 뿐이었다. 당시에는 지나가버린 과거든,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미래든 다 상관하지 말자고 생각했어도 그 때가 지나면 다시 과거에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미래에도 이렇게 절망적이면 어떡하지, 내가 저지른 일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으로 하루의 끝을 망치곤 했다. 지금도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는 정말 지금만 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유는 간단하다. 운동의 순간은 정말 힘들고, 주어진 과제는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그리고 끝나면 지쳐 잠들기 바쁘고.



내일의 나는 운동하는 지금의 나와 상관 없는 사람.


PT 수업 중에 트레이너에게 '와, 내일 근육통 엄청날 것 같아요.', '내일 못 걸을 것 같아요.' 라는 말을 하면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일의 장덕우님은 오늘의 장덕우님과 상관 없는 사람이에요.' 처음엔 그 말이 그저 웃기려고 하는 말인가 했으나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나름 뼈가 있는 말이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동작과 개수를 채우는데 집중하고, 내일의 고통은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하게 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의사 선생님의 비책과 일맥상통한 것이기도 했다.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웨이트는 집중력이 정말 중요하다. 올바른 자세에 대해 강조하는 것도 집중력과 관련이 있다. 어깨를 내리고, 가슴을 펴고, 복근에 힘을 주는 것은 전부 집중력을 소모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잡 생각을 할 여지는 1도 없고, 타겟 근육에 자극이 들어오는지, 호흡은 제대로 하고 있는 지 체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러니까 동작을 하는 순간, 순간마다 나는 지금에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덕분에 내일에 내가 느낄 고통은 잊는 거지. 지금의 나만이 중요하고, 지금의 나에게 내일의 나는 상관 없는 사람이니까.



집중해야 할 건, 지금의 목표 뿐.


운동찬양을 쓰고 있긴 하지만 사람인지라 정말 더럽게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아무리 운동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하더라도 헬스장으로 가기 5분 전이 가장 힘들고, 오늘은 쉬어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을 이겨내는 과정을 거친다. 가장 힘든 순간은 웨이트를 끝낸 후, 유산소를 시작하기 직전인데 시작하기 전에도, 초반에도 오늘은 10분만 할까 하고 고민한다. 그럴 때마다 정신을 붙잡고 지금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굉장히 노력한다. 정말 마음이 따라주지 않을 때는 강도나 속도를 올려 버린다. 그러면 일단 이것부터 해내야 한다는 목표가 생겨서 하기 싫은 마음이 쏙 사라진다.


물론 타협을 할 때도 있다. 정말 지치고, 피곤해서 못 할 것 같을 때에는 강도와 횟수를 줄이고, 유산소도 걷는 정도로 한다. 어제보다 낮은 목표여도 지금에 집중하면 그게 또 나름의 성취감이 있다. 이런 기억들이 쌓이고, 쌓이면 하기 싫다가도 지금에 집중하면 다 해결된다는 걸 학습한다. 이건 운동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도 그러하다. 불안한 순간이 와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불안은 눈 녹 듯 사라지고 없다. 모든 일을 운동 할 때처럼 해내면 없어질 일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하다. 해낼 수 없다면, 타협의 여지가 있는 거고.



'지금은 못 하겠어요.'를 말하게 되다.


아무리 트레이너가 전문가라고 해도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내 상태를 짐작만 하지, 확신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중간, 중간 컨디션과 힘듦의 정도를 공유하는데 초반의 나는 못해내면 지는 것 같아서 거짓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운동의 습관이 들고 나서는 정말 솔직하게 상태를 공유한다. 그런다고 해서 내가 실패를 했다든가, 운동 효율이 떨어지는 게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는 못해도, 내일의 나는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웨이트든, 유산소든 지금의 내 상태가 운동 강도를 설정하는 기준이다. 이건 어제, 오늘의 비교 뿐만 아니라 5분 전, 3분 전으로도 비교가 가능하다. 이전 세트에서는 잘 해냈는데 다음 세트에서 바로 지칠 수도 있다. 그렇게 세밀하게 스스로의 상태를 들여다 보고, 이야기 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무리하지 않을 수 있다.


운동 이전에도 나는 '못 하겠다.'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게 다 내 책임 같았고, 여기서 못 한다고 물러나면 실패자, 낙오자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다보니 어떤 일을 하든, 어느 조직에 있든 나는 번아웃으로 엔딩을 맞이하곤 했다. 하지만 운동은 '못 하겠어요.'라는 말을 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트레이너가 더 할 수 있어! 라고 할 때가 훨씬 많지만.) 강도를 유지하지 못하더라도 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배울 수 있다. 무엇보다 계속 언급하듯, 지금의 나만 있는 상황이니 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못 하겠다는 한계와 할 수 있는 한계치의 극과 극도 그렇고, 지금의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어떤 선을 발견하는 것도 포함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운동에서도, 일상에서도 할 수 없어도, 할 수 없다 말을 하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이전 글에서 다음엔 어떤 운동이 제일 좋았는 지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다른 주제를 가져왔네. 다음 주제를 생각할 나에게 맡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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